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1-4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천국에 대해 성경을 넘어서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종종 천국에 다녀 왔다는 사람들의 간증들이 있는데 신빙성이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아 좋은 꿈을 꾸었구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꿈을 마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다루며 공적인 설교 및 간증을 통해 성경과 동일한 권위에 두려는 것은 또 다른 거짓 복음을 만드는 것으로서 저주스러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 4:6). 

그러나 그 반대로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천국을 말하지 않는 것 역시 사탄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만큼 천국에 대해 계시해 주셨고 또한 성령을 통해 이 땅에서도 천국를 맛볼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특히 장래에 부활과 함께 이 땅에 이루어질 천국에 대해서는 주께서 요한 계시록을 통해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따라서 계시록 연구는 장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있을 부활 및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한편,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있기 전까지의 천국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오늘 죽으면 내가 가게 될 천국은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현재 하늘의 천국에 대해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특이한 신비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의 환상과 계시를 보고 들었습니다. 바울은 특이한 그 사건에 대해 2-4절에서 진술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가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은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다녀왔다고 고백합니다. 4절에 의하면 그곳은 낙원입니다. 즉, 낙원은 셋째 하늘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영혼과 몸이 다 낙원에 다녀온 것인지, 아니면 영혼만 다녀온 것인지 자기는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2절에서 바울은 “세째 하늘로 이끌려 갔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끌려 갔다의 원어의 의미는 어떤 강한 힘에 의해 강권적으로 들려 올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바울은 자의나 자력에 의해서 셋째 하늘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힘에 사로잡혀서 하늘에 다녀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은 셋째 하늘을 ‘낙원’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인데 낙원은 성경에서 찾아볼 때 원래 아담과 하와가 거주했던 에덴 동산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더라”(창 2:8-10).
여기서 에덴 동산이 바로 낙원입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는 곳이었고, 거룩하며 영화로운 천국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낙원에는 생명 나무가 있었고 그곳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났습니다. 

그런데 계시록 2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즉, 에덴 동산에는 생명 나무가 있었는데, 부활 승천하신 영광의 주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낙원에 생명 나무가 있다고 하니, 에덴 동산은 낙원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 낙원임을 발견합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동산으로서 타락하기 전의 천사인 마귀가 역시 그곳에 있었던 것을 계시하여 줍니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겔 28:13). 

그러나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류는 낙원을 잃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2-24). 

이처럼 낙원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며 그분의 영광과 복이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말합니다. 낙원은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이 땅의 에덴 동산에 있었지만 지금 낙원은 셋째 하늘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땅에서 낙원에 들어가는 에덴 동산의 입구가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에 의해 완전하게 차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인 낙원은 지금 이 땅에 없고 오직 삼천층, 곧 셋째 하늘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의 강도에게 하신 말씀에서 증거됩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그런데 오늘 바울의 간증에서 낙원에 관한 귀한 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낙원은 실제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반복하여 거듭 강조하며 말합니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이 말은 낙원은 사람이 몸을 입고도 갈 수 있는 곳임을 분명하게 언급한 것입니다. 즉, 낙원은 인간의 몸이 거할 수 있는 실제 장소입니다. 실제 이 몸을 가지고 거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요 14:2-4).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아버지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도들이 거할 거처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거할 거처란 부활체를 입고 거하게 될 새하늘과 새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새하늘과 새땅은 “내 아버지 집”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은데, 그 중 어느 부분에 성도들을 위한 새하늘과 새땅을 마련한 후 다시 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거할 곳”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거할 곳”은 ‘모나이’라는 원어인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시는 새하늘과 새땅과는 다른 곳으로서 하늘에 있는 영구한 저택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이전인 구약 시대에도 항상 있어온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새하늘과 새땅을 준비할 때까지 모든 주의 백성들과 천사들이 함께 머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버지 집”에는 천사들과 구원을 얻은 성도들의 영혼과, 심지어 몸을 입고 있는 성도들이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부활체를 입고 “아버지 집”인 낙원에 거하고 계십니다. 그곳은 바로 셋째 하늘입니다. 그곳에는 우리 성도들이 있습니다. 에녹, 멕기세덱, 엘리야처럼 이미 변화된 몸을 입고 있는 성도들도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 몸은 이 땅에서 자고 오직 영혼만이 낙원에 와 있습니다. 그곳에는 네 생물과 허다한 천사들이 있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있습니다. 하늘 성전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셋째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 진술합니다.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가 있도다.](히 12:22-24). 

