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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절기】8 - 대속죄일(יום כיפור,יֹום הַכִּפֻּרִים지성소로 들어가는 날
  • 김수경목사
  • 승인 2018.09.1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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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3:26-32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7.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28.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29.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30.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31.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32.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

대속죄일(יֹום כיפור 욤 키푸르, יֹום הַכִּפֻּרִים 욤 하 키푸림)은 유대력으로 티쉬리(7) 월 10일이며 유대인들이 1년에 한 번 속죄하는 날로 큰 안식일이며 성회로 모였다. 이 날에는 육체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까지 금지되었으며, 만약 이 날에 일을 하면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를 모르는 자로 죽임을 당했다. 따라서 이 날은 오직 금식을 하면서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한다. 

크리스천은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지만, 유대인이 지키는 오순절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은 날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고 내려왔을 때, 산 밑에서는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출 32:30)

모세는 이스라엘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큰 죄"라고 하며 그 죄를 속죄하러 하나님께 다시 올라갔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모세는 40일간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반역한 그들을 위하여 자기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며 간절히 하나님께 속죄하고 내려왔다. 모세가 40일간 속죄하고 내려온 날이 속죄일인 티쉬리 월 10일이다.

출애굽기 34장 29절 이하를 보면,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속죄하고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므로 사람들은 그에게 가까이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에 무척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임재는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과 연기와 불과 우뢰와 번개 가운데 임하셨기 때문이다(출 19:16-19, 20:18).

그 뒤에 주께서는 70명의 장로를 산 위로 부르셔서 만나주셨고,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오면 속죄소 앞에서 만나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주 앞에 엎드려 회개할 때이다.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그분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수 없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2)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은 날개를 펴서 언약궤와 속죄소를 덮고 있으며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했다.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1년에 한 번 모든 백성을 대표한 대제사장을 통하여 만나주시고 죄를 사하여 주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죄양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셔서 보혈의 피를 흘리시므로 피뿌림을 받은 우리들은 그분의 보혈의 공로로 1년에 단 한 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매일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

▶대속죄일의 의미

대속죄일의 히브리어 '욤 키푸르'의 '욤'은 '날'을 의미하며 '속죄'를 뜻하는 '키푸르'(כִּפֻּרִ)는 동사 '카파르'(כָּפַר)에서 유래했다. '카파르'(כָּפַר)는 '속죄하다'(make an atonement) 이외에 '화해하다'(make reconciliation), '용서하다'(forgive), '덮다'(to cover), '자비롭다'(be merciful), '씻다'(cleanse)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대속죄일'이라는 말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어주고 덮어주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하여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는 매우 기쁜 날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피는 죄를 속하는 것"이므로 아무데나 뿌려지면 안된다. 그래서 어떠한 피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 마시라고 한 것이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과거에는 대제사장 이외에 그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러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대제사장도 1년에 한 번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대속죄일에만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왕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는 아무 때나 어디에서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아무 때나 어디에서나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자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게 됐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회개할 수 있도록 만나주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너무 교만하다. 1년에 단 한 번 만나주시던 주님을 매일 만날 수 있게 되니 회개를 해야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도 습관적으로 늦게 나가서 예배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또 다른 볼 일 때문에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기도 한다. 심지어 빠지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나 밤에 자기 전에도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그리고 예배하기 위하여 정결하고 거룩한 옷차림이나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기 취향에 맞고 편한 옷차림과 편한 마음으로 나아간다. 예배를 구경하러 가는 구경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말로 주님을 두렵고 떨림의 대상이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예배 시간에 늦을 수 있으며 중간에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덥거나 춥거나 불편하다고 내가 원하는 옷차림과 자세로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을까?

레위기 16장에는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께 나아갔다가 죽은 뒤에 주께서 모세에게 죽고싶지 않으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아무 때나(무시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찌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을 위하여 수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하여 수양 하나를 취할찌니라"(레 16:1-5)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찌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레 16:12-13)

이 말씀을 통하여 아론의 두 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기에 죽은 것을 알 수 있다. 속죄소에서 주님을 만나는 날은 1년에 한 번 대속죄일 뿐이며, 또 그곳에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대제사장의 화려한 옷을 입으면 안 되고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만 한다. 또 반드시 목욕을 한 뒤에 세마포 옷을 입고 그곳에 들어가야 하며 빈손으로 들어가도 안 되며 반드시 향과 피를 갖고 들어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절기와 안식일

많은 이들이 '여호와의 절기'와 '안식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여호와의 절기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절기'와 '안식일'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따라서 절기들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그분 안에 거할 때, 지켜지고 완성되는 것이다.

