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던 교회가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로

시골에서 시작하다

교회의 모습은 하나님의 선한 역사하심과 성령님의 인도함속에서 하드웨어가 세워지고 소프트웨가 잘 실행되며 원활하게 돌아갈 때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가져오는 것 같다. 브니엘교회(구 신창교회)는 1979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 100여 가구 살고 있는 동네에 나사렛성결교단의 김동기 전도사가 전(田) 477평을 매입하여 교회 38평 사택 9평을 직접 건축하고, 이에 마을 주민 4명과 주일학생 10여 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후 목회자의 생활고의 어려움으로 교역자가 여러 번 바뀌다가 1984년 기독교대한성결교단의 이호연 전도사에 의해서 성결교단으로 새롭게 개척 출범이 되었다. 2대 담임자였던 박운암 전도사가 교회를 성장시키며 성전바닥을 콘크리트로 공사하고 예배 반주용 피아노와 승합차를 구입하는 등 교회의 모습이 세워져갔다. 이후 서도원 전도사, 배문성 전도사, 전상진 전도사, 강요한 전도사가 담임교역자로 수고하다가, 2003년도에 7대 담임자로 김병식 목사가 부임 했다.

기성, 아산 브니엘교회 김병식 담임목사

부임 당시 교회는 장년 성도 9명과 주일학생 6명이 있었는데 교회 부흥을 위한 첫 단계로 직원헌신예배를 시작으로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마을과 주변 마을 심방을 통해 교회부흥에 매진하자 부임 첫해 보다 다음해에는 2배의 성장을 이뤘다.

교회가 부흥되가자 교회 성도들과 이전 사역자들의 바램 이었던 교회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중에 먼저 교회가 세워진 땅이 전(田)으로 되어 있어서 대지(垈地)로 전환해야 했고, 교회 부지 중 대지로 되어 있던 땅은 예전 교회 개척 멤버인 모 권사님 앞으로 등록된 땅이었기에 삼고초려의 심정으로 찾아가 무상증여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대지로 전환하는 비용이 시골 미자립 교회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기도하는 중에 타(他)교회와 소속 지방 몇몇 교회들의 도움과 성도들의 헌금으로 어렵사리 대지로 전환 등록하였다.

하지만 교회의 부지를 되찾고 전환하는 과정에서 김병식 목사와 사모가 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사모가 위암2기 진단을 받고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긴급하게 개복 위 절제 수술을 하였다. 두 번에 걸친 절제 수술비와 암 진단비 수술 보상금을 합해서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3천 만 원의 보상금 중 1천만 원은 수술 후 건강관리비용으로 사용키로 하고 2천만 원은 교회의 건축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수술 후에는 오래된 사택에 습기가 많고 곰팡이가 많아서 위암수술을 받은 사모와 필자의 딸아이에게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당시 담당 주치의와 성도들의 권면으로 사택을 옮기기로 했다. 재정이 없던 처지에서 처형의 전적인 도움으로 사택을 근처 아파트로 옮겨 건강관리를 했다. 그 후 하나님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건축헌금을 드린 김목사와 사모의 믿음을 보시고 위암 완치 판정받게 하셨다.

그러는 중에 ‘사모가 암에 걸려서 교회 다니기가 싫다’며 교회를 떠나는 권사도 있었고, 어떤 성도는 자신의 딸을 다른 교회로 보내다가 나중에는 다른 성도들을 선동해서 그들을 데리고 교회를 떠났다.

신창성결교회(현, 브니엘교회)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김 목사 내외는 얼마나 엎드리며 울었는지 모른다. 그 후 떠난 대부분의 성도들이 갑작스런 질병과 사고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그들의 영혼과 처지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교회를 나간 사람들이 회개하면서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변화의 기로에서

그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움으로 2006년 8월에 교회의 이전을 위한 대지 165㎡(50평)를 계약 체결했다. 또한 이런 가운데에도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2004년에 스텔라 영어학교(영어성경공부)와 2005년 1월에는 한우리 독서학교를 개강하고, 2006년 봄에는 솜다리 도서관(현 브니엘 도서관)을 개관했다.

교회가 점점 내적인 기틀을 세워가는 동안 건축 부지 계약 시점부터 교회 건축기간과 그 후 까지 10년 동안 이자비용을 오롯이 감당해 준 사모의 수고를 김 목사와 성도들은 잊지 못한다. 아산시 용화동 도시개발 계획지구에 대지를 구입한지 8년 후인 2014년 4월 교회 건축이 시작되었다. 연건축 면적 연건축면적 534.6㎡(162평)로 1층은 주차장과 화장실, 1층의 중이층은 북까페(주일은 식당으로 사용)와 도서관, 2층은 본당 예배실, 3층은 교육관, 4층은 사택, 5층은 게스트룸으로 시공되었다. 이작은 건물에 화장실이 10개나 있지만 그리 좁거나 답답한 설계는 아니다.

