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기독교는 "나"라는 존재가 성경 공부를 하여 지식을 쌓고, "나"라는 존재가 예배를 드리며, "나"라는 존재가 기독교라는 종교로 옷을 입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빼면 시체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핵심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살아계신 주님과의 실제적인 "인격적인 관계"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로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의 "실제적인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 답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많은 사람들은 "내"가 주님처럼 살고 주님을 따르고 그의 삶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주님처럼 살아야 하고 그의 삶을 따르며 그 분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며 그 분처럼 살아야 하기 전에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주님을 따르려고 하거나 주님처럼 살려고 하면 이는 썩은 나무로 다이아몬드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요, 돌덩이로 하늘에 나는 새처럼 날아다니게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이러한 실수를 했던 사례들이 바로 수도승들이었습니다. 

사실 성경의 목적은 주님의 도덕적인 삶의 본을 알려 주시고 "이렇게 살아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란 존재는 주님처럼 사는 것은 흉내는 낼 수 있으나 실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보잘것없고 연약하며, 죄악투성이고 무능한지요. 따라서 만일 어떤 필수 조건을 갖추지 않고 주님을 본받아 살려고 하면, 그는 정신 병자가 되던지, 아니면 철저한 위선자가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 첫 번째 방법의 실패 이후, 여전히 그 필수 조건을 갖추지 않은 채, 이제 두 번째 또 다른 시도를 합니다. 그들은 빌립보서 4장 13절을 읽게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인격적으로 부족한 자신의 모습! 인간적으로 주님처럼 살기에는 무능한 것을 아는 그들은 이제는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주께서 그런 능력을 주시면, 미움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성경의 많은 계명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주님의 주시는 능력, 그것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기도 합니다. 골방에서도 기도합니다. 기도회에 나와 부르짖습니다. 
"주님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매일 기도합니다. 

저는 이런 기도를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이런 분에게 능력도 주시고 그의 인격도 변화시켜 주시며 주님의 계명을 지킬 힘도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시험이 들 때나, 또는 그들이 원하는 그 모든 능력을 얻지 못할 때, 그들은 자신의 죄악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섭섭함을 느끼며 기도마저도 포기하게 됩니다.  

신앙이 좋을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시험에 들면 능력의 창구였던 기도마저 포기하더니 심한 패배 의식과 함께 실패의 삶으로 치달릴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문제는 "내"가, "나" 또는 "나란 존재"가 하나님께 도움을 얻어내려는데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요청은 더욱 중요한 다른 조건 하나를 갖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능력만을 주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더 엄청난 것으로 채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씀 드린 이 두 가지의 자세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꼭 필요한 한가지 조건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필수 조건이 무엇입니까? 답은 “올바른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과의 ‘관계’이며, 그 관계가 성경에서 요구하는 관계일 때, 그에게는 참된 승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앞에 말한 두 시도의 실패원인은 바로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주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첫째 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도덕적인 삶의 기준으로 놓고 따르려는 시도로서, 주님과 나 사이에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것이요,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는 있지만, 내가 나의 삶이 주인이요, 능력이 많으신 주님은 나를 돕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즉, 주님은 능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에 관한 한 나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는 종으로서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과의 참된 관계는 우리 주 예수님이 주인되시는 관계입니다. 내 삶에 있어서도 주 예수님이 주인이요. 나는 그 분의 종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 그러면 주님이 나의 삶에 주인이 되시는 관계란 무엇입니까? 그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대단히 정교하고 위대한 표현입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 드리면, 주님만이 주인되시는 관계란 "나"란 존재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관계”를 말합니다. 
 
신학 용어로 이를 신비적 연합관계 또는 영적 연합(Union with Christ)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적으로는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제가 신학 대학원의 목회학 과정을 마치면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께 그의 모든 신학을 요약하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답변은 기독교는 “Union With Christ”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연합관계는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관계이기 때문에 복음을 모르면 알 수 없습니다. 이 연합 관계는 성령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측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의 자유 의지 가운데 주께서 주신 믿음을 행사할 때 이루어지는 새언약 속에서의 신비한 관계가 예수님과 거듭난 신자의 연합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 안에 사시는 관계입니다. 즉, 주께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친히 우리의 삶을 대신 사실 때, 그때 우리는 진실로 주님을 알고, 주님을 따르며 그 분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1장 21 절의 바울 사도의 표현처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라는 조건이 갖추어지고 난 후에야, 우리는 그 분께 능력을 간구하기도 하고, 주님의 삶의 본을 힘껏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야 비로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과 승리를 맛보며, 주님께서 친히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나의 삶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내 안에서 사시는 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이시며 참으로 나의 간절한 바람과 당부에 의해 그리스도께 친히 나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 안에 사시는" 실체를 알지 못하거나, 그러한 영적 연합의 관계를 맺음이 없이는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이며, 단지 주님을 모방하고 흉내를 내는 차원에 멈출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이것은 목표가 아닙니다. 이 선언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선포가 아니라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알던 모르던 존재하는 진리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주 예수님이 내 안에 살고 계시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주 예수께서 내 안에 살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답변하시기를 주께서 하늘에 오르시면 성령으로 신자들 안에 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16-18, 20, 23)