성경은 결혼을 통하여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말씀한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한다. 주님 없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율법을 친히 만드시고 완성하신 주님과 한 몸이 된 이들에게만 계명을 지켰다고 인정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절기나 안식일을 지켜야 하느냐에 대하여 쓸데없는 논쟁을 하느라 세월을 아끼라는 주님의 말씀을 헛되이 지키고 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아 6:3)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스스로 괴롭게 하는 날

본문 27절에 보면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 32절에서도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라고 말씀한다.

Mishnah의 Yoma 8:1에 의하면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금식'(물도 마시지 않음), '금욕'(부부관계), '목욕 및 샤워 금지', '향수나 크림 금지', '가죽으로 된 신발과 옷 착용 금지'

특히 이 날이 안식일과 겹칠 경우 안식일은 기쁜 날이므로 금식하지 않지만, 속죄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שַׁבַּת שַׁבָּתֹון)이며 반드시 금식을 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했다. 그래서 안식일과 명절이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힐렐 2세는 티쉬리 월 1일이 수요일이나 금요일이 되지 않도록 했다(359년).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שַׁבַּת שַׁבָּתֹון)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레 16:31)

속죄일을 맞으며 우리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괴롭게 하면서 안식을 지키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국어에서 말하는 '안식'을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씀하는 '안식'의 개념을 모른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안식하는 것이라는데, 이것이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가 될까?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절대로 이해 불가능이다.

안식일의 개념은 우리가 하고싶은 모든 것을 중단하는 것이다. 오락이나 운동을 하며 놀고싶고, 사먹고 파티하고 싶고, 학교 공부나 숙제를 하고 싶고, 자고 싶고, 돈 벌고 싶고, 데이트하고 싶고, 커피숖에 앉아서 즐기고 싶고, 여행을 가고싶은 우리의 모든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끊는 것이 안식이다. 

오직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하며 그분만 예배하며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중단하는 것이 진정한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안식일에 제사장들은 절대로 쉴 수 없었다. 가장 바빴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셨다. 세상이 돌아가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일하신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알기에 예수께서 하신 그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만 예배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고 부인하고 내려놓고 번제물이 완전히 재가 될 때까지 타듯이 우리를 온전히 그분께 드리는 희생의 날이 안식일이다.

올 2018년 대속죄일은 9월19일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18일 저녁부터 19일 저녁까지 금식하며 그 동안 주 앞에서 40일간 회개하며 기도하며 구제해 온 것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죄가 용서함받아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5일 후 한국이 추석으로 지키는 24일이 '장막절'이다. 이 절기들은 이스라엘의 절기가 아니라 "여호와의 절기"이다(레 23:2).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국의 추석과 여호와의 절기 중 마지막 추수때 즉 심판때인 추수감사절인 장막절이 자주 같은 날이다. 왜냐하면 추석과 장막절 모두 보름달이 뜨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미국 청교도들의 전통에 의해 11월 마지막주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켜왔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은 추수감사절을 사람이 만든 시기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날인 장막절에 지켜야 할 것이다. 

한국의 추석은 조상을 신으로 섬기며 조상 신에게 제사하는 우상숭배의 날이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며 우상이 아닌 참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로 지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바리새인들의 전통을 이어받으면 안 된다. 여호와의 절기인 대속죄일을 맞으며 성경을 잘 몰라서 그 동안 사람이 만들어놓은 전통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것이 얼마나 많은지 성령 안에서 묵상해보자.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 7:8-9)

▶대속죄일의 절차

이날에 대제사장은 모든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서 정결한 동물의 피를 속죄소에 뿌리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원했다. 대제사장은 먼저 자신과 그의 가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수송아지의 피로 속죄하고 이어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염소의 피로 속죄했다.

