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누가 혐오하는가?

퀴어(일명 성소수자)들은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이들을 향하여 혐오자라고 단정짓고 있다. 퀴어축제를 반대하러 나온 이들 가운데에서 그들을 혐오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이다. 대개의 시민들은 퀴어들을 혐오하지 않으며, 시민들이 들고 있었던 팻말에서 알 수 있듯이, 퀴어들이 다시 잘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그 팻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랑하니깐 반대합니다”

반대하는 것이 곧 혐오하는 것인가? 퀴어측 입장에서 우리들의 반대가 속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면 싫다고 하는 시민들은 무시하고 강행하는 퀴어축제주최측의 행태는 바른 것인가? 퀴어들의 삶을 인정하고, 퀴어들의 인권을 존중한다. 그러나 퀴어들의 축제를 통해 더 많은 퀴어들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고, 거기에는 우리들의 아이들이 있다.

우리들의 아이들은 아직 성정체성이 모호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눈과 귀에 퀴어들의 벗은 몸과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퀴어축제를 반대한다.


성소수자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이 소수임을 앞세우지만 그들은 이미 특권층이다. 동성애는 실상 에이즈에서 발생한다. 많은 이들이 이를 부인하지만, 의학적 근거와 통계자료는 명확하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에이즈에 걸린 이들은 단 1원도 자신의 돈으로 치료받지 않는다. 그들은 그 비싼 치료비를 전액 국가에서 보조를 받고 있다. 과연 이들이 피해자인가? 특권층이 아닌가?둘째, 누가 피해자인가? 퀴어들이 과연 피해자인가?

퀴어축제 이후, 퀴어측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나 실제 피해자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던 시민들이다. 언론은 거짓사실을 유포하여 반대측 사람들이 폭행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집회신고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은 퀴어측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었으며 이를 반대하는 이들을 폭행하여 119에 실려간 반대측 시민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그리고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의 죄목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과연 퀴어측이 피해자인가? 퀴어측은 피해자라기 보다는 가해자가 더 맞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퀴어주최측은 퀴어축제가 저지된 것이 유감이겠지만, 이러한 축제는 상식적으로 옳지 않은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퀴어축제를 꼭 해야 하겠다고 한다면 밤에 하던지, 혹 낮에 해야 한다고 한다면 장소에 대해서 시민들의 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퀴어축제를 반기지 않는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