부활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성령님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이때 그 영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영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이후로 부활의 영이요, 영생의 영이며, 나아가 그리스도 자신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니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바로 알라는 것이 본문에서 요청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관계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본문에서 내 안에 계신 그분은 중보자를 뜻하는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내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을 통해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죄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예수님은 마지막 선지자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뜻과 의도와 메시지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되시는 마지막 아담이신 사람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내 안에 성령으로 살아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지금 성령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사실을 믿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을 믿고 알며 감사합니다. 그러나 똑 같은 진리인데 우리 신자들이 자주 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는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살아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믿고 순종하고 연합하면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의 여러분의 눈과 입술과 발걸음과 손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내 대신 사시는 삶의 모습이요 열매인 것입니다. 

천만번 억만번 들어도 질리지 않고 무한히 달콤하고 감사한 이 말씀! 즉, 주 예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날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보배로운 죽음입니다. 따라서 나는 나의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 죄 때문에 내가 죽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 주님이 내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음으로 그 진리의 내용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면 우리는 죄사함을 얻게 되고 이에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은 법 앞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정신적으로도 우리 죄악이 용서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에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이 모든 영적인 축복은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와 진리를 믿고 받을 때,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이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부활하셔서 만유의 왕과 만유의 주가 되신 나사렛 예수님은 이제 성령을 통하여 내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분께 나의 삶을 맡기고 나의 주인과 왕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부활의 전능한 능력을 가지신 우리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며 나를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이제 내 삶이 더 이상 실패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무능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피곤한 인생을 더 이상 살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리스도이신 주님이 내 대신 하여 사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다시 확인합시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우리가 믿고 알 때, 죄의 용서를 체험하고 누리듯이, 주님이 나를 위하여 내 대신 사시기를 원하신다는 진리를 믿고 안 후 실제로 나의 삶을 주 예수님께 의탁할 때 우리는 죄에게 승리하는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내 대신 십자기에 돌아가셔서 나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복음을 믿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하신 주께서 성령으로 그들 마음 속에 지금 살아계시며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내’가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의 즐거움과 거룩한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내 대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또한 내 대신 사시기 위해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알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삶이 세속적이고 더러운 육신적인 삶에서 변화하여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성령으로 충만한 신령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의 성품이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대신 사시는 삶이야말로 힘들고 피곤한 실패와 낙망의 삶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능력과 사랑과 기쁨과 안식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이 피곤하고 부담되십니까? 이는 아직도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진리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며, 성령의 역사를 실제로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죄로 인한 나의 피곤한 삶을 나를 위해 감당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나’라는 존재가 선을 행하려 할 때의 실패와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19절을 보면, 바울이 고백하기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합니다. 
 
이때까지의 바울의 문제는 ‘내’가 선을 행하였냐 안 하였느냐의 싸움이었지 "누가" 선을 행하느냐의 답을 찾으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을 가면 바울이 이 문제를 정확히 깨닫게 되면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명의 성령의 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법입니다. 즉,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살면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넉넉히 이기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통해, 주께서 날 대신하여 행하신 것 한 가지와, 날 대신하여 행하시려는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날 대신하여 행하신 것 한 가지는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며, 날 대신하여 행하시려는 다른 한 가지는 거듭난 우리를 대신하여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 대신 하여 사시기를 원하는 주님께 내 마음과 삶을 드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마음의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날 대신 하여 사시기를 원하는 주님께 내 삶의 왕좌를 드릴 때 그 인생은 비로소 참된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축복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노력이 필요한 부분은 행위 부분이 아니라 내 자신이 나의 삶의 왕이 되려는 성향을 거절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자기를 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려는 내적인 싸움에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 가운데 마침내 기꺼운 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께 내 삶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후 주께서 시키시는 일만 하면, 우리의 마음과 삶에는 진정한 천국의 찬양과 감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본질상 죄로 부패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제 아무리 선을 행하려고 노력해도 믿음으로 행한 것이 아니면 여전히 죄악이요, 냄새 나는 것들뿐입니다. 그러나 내 대신 주님이 사시며 나를 통해 성령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한결 같이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18. 22-23). 

