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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임은 효율과 개혁을 위한 방법 』황상하의 신학덕담

영어의 프레임(frame)은 창문틀이나 액자 또는 안경테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이 경우 프레임은 무엇을 담는 것임과 동시에 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프레임이 모든 경우에 보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학에서는 프레임을 가리켜‘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사물이나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세상을 관조하는 방식, 또는 사람이나 무엇에 대한 고정관념 등도 프레임라고 부릅니다. 신념이나 확신, 착각이나 오류, 실수와 오해 같은 것들은 프레임으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패러다임(paradigm)은 프레임(frame)보다 광범위하고 차원 높은 개념이고, 이해를 위한 편의상 패러다임 아래 정책(policy)을 놓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코페르니쿠스의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이 패러다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동설 이후 모든 천문학은 그 패러다임의 범위를 넘지 못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 안에 수많은 프레임이 존재합니다. 때로 패러다임과 프레임이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패러다임에서 프레임 그리고 정책의 순서로 이해하는 것도 편리할 것입니다. 어떤 가치나 목적 아래 정책이 축적되면 프레임이 되기도 합니다.

정치나 문화에 있어서 프레임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정치나 사상이나 문화 활동을 쉽게 이해하고 참여하도록 하는데 유용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정치나 문화나 학문을 펼침에 있어서 프레임은 매우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프레임이 효율만을 위하고 개혁 지향적이지 않고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할 경우 그 집단은 물로 다른 집단에까지 심각한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근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정치적 프레임이라 할 만한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유신독재에 대하여 중립적인 해결책으로 이원집정부제 프레임이 시도 되었고, 6.25로 인해 비대해진 군부를 달래기 위한 군민연합체 프레임이 시도 되기도 하였으며, 광주사태에 대한 집권층의 ‘폭동’과 민주운동 측의 ‘의거’라는 규정에 대한 중립적 대안으로 제시된 ‘광주민주화’프레임, 68혁명 이후 세계적인 경향에 편승한 민주노총합법화 프레임, 남북 관계에 대한 ‘군사적 긴장완화 프레임, 김종인 씨가 제안하여 법률이 된 경제민주화(제 119조 2항) 프레임, 강원룡 목사의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시작한 중간집단교육 프레임 등이 시도되어 성공하여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들도 있고 사멸된 것들도 있습니다.

지금 현 한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경제 정책은 민주노총합법화 프레임과 같은 맥락이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도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 프레임의 연장이었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도 역시 군사적 긴장완화 프레임의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프레임은 보편 가치를 존중하고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번영을 지향해야 합니다. 문화상대주의가 확산된 이래 민족주의와 전통가치는 여지없이 폄하되어 왔습니다. 소위 상대주의 프레임이 유럽을 점령하고 미국까지 파죽지세로 그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상대주의 프레임은 동기와 목적에서 안티 기독교적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민족주의와 전통 가치를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역사적 유물로 취급합니다. 68혁명 이후 상대주의 프레임의 직격탄을 맞은 나라 중 하나가 미국입니다. 가장 먼저 미국의 대학이 상대주의 프레임에 점령당했고, 뒤 이어 문화가, 그리고 기업과 정치까지 상대주의 프레임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상대주의 프레임 아래서는 국가나 민족의 이익을 우선할 수 없습니다. 이에 편승한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기업과 기업주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노동력이 싼 저개발 국가에 공장들을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상대주의 프레임이 너무나 강력하게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이에 편승하여 국가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이 글로벌 기업들과 저개발 국가들과 검은 거래를 통해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그것을 정당화 해 준 것이 소위 세계무역기구 WTO(World Trade Organization,)입니다. WTO는 회원국들 간의 무역 관계를 정의하는 많은 수의 협정을 관리 감독하기 위한 기구입니다. 세계무역기구는 1947년에 시작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체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세계 무역 장벽을 감소시키거나 없애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 간의 무역을 보다 부드럽고, 자유롭게 보장해 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개발 국가들에게 WTO는 더 없이 좋은 기구입니다.

WTO는 무역 체계의 기본 원칙들을 가지고 있어서 회원국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심의는 다음과 같은 무역의 기본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첫째, ‘무역 체계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즉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해 우월적 권리를 행사하거나, 외국 상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무역 체계는 자유로워야 한다.’즉 관세이든 비관세이든 최소한의 무역장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셋째, ‘무역 체계는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즉 외국 기업이나 정부는 무역장벽이 갑작스럽게 높아지지 않으리라는 것과 시장은 그대로 열려 있을 것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

넷째, ‘무역 체계는 보다 경쟁적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무역 체계는 후진국들을 고려해야한다.’즉 유예기간, 유연성, 권리는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마지막 다섯째의 경우 후진국에 대한 매우 이상적이고 훈훈한 배려인데 이것이 바로 상대주의 프레임의 혜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WTO를 이용하여 국가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에 집착하여 비난을 받지만 저개발 국가들 또한 엄청난 덕을 보았습니다. 아마 가장 덕을 본 나라가 2001년에 뒤늦게 가입한 중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WTO를 통해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 멕시코, 캐나다, 영국, 유럽연합 등 많은 나라들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WTO의 기본 원칙 다섯 번째 ‘무역 체계는 후진국들을 고려해야한다.’는 조항 때문일 것입니다.