계시록 6장 9절을 보면 영혼의 상태로만 있는 성도들은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6:9-11). 

한편,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0절에서 낙원은 “모든 하늘 위”에 있다고 증언합니다.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증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낙원에 이르러 영광을 얻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인 낙원은 ‘모든 하늘 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하늘 위”라고 할 때 ‘위’라는 것은 방향을 뜻하는데 어디를 말합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에 구름을 타고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위’는 어디입니까?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는 ‘위’로 올라가셔서 어디에 도착하셨습니까? 

팔레스타인에서 위는 어디이며 남미 브라질에서의 위는 어디이고 한국에서 위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위가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뚜렷하게 절대 기준의 개념으로 ‘위’라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셨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위 천사들이 거하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물리적인 부분을 제외시키는 학자들은 어떻게 낙원이 우리가 이 땅에서 볼 때 방향이 있냐고 따집니다. 또한 성경을 의심하는 자들은 성경이 기록되는 때는 지구가 둥굴다는 사실을 모르고 평평한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위가 있다고 착각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안다면 위라는 것은 실제적으로 없다는 것입니다. 즉, 궁극적으로 이 우주에는 방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위가 어딘지 알려줍니다. 즉, 낙원은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낙원은 그가 몸을 입고 갈 수 있는 실제적인 어떤 장소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서 볼 때 그곳으로 가려면 반드시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에녹과 엘리야, 특히 우리 주께서 물리적인 몸인 부활체를 입고 낙원에 계시다면 낙원은 천사들도 있는 곳이지만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과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천사들이 우리의 이성과 시공간을 초월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낙원은 차원은 다를지 몰라도 피조의 영역에 속한 것이 분명합니다.  

더욱이 신기한 것은 둥근 지구 상에서 늘 하나의 기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성경 역시 그 방향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기준 방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북쪽입니다. 우리는 나침판을 알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나침판은 언제나 북쪽을 기준으로 하여 방향을 알려줍니다. 이는 참으로 신기한 것입니다.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수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북쪽을 기준으로 하여 모든 방향을 삼아왔습니다. 고대에 항해를 하던 자들, 또는 대륙에서 여행하는 자들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북극성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또는 북두칠성을 바라보면서 늘 고정된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북쪽은 둥근 지구 어디에서나 절대적으로 정하여져 있습니다.  

만일 북쪽 기준이 없다면 지구에 사는 거민들에게 방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지구는 매일 하루에 한번씩 자전하더라도 놀랍게도 지구가 생겨난 이래로 늘 북쪽은 변함없는 영원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북쪽은 실제적으로 늘 고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유심히 살펴보면 하늘은 세개가 있고 지구쪽에서 볼 때 북쪽으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 개의 하늘을 보면, 먼저 우리가 공중이라고 말하는 첫째 하늘이 있습니다. 그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입니다. 그리고 둘째 하늘은 달과 해와 별들이 있는 궁창을 말합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낙원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하늘들에 대해 말하기를, “1천층은 낮에 볼 수 있는 하늘이며, 2천층은 밤에 볼 수 있는 하늘이고, 3천층은 믿음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귀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은 이 땅에서 볼 때 북쪽에 있다고 진술합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시 48:1-2). 

레위기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언제나 북쪽으로 향하여 드립니다. 
“그가 제단 북쪽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레 1:11). 
원어로 보면, “북쪽, 곧 여호와를 향하여 그것을 잡을 것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 75편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북쪽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니라”(시 75:6). 
이 말은 북쪽이 가장 높은 곳으로서 거룩하신 분이 그곳에 있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도다.”(사 57:15). 

이사야 선지자는 마귀가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려고 시도한 사실을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려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서 하나님의 보좌가 북극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사 14:13-14).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것은 성경에서 낙원이라고 부르는 곳은 셋째 하늘로서 지구에서 볼 때 북쪽입니다. 그 이유는 그곳은 지금 우리의 시공간과 차원은 다를지라도 실제적인 공간으로서 이곳 지구에서 볼 때 반드시 방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현재 하늘의 천국은 실제 장소입니다. 물론 천국은 성령의 오심과 함께 영적으로 이 땅에 이미 임하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좌가 있는 낙원은 실제 장소로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곳에 계시며 또한 변화된 몸을 지닌 몇몇의 성도들이 이미 그곳에 있고, 영광을 얻은 성도들의 영혼이 그곳에 있으며, 천사들이 실제로 거하는 영적이면서도 물리적인 장소로서 모든 하늘 위에 있는 곳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몸으로도 그곳에 다녀올 수 있다고 분명하게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어떤 공상이나 상상의 현상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언급하는 천국은 실제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북쪽입니다. 