(1) 대제사장은 향로를 취하여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채우고,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서 지성소로 들어가 분향하여 향연으로 속죄소를 가려서 죽음을 면하게 한다(레 16:12-13).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2) 분향 후 수송아지의 피를 갖고 지성소에 들어가 대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을 속죄하기 위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그 피를 뿌리고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린다(레 16:14). 7은 완전 수로 일곱 번 피를 뿌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완전하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히 7:27, 9:12, 10:10).

(3)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두 마리의 염소가 준비되는데 대제사장은 성전 동쪽 문에서 두 염소를 제비 뽑은 뒤 여호와를 위한 것과 아사셀을 위한 것을 구별한다. 그리고 아사셀 염소의 뿔에 ‘아사셀을 위하여’ 라고 쓴 붉은 띠를 묶는다.

(4) 대제사장은 속죄제 염소로 제비뽑힌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2)와 같은 방식으로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린다. 

(5) 성소에 있는 분향단을 위하여 속죄하기 위하여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분향단 귀퉁이 네 뿔에 바르고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서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분향단을 성결케 한다(레 16:18-19).

(6) 대제사장은 동쪽 문으로 가서 두 손으로 산 염소(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렀을 때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낸다(레 16:20-21).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가는 동안 대제사장은 소의 내장을 제거한 뒤 소와 염소를 묶고 아사셀 염소가 절벽에 이르렀을 때 불로 사른다. 이때 염소가 다시 돌아오는 불상사(죄가 돌아옴)를 막기 위하여 절벽으로 끌고가 밀어서 죽인다.

(7) 대제사장은 여인의 뜰로 가서 대속죄일과 관련된 토라를 읽은 후 지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세마포 옷을 회막에 들어가 벗고 거룩한 곳(정결탕)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두 마리의 양으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린다. 두 마리의 양을 북쪽에서 잡고 그 피를 담아 번제단 둘레에 바른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속죄제 희생의 기름을 단에 불사른다(레 16:23-25). 그리고 소제와 전제를 드린다.

"7월 10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너희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년 된 수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수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속죄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민 29:7-11)

(8) 세 번에 걸쳐 지성소에 출입하며 번제를 마치면 대제사장은 흰 세마포 새옷으로 갈아입고 손과 발을 씻고 지성소에 들어가 향로와 불을 제거하고 향로와 부삽을 가지고 나온다.

(9) 수송아지와 염소의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어다가 불사르고 그것을 불사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 수 있다(레 16:27-28).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

이날 모든 사람은 흰 옷을 입고 오는데, 계시록에서 흰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한다. 또한 매50년째 되는 희년에 있는 속죄일에는 모든 빚을 탕감해 주어야 했으며 팔렸던 종들도 해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한이 없으신 자비하신 분이다. 그래서 어떠한 죄도 하나님 앞에 고백될 때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신다. 그러므로 속죄양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셔서 단번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를 우리는 잊지말아야 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우리의 예배는 반드시 회개가 동반되어야만 한다. 회개가 없는 예배는 가증한 종교의 형식일 뿐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할 수 있는 특권이 바로 회개이다. 회개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마귀의 종노릇하던 곳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회개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현대의 유대인들은 속죄일이 시작되기 전 오후에 만찬을 갖는다. 그리고 속죄일은 목욕이나 샤워를 할 수 없기에 속죄일 전에 먼저 정결 의식을 행한다. 대속죄일 저녁이 되면 남자들은 키텔(Kittel)이라는 흰 예복을 입고 기도회로 모인다. 저녁 기도회에서는 '콜 니드레(Kol Nidre) 기도'로 시작한다. 그래서 대속죄일 저녁에 드리는 예배를 '콜 니드레'라고 부른다.

막스 브루흐(Max Bruch)의 첼로 협주곡으로 유명한 '콜 니드라이'(Kol Nidrei, Op. 47: 신의 날: Day of Atonement)는 아람어인 '모든 서약들'(All Vows)이란 뜻의 '콜 니드레'(Kol Nidre)를 <히브리 선율에 의한 첼로, 관현악, 하프를 위한 아다지오>로 하프와 관현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환상곡이다.

