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는 반드시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가, 아니면 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떤 사업을 하여야 할까? 치킨 집을 할까? 아니면 빵 집을 할까? 지금 직장을 옮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떤 진로를 택하여야 하는가? 음대를 갈까 공대에 갈까? 

인생에 있어서는 이러한 진로 선택의 어려움이 있으며 또한 인생 속에서의 이러한 결정은 정말로 얼마나 중요한지요.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릴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보장하시고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중대한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습니까?  

먼저 잘못된 방법은 일반적으로 쉬운 방법입니다. 

첫째로 어떤 신비한 방법으로 미래를 알아내려 하는 시도입니다. 예를 들어 점을 치는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깊은 동기는 세속적인 성공과 풍요와 복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 대단히 악한 방법입니다.  

또는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방법도 그릇된 방법입니다. 물을 튀겨서 이쪽으로 되면 이 길로, 저쪽이 되면 저 길로 가는 식입니다. 또는 “주님, 내일 날씨에 따라 좋으면 이렇게 하고, 나쁘면 저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방 종교에서 동물을 죽인 후 간의 색깔을 보고 전쟁을 치를 것인지 말 것인지, 저쪽으로 공격할 것인지 이쪽으로 공격할 것인지를 결정했던 것과 유사한 방법입니다. 

어떤 30대 집사님이 선교 대회에서 선교사로 서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니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확인합니다.
“하나님, 내일 아침 일어나서 우리 아내가 바가지를 긁으면 회사원으로 있을 것이고, 안 긁으면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이러 식의 방법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방법이요, 일반적으로 자기 욕심에 속는 방법이며 마음 속에 있는 우상에게 속는 방법입니다. 즉, 자기 욕심을 따라 결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며 착각하는 간교한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바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의 방법입니다. 순종의 방법입니다. 

여기서 믿음의 방법이란 미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의 길은 한번에 한걸음씩만 인도함을 받는 길입니다. 

밤에 차를 운전하면, 해드라이트가 비치는 영역은 항상 한 발자국 앞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빛을 의지하며 계속 달려 목적지까지 잘 올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분별하며 사는 인생이란,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 줄 미리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하루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주께서 그 사람의 성품을 완성해 가시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일들을 이루어가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알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오늘이라는 날을 주님과 동행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성경으로 주의 뜻을 찾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믿음을 자라나게 하는 것이요, 이 믿음의 성장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장 의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란 말씀입니다. 

이에 히브리서 11장 8절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가고 그리고 그 이후에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는데 그때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오직 그날 그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길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인생을 돌아 볼 때,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이루어 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아도 요셉 자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인도해 가실 줄 전혀 알 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약속만을 기억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어렸을 적에 형들에게 팔려 애굽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것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요셉은 ‘나는 몇 년 후에 이 감옥에서 이러 저러한 방법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미래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즉, 요셉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몰랐지만, 오히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줄 모르기에 더욱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고 살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멋 훗날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총리가 된 사실이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애굽과 온 세상이 흉년으로부터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모세의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살인범이 되어 애굽에서 쫓겨나서 광야로 피신합니다. 그래서 양떼를 치며 40년 광야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세에게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80세가 된 때에 자신의 쓸모 없고 의미 없는 인생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면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실 것이라고 미리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기다리며 주를 향한 충성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모세가 가장 예상치 않던 어느 날, 어쩌다 호렙 산 떨기나무에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광경이 하도 이상해서 그리로 가까이 가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의 미래를 알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주님을 신뢰하게 하고, 더욱 기도하게 하면서, 주님과의 동행 속에서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을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복은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알아내려는 의도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도와 전혀 상반되기 때문에 마귀의 덫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이에 성경은 개인의 미래를 알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 가증한 악으로 간주합니다.

사무엘상 28장을 보면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 승패를 알고 싶어서 엔돌의 신접한 무당 여인을 만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일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는 가장 분명한 큰 죄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를 알게 된 사울 왕은 도리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사라고 하면서,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하면서 여러분의 미래, 사업의 미래, 자녀들의 미래를 알려 주겠다고 하면 그는 거짓 선지자요. 가짜 목사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고 하는 어떤 목사님은 교인들이 어디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지 물으면 그 가게 자리의 과거 역사를 알아오라고 한 후 예언을 해 줍니다. 보통 이런 목사는 반말로 말합니다. 
“그 가게 자리를 보니 10년 전에 술집이 있었구먼. 어어… 사람이 그곳에 살다가 죽은 기록도 있고, 이런 곳은 사탄이 너무 세게 역사하니 그곳에서 가게를 하면 성공하기는 글렀어.”

“그럼 어디서 가게를 열어야 하나요.”

“기도를 해보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저쪽에 가면 교회가 많이 있는 동네가 있다는데 그곳에는 귀신이 역사하지 않는다고 하시네. 분명히 그곳에서 가게 하면 돈 많이 벌거야. 그곳에는 귀신이 역사하지 않거든”

이렇게 미래를 알려 주는 목사는 가짜 돌팔이 목사입니다.

자! 그럼,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무튼 현 시점에서 나를 향하신 주의 뜻을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먼저 거룩함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도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은 거룩으로서 분리와 제거의 원리를 알려줍니다. 

우리의 길 중에 분명히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을 더럽히고 믿음을 멀어지게 하는 길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만과 미움에서 나온 결정은 하나님의 뜻과 위배됩니다. 

가끔 보면, 보복하려고 취하는 결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했던 남자 친구에게 보복하기 위해 원치도 않는 사람과 결혼해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멉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공동체에 피해를 주기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 수 없습니다. 도리어 이러한 인생 결정은 언제나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결정입니다.  

둘째는 사랑을 위한 결정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유명한 목사의 인기 및 그들의 받는 대접과 영광을 보고 목회 길을 원한다면 그는 완전 실패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보상보다는 영혼들의 고통을 보며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 그 길을 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서 주께서 그의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셋째는 은사의 원리입니다. 즉, 자신의 은사와 재능에 가장 잘 맞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주의 뜻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각자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일하고 싶은 것”에는 더러운 육체적 욕심, 곧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체질에 의하여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성실히 개발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넷째는 주의 영광을 위해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이삭이 우물을 팝니다. 이때 그랄 사람들이 그 우물을 빼앗습니다. 이때 이삭은 그들과 전쟁과 싸움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양보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악을 다투면서 경쟁하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양보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가장 좋은 우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랄 사람들이 따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이곳 우물 이름이 바로 “르호봇”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기도의 삶입니다. 깨어있는 성도는 주님과 한 마음을 갖기 때문에 주의 섭리 가운데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주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주의 뜻을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3:13).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가장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주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을 알기 위해 말씀을 연구하고 주님과 한 마음이 되기 위해 늘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오는 인생의 수다한 결정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인간적이고 어리석은 결정들이 아닌,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시고 가장 복을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주의 뜻대로 살아감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영원토록 하나님께 기억되는 축복된 주의 백성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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