작은 부지위에 견고하고 알찬 예배당 건축을 한 것이다. 아름다운 예배당이 세워지는 가운데 성도들과 지인들 그리고 지역의 목회자들과 감찰교회의 기도와 수고를 잊을 수 없다. 또한 천안성결교회의 윤학희 목사의 도움으로 간판과 십자가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공개에서 공유로, 공유는 공동체 책임과 공동체 성장으로

2016년 6월 새성전 건축을 마치고 성전 이전 예배를 감격 가운데 드린 브니엘교회에 새로운 성도들이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년이 넘게 등록을 하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새벽에 기도 하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왜 그들이 등록하지 않은 것 같으냐?” “하나님,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잖아요. 작은 교회에 다니면서 자기에게 솔리는 눈길이 부담스럽고 건축 후 건축 빚도 있는 게 싫어서 아닌가요?” 그러자 하나님이 뜻밖에 질문을 하셨다. “그러냐! 너는 교회에서 생활비 얼마나 받느냐?” 김 목사는 “하나님, 제가 월급을 받는 것에 집착하는 목회를 하면 월급쟁이 목사가 되었겠지요. 저는 담임 목회하면서 부터는 교회에서 주는 생활비는 10만 원 이상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가 교회 운영비를 보태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이 또 물으셨다. “그러면 너 생활비 지원비로 들어오는 선교비는 얼마나 되지?” “네. 지방회 선교위에서 보내준 40만 원과 교회 건축 후 어렵다는 것 알고 돕고 있는 몇몇 후원교회와 지인으로 들어오는 5만원...10만원 그래봐야 대여섯 곳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모든 선교비 중에서 얼마나 받느냐?” “한 달에 10에서 30만원 사이에서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너는 이번 주부터 주보에 모든 재정 수입과 지출을 공개하고 너에게 들어오는 선교비도 공개해라.”는 말씀이 세미하게 들려왔다.

‘아! 하나님! 이것은 우리교회 성도들은 다 아는 일인데요...’ 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에게 생활비 명분으로 지원받는 선교 후원금를 공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해서 바로 매주 주보에 수입과 지출을 공개하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세부 사용처와 후원자들의 이름으로 자세한 수입 지출을 공개했다.

놀라운 일이 생겼다. 공개 후 우리교회 주보를 보고 교회를 찾아오는 분들 생기기 시작했고, 등록을 결심한 성도들과 청년들이 늘기 시작하다가 이듬해인 2017년 3월부터는 준비된 식당 공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 1층 복층 공사를 시작했다.

브니엘 교회의 북까페는 평일에는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빵과 커피도 대접하며 섬기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독서룸에서는 영어성경읽기, 역사논술, 영어학습지도, 고전 인문학 강좌가 이루어지고 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공동체를 꿈꾸며(마 13:52)

브니엘교회는 어린 아이부터 80대까지 함께 예배를 드린다. 매월 첫 주는 첫 주 감사예배로 드리면서 성찬예식을 한다. 매주 주일 낮 예배는 11시 20분전부터 11시 10분까지 약 30여분을 찬양으로 시작하고 설교가 끝나면 다같이 공동 기도제목으로 5분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한다.

매월 첫주 그리고 모든 절기예배와 교회기념일은 천국 잔치처럼 더욱 풍성한 식탁 공동체를 이룬다. 이날에는 모든 기관의 모임이 정지되고 오후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도록 배려한다.

주일 오후예배나 저녁예배는 없지만, 공동 식사 후 부서별 성경공부와 나눔을 하고 합심기도가 이어진다. 그 자리는 새로운 기도제목도 나누고, 교회에 건의사항도 말할 수 있고 이것을 위해 또 합심하여 기도한다.

브니엘교회는 12가정이 신앙공동체 핵심을 이루며 섬기고 있다. 특히 보석 같은 청년들의 헌신이 있다. 헌금을 강조하거나 설교하지 않았지만 어떤 청년은 공공근로와 알바를 통한 230만원의 수입을 전액 헌금으로 드리기도 했고 이를 계기로 청년들의 100%가 십일조 생활을 하는 역사로 이어졌다.

성도들과 청년들의 마음의 변화와 믿음에 변화는 교회 정책의 공유와 참여, 그리고 교회 재정의 투명한 공개와 소프트웨어의 실행과 성령님의 선한 역사에서 일어났다.

청년들은 50만원에서 150만 원 이하의 알바비를 받는다. 자신들의 생활고의 어려움이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드리면서 말씀을 따르고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 교회는 청년들이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교회도 청년들을 향한 복지 소프트웨어를 실행시켰다. 청년들 중 150만 원 이하의 수입에서 드린 십일조는 30%를 청년들의 “청년 믿음생활 후원금”으로 후원하고 있다. 장년성도들에게는 “위로하고 도우라”라는 소프트웨어를 실행하고 있다. 위로할 이웃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추천하면 그곳에 교회와 성도들의 집중적인 도움과 사랑을 아무 댓가 없이 보낸다. 또 하나의 복지 소프트웨어를 준비하고 있다. 장년 성도들 가정 중에서 200만 원 이하의 수입에서 드린 십일조는 성도들에게 30%를 “장년믿음생활 후원금”으로 후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전에는 희망 없는 교회라던 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브니엘교회는 희망 있는 교회라는 이야기 자주 듣는다. 브니엘교회는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작지만 강력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교회 북까페에서는 커피 로스팅 전도 소프트웨어 실행을 계획하고 있다. 브니엘교회는 40가정이 넘으면 교회 분리개척을 계획하고 있다. 야곱이 보았던 브니엘의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지금 브니엘교회를 통해 지역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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