우리는 어느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천국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온’ 낙원이 될 것입니다. 곧, 에덴 동산처럼, 이 땅 전체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낙원이 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2-4).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우리는 죽음과 함께 낙원으로 올라갑니다. 물론 우리의 몸은 이 땅에 묻히고 우리의 영혼만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 낙원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차원의 공간일 것이며 또한 영적인 세계일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6-8절을 보면 성도가 죽으면 곧바로 그 영혼이 낙원으로 올라가는 것을 알려줍니다.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6-8).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몸을 지니고 사는 동안은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주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현재 낙원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 곧바로 우리는 부활하신 주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즉,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호흡을 마치는 순간, 곧 바로 그 영혼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계신 낙원으로 이동합니다. 이는 성도인 내가 이곳에 없으면, 나는 그곳에서 주와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쉽게 표현하면, 성도는 죽는 순간 그 영혼이 우리 주 예수께서 부활체로 계신 낙원에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죽으면 수면 상태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비성경적인 사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몸은 땅에 두지만, 그 영혼은 낙원으로 들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됩니다. 그후 주님 재림하실 때 이 땅에 묻혔던 몸이 부활의 영광스런 몸이 되어, 이미 영화롭게 되어 있는 영혼과 합쳐지면서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성도들의 영혼은 낙원에서 흰 옷을 입고 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보다 앞서 죽은 성도들은 낙원에 거하면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낙원이라고 불리는 셋째 하늘은 현재 우리의 시간 및 공간 개념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하늘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찬란하게 나타나고, 변화된 몸을 입고 있는 성도들이 있고, 또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동시에 성도들의 영혼과 천사들이 다 함께 거할 수 있는 곳으로 보아, 낙원은 물리적인 곳이면서도 또한 영적인 곳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대단히 신기한 용어를 사용하는데 우리가 입을 부활체에 대해 ‘신령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영의 몸”은 부활의 몸 자체가 영적인 존재라는 뜻인데, 이는 지금 세상의 차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즉, 지금 우리로서는 부활체의 상태가 어떠할지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빛과 다를 바 없는 몸이면서도 영원한 몸으로서 지금의 시간 및 공간 개념을 훨씬 초월하는 물리적이며 영적인 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창조주의 영이십니다. 천사들 역시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피조물의 영입니다. 우리 인간들 역시 피조물의 영입니다. 그런데 천사들의 몸이 어떤 물질로 구성되었는지는 우리는 지금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나타날 때 큰 소리와 빛과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 세상의 물질이나 시간이나 공간을 넘어서는 차원에 속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삼천층은 우리 인간이 지닌 물리적인 개념 및 시간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입니다. 그러한 차원의 삼천층이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부활체를 지닌 상태로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또한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몸과 영혼을 지닌 상태에서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의 부활의 몸은 지금 우리가 입은 이 몸과 뚜렷한 연속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엄청난 불연속성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믿음으로 삼천층을 보았습니다.
[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56). 