그러므로 착한 사람들이 주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들, 그래서 주님이 대신 사시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론은, 구원 받는 것도 믿음으로 받으며 신앙 생활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고, 로마서 1장 17절에서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 대신 사시는 가를 가르칩니다. 그 답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계시며 우리 대신 사십니다. 

엄마가 애기를 임신하면, 그 아기가 정말 엄마 뱃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음파를 통해 자기 뱃속에 아기가 있는 것을 알게 된 엄마는 그 애기 때문에 걸을 때도 조심합니다. 듣는 음악도 가려서 듣습니다. 태아에게 좋은 이야기를 읽어주는 엄마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타나는 행동들입니다.

영적 실체의 입장에서 보면, 내 안에 계신 주님은, 내 부모, 남편, 자녀, 심지어 내 뱃속에 있는 태아보다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은 내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자신의 모든 부분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누리고 체험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임신인 줄 모르고, 술 먹고 담배 피고 함부로 몸을 굴리던 여자가 자신이 임신인줄 알면 몸을 더 이상 함부로 굴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주 되신 거룩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함부로 죄를 않게 되고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을 조심하며 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계심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여기서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더 이상 말하는 사람도 내가 아니라 주님이셔야 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 4:11)고 당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이러한 승리의 그리스도인을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나" 입니다. 나 자신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절대로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옛 자아인 그 놈이 죽어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대신 사실 수 있는데, 그 놈이 죽지 않으니 예수님이 내 대신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 하나를 말하는데,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알라는 것입니다. 

나의 옛 사람, 즉 옛 자아는 내가 죽이려고 노력한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를 볼 때 예수님이 거기서 돌아가시면서 나의 옛사람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알 때에야 “아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나의 옛사람은 죽은 것과 다름 없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들이요 주께서 새 영을 주셔서 다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 분에게는 우리 옛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믿고 알아야 합니다. 
"나의 옛자아는, 나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 죽었구나." 

로마서 6장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선포하면서 믿고 알라고 당부합니다. 특히 바울은 “죽었다"는 과거형 동사를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3-4절과 6절, 8절, 그리고 11절을 보면 이러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옛 자아가 살아서 꿈틀거릴 때마다 그 곳에는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악당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옛 자아로 "선"이라는 제목아래, 또는 “종교” 및 "신앙"이라는 명목 아래, 더 큰 악을 범하는지요. 우리는 이 부분을 참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형제 자매들 사이에 벌어지는 수많은 미움과 시기와 분열과 더러움 뒤에는 그들의 죽지 않은 옛 자아가 소위 "선"과 "신앙"이라는 명목 아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교만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시 한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4-26)
고 강조하며 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예배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장 크게 요구하시는 것은 "네 옛사람은 나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음을 믿고 알도록 하라. 그러므로 오늘 또한 나와 함께 십자가에 너의 자아를 못박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첫 발자국은 언제나 내가 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죽지 않은 모든 열심은 결국 육신의 열매를 맺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를 빚어낼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죽지 않은” 열심은 언제나 나의 명예와 내 자랑을 위한 열심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고 주의 이름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장본인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심을 믿음으로 받으며 그분이 내 대신 살도록 의탁하는 가운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신자는 다름 아닌 믿음으로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즉,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사시도록 하는 인생이 믿음으로 사는 삶인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소망을 버립시다. 우리 자신은 선을 행하는데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닫고 빨리 자신을 포기합시다. 그리고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가지며 그분께 내 모든 것을 의탁합시다. 그 때야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왕과 주인님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를 대신하여 사시면서 하늘의 영광과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지친 나의 삶, 내가 주인이었던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내가 왕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었던 나 누구누구는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음을 믿습니다. 주님, 나의 왕이 되시고 내 대신 사시옵소서. 나는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후로는 내가 아니요 당신이 내 안에 사시며 주님이 나의 주인이요 왕이십니다."
 
매일마다 십자가를 보며, 죽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기억하며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여 살아가시기를 간구하면, 인간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 풍성하게 맺히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더 이상 죄성에 패배하지 않고 참으로 세상과 죄와 마귀에게 승리하는 새로운 신앙 생활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이제 이후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내 대신 사시는 인생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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