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12 * 1,000 = 144,000 십사만사천

   예수를 믿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몇 명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일 뿐 아니라(엡2:8)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 역시 하나님만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구원의 문제는 철저하게 인간의 영역 밖의 일이다. 어렴풋이 알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누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또한 구원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7:4과 계14:1,3에 보면 구원받는 성도의 수가 십사만사천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사람은 분명히 십사만사천명이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고(계20:15, 계21:27)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한 자들이고(계19:9) 예수의 피로 죄씻음 받은 사람들이다(계7:14).

   이들이 예수를 믿은 사람일진데 구원의 반열에 있는가? 계14:4-6에 의하면 이들은 “여자로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지 않고, 정절이 있는 사람이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고,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고 영원한 복음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갈 십사만사천명은 이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예수님의 종들이다. 심지어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어 놓기까지 한다(계6:9-11). 구원의 문제는 철저하게 인간의 영역 밖의 일이다. 어렴풋이 알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누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또한 구원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7:4과 계14:1,3에 보면 구원받는 성도의 수가 십사만사천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사람은 분명히 십사만사천명이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고(계20:15, 계21:27)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한 자들이고(계19:9), 예수의 피로 죄씻음 받은 사람들이다(계7:14). 예수를 믿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몇 명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일 뿐 아니라(엡2:8)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 역시 하나님만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받은 십사만사천명의 숫자는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하나님께 인 맞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계7:4).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각각 일만 이천씩 모두 합해서 십사만사천명이다(계7:5-9). 그런데 계7:9에 보니까 흰옷을 입고 어린양을 찬양하고 있는 무리가 있는데 그 수가 셀 수 없다고 한다. 흰옷을 입은 자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구원받은 자들이다(계7:13,14). 문제는 계7:4에서 구원받은 자가 십사만사천명이라고 해 놓고 계7:13,14에서는 구원받은 자가 셀 수 없는 무리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십사만사천명과 셀 수 없는 무리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동일한 사람들인가? 다른 사람들인가?

   구약에서 하나님이 열두지파를 선택하신 것은 야곱의 열두 아들을 축복하신 언약 때문이다(창49장).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선택의 숫자이다. 그러니까 열둘이라는 숫자 속에는 모든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계5:7-10,계7:12-14). 그 증거가 구약의 열둘 지파와 신약의 열두제자의 이름이 천국 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계21:12-14). 예수님께서 선택한 신약의 열두제자는 구약과 연결시켜 구약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대표로 선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계7:9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받은 선택된 무리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은 열둘이라는 하나님의 선택 속에 국한되어 있는 무리들이다.

 만약에 계시록에 나타난 십사만사천명을 문자적으로 본다면 구원받는 십사만사천명은 전부 구약의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안에 국한되어 있어야 되고, 이방인은 하나도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계7:4에서 구원받은 십사만사천명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구원은 이방인에게도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롬9:25,26). 롬11:25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인하여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넘어 갔는데, 그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은 유보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십사만사천명은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라고 했는데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무엇인가? 구원받는 사람은 이스라엘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의미와 구원받는 십사만사천명의 숫자의 의미를 문자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롬11:25,26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나오는데 25절의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고 26절의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포함한 새로운 이스라엘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 오신 후에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유대인을 구원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드린 제사도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죄사함을 얻지 못한다(히8:5-7,히9:9,10, 히10:4,5).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고 예수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요14:6). 할례도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자 뿐이다(갈6:15). 그러므로 롬11:26의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닌 예수 안에서 선택된 새로운 이스라엘이다. 그리고 십사만사천명의 의미는 하나님의 인 맞은 자로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다(계7:4).

그러므로 계7:4과 계14:1-3에 나타난 십사만사천명은 예수 안에서 택함을 입은 셀 수 없는 새로운 이스라엘과 동일한 사람들이다(계7:9). 그렇다면 성경이 예수 안에서 택함을 입은 사람이라고 하면 될텐데 왜 십사만사천명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사용하는가?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선택의 숫자라고 했는데 구약의 열둘과 신약의 열둘을 합하면 이십사가 되지만 곱하면 백사십사가 된다. 백사십사에서 영원한 수천을 곱하면 십사만사천이 된다. 여기서 천이라는 숫자는 영원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신구약의 열둘과 그 열둘 안에 포함된 선택된 백성들은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산다는 의미가 된다.

  정리하면 구약에서 열두지파는 신약에서 열두제자 안으로 흡수되고 열두제자는 성령에 의해 예수 안으로 흡수된다. 그러니까 확정되어 있는 영원한 구원의 세계인 예수 안에서 구원이 선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14:1-3과 계7:4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 십사만사천명은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에 의해서 선택된 셀 수 없는 무리들로서 천국에서 영원히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할 사람들이다(계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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