콜 니드레 기도는 "모든 서약들"이라는 말 그대로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실행하지 못한 모든 서약들을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기억하지 않으시고 도말해주시기를 바라며 하는 기도이다. 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계명을 어긴 것을 용서하옵소서. 우리가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많이 한다. 특히 대부분 말로 지은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악한 혀'(라숀 하라아 Lashon ha-Raa)라는 뜻의 죄 즉 거짓 맹세하거나 악하게 말하거나 저주나 욕을 한 것들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이다.

그 동안 나의 입에서는 어떠한 말이 나왔는가? 주님과 사람들에게 무언가 하겠다고 말로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은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은 어떤 것들인가? 그러면서도 우리의 혀가 '악한 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7월10일에는 오전 8-9시부터 회당에서 예배가 시작되며 오후에는 요나서를 낭독하는데,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처럼 유대인들도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얻기 위함이다.

대속죄일의 마지막 예배를 '네일라'라고 한다. 이때 예배자들은 마지막으로 네일라 기도를 한다. 그들은 마지막 기도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테키야 그돌라'의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모든 예배와 대속죄일이 끝난다. 

테키야 그돌라의 긴 나팔 소리는 금식이 끝났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죄의 용서함을 받은 기쁨을 갖고 5일 후에 있을 여호와의 절기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장막절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각자 집 앞에 초막(수콧)을 만들기 위해 종려나무 가지를 비롯한 초막에 필요한 것들을 나르며 마지막 심판날인 추수 때를 준비한다.

여호와의 절기 중 가장 마지막 절기인 장막절은 안식일을 의미한다. 장막절은 7번째 절기이며 안식일은 7번째 날이다. 7은 완전 수이다. 불완전한 인간(인간의 수는 6)이 하나님(하나님의 수 1)과 하나가 된 상태가 7이며 그것이 안식이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만이 무시로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감사절인 장막절에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결혼 잔치를 하게 되는 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신랑과 대화를 안 할 수 있단 말인가?

안식에 들어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천국을 소유한 것이며 임마누엘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지성소에 들어간 것이다. 지성소에는 세상의 것은 아무 것도 갖고 들어갈 수 없고, 화려한 대제사장의 옷도 입을 수 없고 오직 '성도의 옳은 행실'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흰 세마포 옷'만 입고 '성도들의 기도'인 '향'과 '속죄할 피'를 갖고 들어갈 수 있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와 선한 행실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외에는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가? 그것을 모두 중단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정말 만족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수 있는가? 나 스스로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할 수 있는가? 지금 내가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정말 버리기 싫은 것이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나의 우상이며 회개할 제목이다.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찌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렘 2:22)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깨끗케 할 수도 구원할 수도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할 수록 '자기의 의'라는 더러운 때가 계속해서 추가될 뿐이다. 우리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아야만 비로소 정결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속죄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벧전 1:2)

유대인들은 다른 절기보다 대속죄일을 가장 열심히 지킨다. 그 이유는 그들의 행위를 기록한 책이 마지막으로 봉해지는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께서 마지막으로 책을 봉하시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금식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속죄일이 되기 40일 전부터 잘못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대속죄일에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할 자격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말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속죄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에 크리스천들 중에 대속죄일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관심도 없다. 그래서 그 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허다하다. 심지어 목사들 중에는 대속죄일이나 여호와의 절기 이야기를 하면 이단처럼 취급하는 이들도 있다.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여호와의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그분을 제대로 알기 위해 예행 연습을 하는 리허설(성회)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그러한 리허설(성회)을 통하여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분이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으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열심히 리허설을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대속죄일을 맞을 때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여 금식하며 회개하는 가운데 주님의 긍휼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구약에 있는 말씀들과 규례들을 구시대의 유물로 착각한다. 제사제도는 십자가 사건으로 폐하여졌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것이 폐하여 진 것이 아니다. 

대속죄일을 맞으며 요나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니느웨 사람들처럼 함께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자. 그것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것이다. 아론의 두 아들처럼 하나님의 지시하신 방법이 아닌 자기들 마음대로 들어갔다가는 죽는 곳이 지성소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의 길을 가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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