스데반은 그의 눈과 영으로 낙원을 보았습니다. 그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죽음을 지나 곧바로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제 삼촌 어머니께서는 정신이 말짱한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분이 죽게 된 이유는 호흡과 음식물을 가름하는 기관이 동작하지 않아서 폐에 음식물이 들어감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죽기 전까지도 정신이 말짱했습니다. 그분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녀들과의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면서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천국이 자주 보이는구나. 내가 먼저 천국에 가니 얼마 후에 그곳에서 만나보자꾸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렷한 눈으로 저 먼 곳을 바라보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천국은 분명하게 존재하며 현재의 의식을 가지고 그대로 이주하는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면 서로 알아볼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여기서 ‘그 때’가 언제인지에 대하여 학자들 간에 의견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 때’는 천국에 들어갈 때 또는 천국이 임할 때로 보면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는 순간 들어가는 초월적인 낙원이면서 동시에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임하는 낙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때’는 우리 영혼이 낙원에 들어가는 순간으로 보아도 되고, 주께서 재림하시는 때로 보아도 상관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지나 ‘낙원’에 들어가면 이 땅에서 희미하게 보았던 많은 것들을 그대로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하여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서로 정확하게 상대방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낙원에서 서로를 아는 것은 외적인 상태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서로 완벽하게 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서로를 아는 것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속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무엘조차 이새의 아들들을 보며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다윗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사람들의 내면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낙원에서는 서로의 내면을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이 어떠한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 어느정도인지 그대로 알 것입니다. 그리고 영으로 대화할 것입니다. 물론 부활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임시적인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임시적인 몸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알아보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과 베드로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엘리야와 모세가 등장하는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음에도 그들을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낙원에서 서로를 분명하게 알아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영원한 하나의 가족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낙원에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이미 그곳에 가 있는 자들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이 세상으로 오지 못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원래 고향인 이 땅으로 돌아오는 때는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 돌아오는 때는 각자에게 알맞는 땅의 기업을 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원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성도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권속, 즉 가족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같은 가족으로 다 같이 낙원에 들어가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이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창 25:7-8).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창 35:29).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창 49:33). 

그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속한 온 가족이 함께 구원을 얻는다면 우리가 죽더라도 낙원에서 곧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이 땅에서 죽으면 저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곧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몸은 땅에 묻히지만 제 영혼은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갈 것이며 성도들의 공동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 가운데 불신자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니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함께 하였지만, 죽음 이후로 헤어지게 되면서 영원히 다시는 만나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그러한 슬픔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입니다. 이삭에게도 그러한 슬픔이 있었습니다. 에서입니다. 아담에게도 슬픔이 컸습니다. 바로 가인입니다. 그들에 대해 성경은 그들이 죽음과 함께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즉, 낙원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주 예수님께도 이 땅에서 함께 한 열두 제자의 공동체가 있었지만 그 중 가룟 유다는 죽음과 함께 영원히 그리스도의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며 우리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지만 이 중에는 가룟 유다처럼 낙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낙원은 즐겁고 흥겨운 많은 할 일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룩한 즐거움과 거룩한 여가로 맘껏 풍요하게 영원히 누리는 곳이 낙원입니다. 우리는 낙원에서 한없는 재미와 즐거움과 웃음과 만족과 사랑과 평강을 맛볼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드는 수많은 사건들이 낙원에도 그대로 있으며, 더 많고 더 뛰어날 것입니다. 

낙원은 하품이나 하면서 할 일 없이 졸고 있는 곳이 아닙니다. 꽃만 보며 자연을 감상하는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24시간 내내 예배라는 형식에 갇혀 억지로 예배하는 곳이 아닙니다.  

여전히 서로의 엉뚱한 면들 때문에 웃음을 자아낼 것이며 서로 다른 성격 및 생각들 때문에 끝없는 도전과 끝없는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또한 끝없는 신기한 일들과 끝없는 기쁨들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곳은 또한 거룩한 유머들도 가득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들을 들어보면 거룩한 유머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는 등의 표현은 고차원적인  유머입니다. 들보는 건물을 지을 때 일종의 큰 목재들인데 네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를 본다는 표현은 그 당시 청중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드는 표현입니다. 갓난 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표현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윽한 웃음과 깨달음을 자아내는 표현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유머를 사용하여 천국을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듯이 하늘 나라는 거룩한 유머로 서로 웃고 장난하며 흥겹게 사랑하는 곳입니다.

사탄의 작품인 금욕주의의 개념이 기독교에 들어온 이후로 천국은 사람들에게 지루한 곳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천국을 오해한 자들은 천국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 봤자 영원히 지루할텐데, 이 땅에서 좀 더 놀다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알려주는 천국 개념은 지금 이 세상에서 죄와 죄의 저주를 제거한 세상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최고의 것들을 준비한 곳입니다.  더욱이 이 땅에 임하게 될 영원한 낙원인 새하늘과 새땅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천년 동안 준비한 것들이니 도대체 그 차원과 방대함이 어떠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하늘에 있는 낙원과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미래의 낙원은 우리 유한한 인간들이 결코 다 헤아릴 수 없는 가장 찬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신비하고 가장 거룩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세계라는 것입니다. 

다 같이 창세기 2장 5절을 찾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5-6). 

