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닥친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교회의식이 필요하다
십자가는 모든 고난을 고난을 말하지 않는다. |
◐위기는 한 몸으로
목회를 시작한지 벌써 18년이다. 지하실에서 시작했기에 항상 어려움이 삶의 동반자였다. 그러나 그 어려움으로 인해 낙심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고, 항상 가족과 함께 했던 교회 공동체가 있었기 가능했다. 18년 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다. 교회 사역하면서 가장 큰 위기를 꼽는다면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위기는 카드대란 사건이 일어났을 때이다. 교회구입으로 인한 매달 들어가는 은행불입금과 교회유지비로 숨 쉴 틈이 없던 개척 초기였다. 카드 몇 장을 돌려막기 하면서 교회를 한달 한달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카드대란이 터지면서 모든 서비스를 500만원 이하로 다 묶었다. 다음 달부터 카드를 돌려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내하고 말하기를 우리가 빈손으로 시작했는데, 내려놓자. 교회는 곧 경매로 넘어갈 것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편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지, 스스로 마음을 추수렸다. 교회가 문을 닫을 뻔 했다.
두 번째 위기는 교회가 무너졌을 때이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과 빚을 얻어서 교회 리모델링 150평을 했다. 공사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날 오후에 집기가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공사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고 교회에 들어왔는데, 그 한 시간 안에 시청직원과 용역팀들 40명이 와서 교회 입구서부터 1, 2층을 전부 다 파괴했다. 이유는 건축물을 불법으로 용도 변경하였기에 철거를 했다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기도원하면서 큰 어려움을 당한 적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사기꾼에 의해서 기도원이 매매된 경우일 것이다. 아버지의 인감을 가져다가 기도원을 서울의 00교회에 팔았다. 어느날 기도원을 구입했다는 목사님과 교회 관계자분들이 찾아왔다. 아버지도 서울 00교회도 사기꾼에 의해 사기를 당한 것이다. 결국에는 기도원이 경매로 넘어갔고 다시 땅을 팔아 기도원을 경매로 사는 피눈물을 겪었다. 아버지는 혼자 무거운 압박감과 가족의 눈총과 사람들의 비난의 화살을 혼자 견뎠다. 아버지 나이 50대 초반에 겪었다. 그 고난을 스스로 감내하며 견뎠다.
어려움을 당할 때 성도들의 반응을 보니 세 가지 부류로 나타났다. 첫 번째 부류는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었다. 말없이 안타까워하며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하며 작은 물질이라도 나누려고 하는 고마운 성도들이 있다.
두 번째 부류는 방관자가 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든 전혀 관심 없는 분들이 있다. 세 번째 부류는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분들이 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하기를, 신앙생활에는 항상 시험이 있다. 큰 시험을 받았다고 해서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오히려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이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리스도의 이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치욕을 당했다면 그것은 복이 있는 삶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을 때 오히려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라고 권면한다(빌4:12이하).
이것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다. 교회가 고난을 당할 때 한 몸이 된다면 어떤 시련도 뚫고 일어날 수 있다. 항상 위기는 있다. 위기 앞에서 무너지면 평생 고민의 늪에 빠지고, 위기를 극복하면 기쁨의 간증이 된다. 무엇보다 사람의 심령이 강건해진다. 이것이 고난을 뚫고 일어난 분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귀한 선물일 것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신문대표. 등 |
◐한국교회 위기 : 요셉을 모르는 애굽의 새왕 출현
앞으로 한국교회는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올 수 것이다. 이것은 인구 통계를 보아도 그렇고 현재 교회의 전체적인 연령대를 분석하면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미래가 대충 그려진다.
애굽땅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의 출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고통에 빠진다. 야곱의 후손들은 요셉으로 인해 애굽땅에서 대우받고 존경받았다. 그런데 새로운 왕은 요셉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요셉은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때부터 왜 외국에게 경제적 파이를 나누는 것에 불평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에 대해 박해가 시작되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왕의 출현으로 인해 야곱의 후손은 노예로 취급받았다.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한국교회도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모든 정책들이 한국교회 선교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들만 입법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1)현정부와 여당은 ‘혐오표현 규제법안’을 2018.2.14.에 입법예고 했다. 말은 좋은데 이 법안의 실제적인 목적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 발언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동성애는 죄라고 말할 경우 범법자가 된다.
(2)유럽교회를 초토화시키고 미국교회를 무너트린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얼마나 좋은 법인가? 그런데 선교를 가로막는 악법이 들어있다. 성정체성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내용이다.