제 관계에서 미국은 얼마든지 그 원칙을 지키지 않을 수 있었지만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상대주의 프레임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민주당은 노골적으로 미국의 국가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을 펴왔고 공화당 정치인들까지 상대주의 프레임을 이용하여 보신주의자들이 되었으며 미국의 언론들은 상대주의 프레임의 전도사가 되어 최대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이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워낙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WTO를 통해 늘 손해를 보면서도 패권국가의 위상을 유지해 왔지만 초강대국이며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소위 불공정 무역을 감수해 왔습니다. WTO의 후진국을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은 너무나도 고상하고 이상적인 원칙이기 때문에 이를 고수하고 관철시키려는 정책이나 지도자는 무조건 지지와 존경을 받지만 그 원칙에 반하는 정책이나 지도자는 범죄 수준의 여지없는 비난과 배척을 받게 됩니다. 후진국을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용하여 국가나 민족이나 보편 가치를 무시한 정책이나 운동이나 지도자는 노벨평화상을 받거나 존경을 받습니다.

황상하 목사

미국에서 그런 대표적인 지도자가 클린턴이나 오바마 대통령이고 또한 알고어 부통령입니다. 메사츄세츠 주 공무원을 지낸 홍지수씨에 의하면 오바마 정권은 미국 우라늄 20퍼센트를 보유한 다국적기업을 러시아가 매입하도록 승인했는데, 클린턴 재단은 수년에 걸쳐 매각 대상인 기업의 회장과 주주들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수수했으며, 힐러리는 국무장관으로서의 영향력을 팔아 청탁을 접수하고 클린턴재단을 통해 대가를 수금하였으며, 오바마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미국의 안보를 러시아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알고어는 소위 ‘환경종말론’으로 파차우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지만 정치계에서도 노벨재단도 언론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상대주의 프레임을 표방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좋은 일 노름에 보수 정치인들까지 편승하여 정치 경제 언론을 병들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미국의 현실이고 거의 모든 국가들의 현실입니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의 거짓 왜곡 보도는 범죄 수준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트럼프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책은 언론들이 무조건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의 사소한 약점이라도 발견하면 탄핵할 이유라도 된다는 듯 확대 과장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고, 한국의 언론들은 그러한 거짓 왜곡 보도를 그대로 번역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거짓 기사를 열심히 만들고 전하는 기자를 한국에서는 기레기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presstitute’라고 합니다. 이 말은 press 라는 말과 prostitute 라는 말을 합성하여 만든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기자로서의 도덕을 돈을 받고 판 언론창녀라는 뜻입니다. 기자 정신이나 언론인의 도덕성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부정과 불법을 고발하고 좋은 일은 선양하는 것인데 현실에서 언론인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기자나 언론들이 하는 짓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걸레 같은 인간을 위인으로 치켜세우는 일에 거짓말 왜곡 조작 확대 축소를 조금도 주저함이 해대는 기레기 언론창녀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등달아 춤을 추는 영혼 없는 지식인들과 경박한 젊은이들과 생각 없는 국민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대부분 영적 지평이 없고 영혼의 지평이 없습니다. 다만 한없이 너그러운(?) 상대주의 프레임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영혼을 부정하는 인간에게 영적 지평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자유, 정의, 민주, 평등, 공평, 소수자 및 약자 배려, 친환경 등 온갖 좋은 말은 다 하지만 그 모든 좋은 용어들은 구실에 불과하고 좋은 일에 앞장서는 자들이 가장 더럽고 악하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과 앞선 자들이 악한 일을 지도하는 형국입니다. 스스로 악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악한 길로 가도록 몰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도자만 탓할 수 없습니다. 욥은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고 하였으며 시편 기자는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우리는 사상이나 이념의 프레임이나 정치적 프레임이나 경제적 프레임이나 안보의 프레임이나 그 자체를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어떤 프레임이든지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프레임도 악용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교회부흥 프레임, 선교 프레임, 제자훈련 프레임, 사회봉사 프레임 등 수 많은 좋은 프레임 등이 집단이나 개인의 이기심 충족을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레임은 지향하는 목적에 기여해야 하되 반드시 개혁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해야 함을 뜻합니다. 하나님 없는 모든 인간의 도모는 우상 숭배와 같이 허상을 좇는 것입니다.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사 44:19)

황상하  joseph19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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