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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절기】9 - 초막절(3)
  • 김수경목사
  • 승인 2018.09.2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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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예슈아 יְשׁוּעָה)을 갈망하는 초막절

여호와의 절기'의 마지막 절기인 초(장)막절에 유대인들은 시편 118편을 읽는다. 성경의 가장 긴 장은 시편 119편이고 가장 짧은 장은 시편 117편이며, 가장 가운데 구절은 가장 긴 장과 짧은 장 사이에 있는 시편 118편7절이다.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셔서 도와주신다는 것은 "구원자"(예슈아 יְשׁוּעָה) 즉 "예수"를 말씀한다. 그래서 이어서 14-15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예슈아 יְשׁוּעָה)이 되셨도다.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예슈아 יְשׁוּעָה)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한국어의 "예수"가 히브리어로 예슈아(יְשׁוּעָה)이며, "구원·승리"(salvation, deliverance, victory)의 뜻을 갖고 있다. "의인의 장막"은 다름아닌 구원의 주체이시며 참 성전이신 "예수"를 말씀한다. 따라서 "예수"가 장막절의 "장막"이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21-22절에서는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예슈아 יְשׁוּעָה)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며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한다.

초막절에 매일 부르는 118:25에 보면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야쉐 יָשַׁע).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라고 노래하는데, “구원하소서”를 강조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즉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던 것은 바로 이 초막절에 종려나무가지를 비롯한 4가지 식물을 흔들며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사진) 예수께서 예루살렘 미문으로 입성하실 때

그래서 장막절은 이제 마지막 심판날에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실 심판자이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장막 안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의 찬송을 부르며 어린양이신 신랑과 함께 잔치하는 기쁨의 절기인 것이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여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한 날도 7월 절기인 초막절이었다. 그날 그들이 어떻게 기뻐했는지 역대하 5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칠월 절기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왕에게로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 궤와 회막과 장막 안에 모든 거룩한 기구를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솔로몬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 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 이십인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 5:3-14)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대하 7:1-2).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여호와의 절기에는 약 2백50만명의 사람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양이 제물로 죽었으며, 피비린내가 얼마나 그곳을 진동했을 것인지 추측할 수 있다.

▶ 제단에 붓는 물과 피(포도주)

초막절은 매일 아침마다 동틀 무렵에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실로암(Σιλωάμ, 실로아 שִׁלֹחַ) 못에 가서 물을 길어와서 그 물을 부으면서 축제가 시작된다. 제사장들이 '수문'(watergate) 앞에 이르면 제사장 둘이 은나팔을 불었다. 이들은 수문을 통하여 실로아 연못에 다녀왔는데, 실로아의 물을 '생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예슈아 יְשׁוּעָה)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

이때 최고의 연주가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실로아에서부터 행진을 하여 수문 앞에 왔을 때는 "호산나, 호산나, 지극히 높으신 분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즐겁게 외치며 수문으로 들어가 제단에 물을 부었다. 실로암의 물을 뜨러 갈 때에는 금 그릇을 가져가 금 그릇에 물을 담아오고, 은 그릇에 그 물을 옮겨 담은 뒤에 제단으로 갖고가서 물을 부었다.

제사장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초막절을 지낸다. 첫번째 그룹은 희생 제사를 담당했고 두번째 그룹은 수문을 통해 실로암에 가서 물을 떠왔으며 세번째 그룹은 동쪽에 있는 미문(Beautiful Gate(행 3:2), King’s Gate(대상 9:18))을 통해 모짜골짜기로 내려가서 25-30피트 정도의 시내버들을 잘라와서 그 시내버들을 흔들며 성전을 향해 행진을 했다. 이때 그것을 흔들 때 바람소리가 나는데, 히브리어로 '바람'은 '르아흐'(רוּחַ)로 '성령'이란 뜻이다. 즉 생수와 바람을 상징하는 성령과 함께 두 제사장의 무리가 성전을 향해 가는데, 이는 진리의 성령께서 성전에 임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제단을 보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제단이 다르다. 유대인의 제단은 경사로였으며, 이방의 제단은 계단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살이 보이면 벌거벗었다고 여겨서 발도 보이지 않았다. '살'은 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면서 소매가 없는 옷이나 많이 파진 옷이나 짧은 치마나 반바지, 심지어 일부러 찢어서 살이 보이는 청바지에 맨발로 오는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다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살을 다 드러내놓고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하면서 그들은 창피한 줄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은 육의 사람이므로 땅의 일만 생각하고 즉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하나님 앞이라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그 부끄러움을 자랑하고 영광으로 삼는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출 20:26)