이법이 통과되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미국을 보면 예측할 수 있다.
a)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다’라고 이야기하면 ‘성 평등’에 어긋나는 범법행위가 됨.
b) 길거리에서 전도하면 ‘종교 평등’에 어긋나는 범법 행위가 됨.
c) 동성애자가 ‘결혼 케이크 만들어주세요.’ 라고 했을 때 ‘동성애자에게는 못 만들어준다’라고 하면 ‘차별 행위’, 즉 범법 행위임.
d) 아이들에게 ‘교회 가자’라고 말하면 ‘종교 평등’에 어긋나는 범법행위가 됨.
e) 성경도 차별금지법을 위반한 ‘불법 출판물’이 될 수 있음.
영국은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때, ‘한 줌도 안되는 동성애자들이 무엇을 하겠어.’ 하고 방치하였다. 그 결과 차별금지법은 아무 저항없이 통과되었고, 영국 교회는 초토화 되었다.(안드레아 윌리암스 영국 변호사 간증 ‘기독교인의 지옥으로 변해가는 영국’ 참조)
(3)문재인 대통령은 금년에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바꾸려했다. 동성애를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양성평등은 남자 여자의 평등을 뜻한다. 성평등은 수십 가지의 성을 모두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성이 아니라 다양한 성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기독교 선교를 가로막는 악법들을 입법화하려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노력으로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많은 분들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된 것이다.
국가기본인권계획안(NAP)철회반대운동 |
(4)모든 노력들이 저지를 당하자, 현 정부가 시도하는 것이, 국가인권기본계획(NAP)이다. 법을 못 바꾸니까? 청와대가 정책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교수와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 목사50명이 청와대앞에서 실명을 밝히고 혈서를 쓰면서 막았지만 청와대는 이 법을 통과 시켰다. 국가인권위는 입법, 사법, 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관이다. 그렇다보니 권력의 견제, 감시 장치 조차 없다. 국가인권기본계획은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했던, 의회에서 추진했던 모든 법을 총괄한 악법의 종합선물세트이다. 국민의 양심과 종교,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음세대를 망치는 법이다. 친동성애 정책이 골자이다.
(5)더불어 민주당 의원 11명이 8월 6일 ‘사회복지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종교시설에서 직원, 거주자, 이용자등에게 예배를 비롯한 종교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위반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한다는 안을 발의했다. 이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다. 종교단체들이 모여서 9월 13일에 철회 집회를 했다. 종교계가 복지 시설을 만들고 운영할 때, 대부분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무엇보다 복음전도 차원에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복지시설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 기독교 말살 정책이라고 보고 있다.
◉공교회의식
많은 기독인들은 선교의 길이 막히든, 우리 사회에 동생애자들이 판을 치든,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든, 길거리에서 퀴어 축제를 하든 관심이 없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이다. 내 교회와 내 가정과 일터만 피해만 받지 않으면 무슨 상관이랴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법이 제정이 되면, 지켜야 한다. 안 지키면 법에 의해 제재를 받는다. 한 번 법으로 제정되고 나면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한국교회에 닥친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교회의식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한 몸이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다. 그것을 우리는 공교회라고 한다. 공평한 교회라는 뜻이다.
작은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큰 교회는 교회인것처럼 느끼고 말한다면 기본적으로 공교회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모일때마다 사도신경을 암송한다. 사도신경이 무엇인가?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어떤 진리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기독교를 믿는다는 선언문이다. 사도신경에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라고 우리는 암송한다. 공교회란 모든 교회는 하나라는 것이다. 공평하다는 것이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들이 작은 교회를 보고 우습게 여기고 하찮게 바라본다면, 기본적으로 그분은 사도신경의 가치를 거부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어려움앞에서 혼자 배부르다고, 편하게 살며,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사람은, 그 교회는 공교회의식이 전혀 없는 아주 이기적이고 세속화된 종교집단에 불과하다.
신약의 교회는 에베소 교회라고 말할 때 에베소 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를 지칭한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지역에 있는 교회 전부를 말한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라는 것은 개별교회를 지칭하지 않는다. 교회를 한 덩어리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공교회이다. 하나의 교회이다.
한국교회목회자와 성도들은 내 교회의식이 강하다. 옆에 있는 교회가 죽어가도 나몰라라 한다. 그래서 국회에서, 정부에서, 청와대에서 반종교적 기독교 선교를 저해하는 법을 만들어도 관심이 없다. 일부 깨어 있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싸우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한다. 뭐가 저렇게 과격해. 왜 교회를 시끄럽게 해, 은혜롭지 못하게. 참으로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한심한 존재들이다. 왜 그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외치는가?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누가 칭찬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 시간 내서 자기 물질을 내서 참여한다. 왜,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깨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공교회이다. 하나의 교회이다. 이럴 때, 한국교회에 닥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공교회란 자기교회와 모든 교회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라는 신경의 고백을 다시 묵상해야 할 역사적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