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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소명을 믿음으로 개척한 중증장애인의 대부 정덕환 장로수급장애인을 세금 내는 국민으로 이끌어낸 사람
정덕환장로(가운데 앞), 왼쪽- 이승원목사(농아사랑나눔터대표), 최원영목사(본헤럴드대표), 이능규목사(예장합동)

증증장애인의 삶을 개척한 정덕환 장로를 본헤럴드 대표 최원영 목사가 만났다. 정 장로님은 모든 사람들과 아주 유쾌하게 지낸다. 대화가 재미있다. 그리고 대화속에 걸어오셨던 신앙의 이야기가 심겨져있기에 감동과 비전을 서로 공유하게 된다. 정 장로님의 인생의 굵직한 믿음의 사건들이 많았지만,  몇 가지만 함께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Q1(최원영 목사). 장로님을 뵈면 얼굴에 기쁨과 도전의 에너지가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정상적인 신체조건이 아니라 1급 장애인으로 목도 좌우로 돌리지도 못하고,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것만 가능하신데도 불구하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에 감동을 받습니다. 언제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는지요. 장애를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지요.

[정덕환 장로]중학교 3학년 때 유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일반부에서 우승을 했고, 그 후 국가 대표가 되었지요. 그런데 내 인생에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7살에 연습 도중 경추를 다쳐 전신중증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운동선수에서 하루아침에 중증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장애인이 되게 하셨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이 흙빛이었습니다. 한발도 내디딜 수 없을 정도로 칠흑 같은 암흑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가정예배를 드리며 위로를 해도 위로가 안 되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힘내세요. 주님을 바로 보세요. 그 당시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힘내라고 위로해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깊은 좌절과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 안에 이렇게 누워서 죽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안에 주님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믿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천성적으로 주님이 주신 몸에 밴 좋은 습관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삶의 밑천이 되었지요..

 

Q2. 장로님께서는 2017년 71세 연세에 새로운 도전을 하셨더군요.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시, 이민욱 곡)을 노래하여 CCM 힐링송 앨범을 내셨는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음반을 내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정덕환장로, 1965 국가대표 유도선수, 연세대 사학과, 1972년 유도훈련중 경추골절, 척수장애 1급판정, 나사렛대학 인간재활학과 졸업 &대학원 졸업,저서: 절망이 나를 흔들어도, 기회주신 하나님, 등, 흔들리며 피는 꽃 음반출판.주요포상: 보건사회부 장관 표창, 대한민국정부 국민훈장 석류장 등

[정덕환장로] 인생을 굽이굽이 돌아 여기까지 오면서 자갈밭 가시덤불, 피눈물 나는 시절에도 노래가 있었기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텅 빈 예배당에서 목청껏 소리 질러 찬양할 수 있었기에 또 다시 뛸 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위로를 얻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서 귀동냥으로 익히는 훈련을 보냈습니다.

맨 처음 악보를 받아 들었을 때 그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시라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시에 입혀진 멜로디가 어찌 그리 타당하던지 잘 지어진 비단옷처럼 노래는 따뜻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로 바쳐온 내 인생 말년에 큰 상급을 받는 기분으로 지난 일 년은 안 먹어도 배부르고 신이 났습니다(악보를 받고 연습하는 시간을 말함).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이제 인생의 맛을 알아가는 불혹의 40대가 제일 많이 자살하고, 꽃보다 아름다운 연예인들도 자살을 하고, 마약을 하고 범죄를 하고...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흔들리며 꽃을 피우는 거라고.... 나 역시 노래를 부르며 외쳤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으니 다시 시작해 보자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 노래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 할아비도 이 나이에 꿈을 꾸고 도전하는데,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걸어가 보자”라고 외치고 보듬어 말하고 싶습니다.

일 년 동안 연습에 몰두하면서 잘 불러도 안 되고, 잘 부르려 해도 안 되고... 오직 진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고 기다리며 참아내는! 새삼 노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덕목을 갖춰야 하는지를 터득하여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기를 감히 소망합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시

흔들리지 않고는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Q3. 장로님의 인생의 모토가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신념으로 중중 장애인 직업 재활을 위해 한 평생 헌신의 길을 걸어오신 길,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장로님의 인생인 중증장애인 직업 재활을 위한 에덴복지재단 35년의 역사를 다룬 책이 최근에 발간되었는데, 에덴복지재단 역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사회복지법인 에덴복지재단의 역사, 정덕환장로의 사역과 삶의 이야기

[정덕환 장로]  (1)에덴복지재단은 1983년에 설립된 에덴 복지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나는 국가유도대표 선수에서 전신마비 중증장애인되었지요. 3평 공간에서 ‘다섯 명의 장애인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나약하게 기대며 살아서는 안 되고 당당하게 일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한국사회는 중증 장애인에 대한 냉대와 무관심과 혐오와 멸시로 쳐다보았던 척박한 환경이었지요.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중증장애인 복지관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섯 명으로 시작한 복지관이 이제 200명의 식구로 늘어났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정부와 교회와 뜻 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에덴복지재단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2)나의 꿈은 오직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되는 직업재활로서 장애인 복지증진을 목표로 재단을 세웠습니다. 이 일은 하늘이 나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이 소명을 사명으로 알고 믿음으로 헌신하며 기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3)중증장애인에게도 일할 기회를 제공하여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고, 그들이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세금을 내야 합니다. ‘시혜적 복지(welfare)’에서 ‘일하는 복지(workfare)’로 패러다임을 바뀌어야 합니다.

(4)2015년에는 ‘중증장애인 평생일터 행복 공장 만들기 운동본부’를 출범하여 발달장애인을 집중 고용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중중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입니다. 나는 1030 운동을 합니다.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인구가 272만명입니다(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자료). 그중에서 90만 명이 중증장애인입니다. 이 분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부담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행복공장만들기운동본부’는 중증장애인의 일자리와 최저임금 보장이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세웠습니다. 중증장애인 일자리 33,300개를 목표로 전국에 행복공장을 확산시켜 중증장애인에게 근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5)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면, 2007년 국회에서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이 통과되어 제정된 것입니다. 이 법에 대한 제정 필요성을 제가 제안했습니다. 장애인들이 물건을 생산해도 팔로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04년 정화원의원에게 ‘중증장애인생산품법’ 제정의 필요성을 건의했습니다. 중증장애인들이 만든 생산품을 정부가 1%(약 6,500억)를 구매하는 것이지요. 이 특별법의 통과로 인해서 중증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경영자나 중증장애인을 고용.운영하는 시설종사자들에게는 획기적인 사건된 것이지요..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국민과 국가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원영 목사 후기] 정덕환 장로님을 떠올리며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다.

그는 오직 중증장애인에 대한 하늘의 소명앞에 자신의 전부를 드렸다.

그는 쾌활하다.

그의 언어에는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언어가 없다. 언어가 살아 있다.

그의 외모는 멋있는 중년 신사의 모습이다.

그는 황혼이 더 아름다운 인생이다.

그에게는 삶의 흔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바로 그리스도의 꽃이요 향기이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으니”(딤후4:7)

이 말씀이 그에게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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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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