우리는 이 땅에 있던 낙원, 곧 에덴 동산을 보게 되는데 중요한 단어는 ‘땅을 간다’ 라는 단어입니다. 그 단어의 원어는 ‘아바드’입니다. 아바드는 ‘일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는 동시에 ‘섬기다’, ‘예배하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같은 단어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죄가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섬김이 되며 예배가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죄로 물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거룩한 것을 따로 구별하여 그것을 주께 드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지만, 낙원은 온 세계가 거룩한 지성소이고 우리 역시 온전히 거룩한 상태에 있으니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쉬임 없는 예배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죽음을 통해 그러한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러한 낙원이 주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곳입니다. 무한한 사랑 가운데 주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 안에서 섬기면서 우리 성도들은 무한한 보람과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주께서 내게 주신 것으로 끝없이 주께 돌려드리는 곳이며, 생명과 복과 모든 신비에 근원이신 무한하신 주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무한하게 베푸시며 모든 것을 부으시는 곳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천국은 끝없는 영원한 예배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하는 모든 기쁘고 보람된 일들이 하나님께 예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낙원이기에 바울은 이 세상에 사는 것보다 죽음을 지나 주께로 가는 것을 더 선호했습니다. 
[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1-24). 

그곳은 영원한 안식이 있는 가장 행복한 곳입니다. 더 이상 미움과 갈등과 의심이 없는 그 곳, 하나님과의 갈등도, 죄의 유혹도, 비참도 없는 그 곳! 오해도, 소통의 어려움도, 착각도, 어둠도, 괴로움도 없는 그 곳! 성도들은 오늘이라도 당장 그곳에 가기를 소원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주님을 만나기에 너무 초라하고 부족해서 이 땅에서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땅의 시간이 주어진 동안 우리는 오직 그분을 위해 충성하며 그분을 만날 때 오직 부끄럽지 않도록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주실 만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이 가장 사랑하는 피조물을 향해 모든 것을 준비해 둔 곳이 바로 천국인데, 그러니 감히 피조물인 우리가 어찌 낙원이 어떤 곳인지 감이라도 잡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어마어마하고 끝이 없어서 우리는 영원히 입을 다물 수 밖에 없고 영원히 찬양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안에서 우리는 낙원을 이 땅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맛볼 수 있습니다. 그 맛은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이때 천국의 천국됨은 우리 인간에게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곳이 천국입니다.  

아무리 큰 집이며 자동차며 우리의 육체를 쉬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조건이 다 갖추어지더라도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이 없다면 그 좋은 것들은 곧 실증이 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에게 천국이 그토록 귀하고 아름답고 영원한 것은 그곳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천국의 핵심은 보화도 아니고 좋은 환경도 아니고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만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관심하거나 싫어하는 자가 그곳에 들어간다면 오히려 그러한 천국은 그들에게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사모한다는 것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뵙기를 사모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본향인 낙원에 들어갈 날이 우리 모두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더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에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믿음을 통해 천국을 바라보면서 지금 이 땅에서 성령을 따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분이 보내신 사랑의 편지인 성경을 읽고 그분을 사모하며, 그분이 성령을 통해 지시하는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땅에서도 낙원을 맛보게 될 것이며 죽음을 지날 때는 실제 낙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에 임하는 전 우주적인 에덴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낙원에 들어가는 열쇠를 알려드립니다.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옷을 씻은 자들입니다. 그 이름이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곳은 도덕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종교로, 박애로, 세례로, 교회 다닌다고, 정직하다고, 자선을 베푼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어린양의 책에 기록되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에 내가 죽어야 하는데 그분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믿기 바랍니다. 그후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살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을 얻어 영생 얻는 삶입니다. 더 늦기 전에 주 예수님을 왕과 대제사장과 구세주와 마지막 말씀으로 모시고 천국의 티켓을 얻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다 같이 천국에 들어갑니까? 이 땅에서 가장 큰 슬픔이 있다면 죽음과 함께 가족이 영원히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이 임하기 전에 더욱 온 가족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하기 바랍니다. 우리 가족 중에 죽음과 함께 영원히 헤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가족 모두가 천국의 티켓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바랍니다. 만일 천국의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그들에게 쉬지않고 복음을 알려주며 그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말 것이며, 끝없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거룩함으로 대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언제라도 낙원에 들어갈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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