히브리어로 '생수'를 '마임'(מַיִם)이라고 부르며, 성경에서 '은'은 '구속(Redemption)'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막을 만들 때에 성소의 받침은 은으로 만들었다. 구속을 의미하는 은 주전자에는 포도주가 들어있는데, 그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며, 금 그릇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한다.

성막 즉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가 기본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없는 것은 성전도 교회도 아님을 의미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회개는 사라지고 복과 은사와 멋진 기획에 의한 행사만이 판을 치고있는 교회들은 모두 구원과 관계없는 '교회'라는 이름의 종교 클럽일 뿐이다. 

실로암에서 금 주전자에 담은 생수를 가지고 제단에 오면, 그곳에는 은잔 2개가 준비되어 있다. 초막절 기간동안 한 개의 은잔에는 매일 금 그릇에 담아온 생수를 따르며, 다른 은잔에는 다른 제사장이 희생제사를 위해 포도주를 따른다. 그렇게 생수와 포도주가 2개의 은 잔에 각각 부어지면 그 다음에는 생수와 포도주가 제단의 제물에 닿도록 흘려보낸다.

생수와 포도주는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쏟으신 물과 피를 상징하며,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양으로 돌아가신 십자가를 상징한다. 따라서 두 개의 은잔에 생수와 포도주를 따른 뒤 그 둘을 제단에 닿도록 흘려보내는 것은 제단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이 물과 피(포도주)가 동시에 제단에 떨어지게 하기 위하여 포도주보다 가벼운 물을 담은 그릇의 구멍을 좀 더 작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야 작은 홀을 지나서 물과 포도주가 동시에 제단에 닿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예식을 통해 이미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율법을 완성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있다.

여호와의 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을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여름 과일을 가을에 추수하여 저장하기 때문이다. 이때 추수하는 것들은 나무에 달린 열매들로 포도, 올리브, 석류 등이다. 

예수께서 "나는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으며 첫번째 기적이 포도주를 만드시는 일이었고,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도 포도주가 주님의 피라고 하시며 주님을 기억하라고 하셨으며, 계시록에서는 포도송이가 익어서 낫을 댈 때가 되었다고 말씀한다. 또 이사야 5장과 공관복음에서 포도원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야곱이 유다를 축복할 때에 포도나무와 포도주를 언급했으며(창 49:11-12), 가나안 땅에 정탐하러 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큰 포도송이를 메고 와서 주님의 약속을 증명했고, 아가서에서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라며 포도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창 49:11-12)

성경은 온통 포도주와 물 또는 생수 이야기로 가득하다. 왜냐하면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며 물과 생수는 진리의 말씀, 성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결례에 쓰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부었을 때에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이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찌니라"(신 16:13-15)

유대인들은 일주일간의 초막절(수콧 סֻּכֹּ֛ות) 기간 동안 첫날과 마지막 날은 안식일로 지키지만, 둘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는 '콜 하모에드'(잔치 주일)라고 하며 이때를 휴가 기간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초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물건을 사거나 축제를 하며 집안을 청소하거나 다른 초막을 방문하며 가족들끼리 놀러가는 것은 허용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금지하는 것이 있는데, 세탁하는 것과 옷을 수선하는 것과 심한 운동과 같이 축제를 방해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금지되므로 유대인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장막절만 되면 세탁소가 일주일간 한가해진다. (계속)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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