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철근 저 / 창조문예사 / 2018

곽철근의 소설에는 특히 클래식 음악의 자리는 상당하다. 거의 전문가에 육박하는 지식과 더불어 그로부터 받아들이는 현실적인 동화와 승화의 감정은 때로 구원의 경지로까지 그를 이끈다.

그러나 주인공 '나'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철학 아카데미에 출석하여 세계의 본질에 대한 도전으로 자신의 의욕을 키워 간다. 이 부분에서 센티멘탈리즘은 철학과 손을 잡고 문학을 배태시킨다. 뒤이어 나타나는 종교적 고민, 그 이후의 확신은 넓은 의미에서 문학의 한 양태로 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음악과 여성에 의한 위로가 인간적 구원의 몸짓이라면, 철학적 모색은 그 이상의 가능성을 향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기독교, 혹은 신학으로 가는 길이 자연스럽게 열리며 이른바 세계고의 빛깔을 띠게 된다. - 김주연(전 숙명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저저소개 – 곽철근 목사

경남 하동 출생

2003년 <멀리 있는 빛, 혹은1> 기독 신춘문예 당선

2006년 <화려한 날은 가도> 창조문예 등단

전 백석대학교 신학과 교수

현 향상교회 협동 사역자

목 차 

 

작가의 말

007 멀리 있는 빛, 혹은 1

035 화려한 날은 가도

060 골짜기에서

085 고란사 가는 길

112 누군들 죄인이 아니랴마는

162 흔들리며 서리라

183 나의 나 된 것은

205 열리지 않는 문

227 지상에서 영원으로

264 멀리 있느 빛, 혹은 2

평론 - 제4회 기독신문문예(2003년 4월) 심사위원 총평

심사평

추천사

 

[곽철근 목사 단편소설] 고란사 가는 길

 

“친구는 돈을 좇으며 사는 게 싫어 은행을 그만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꽤 하다가 신학도가 된 그 친구와 전화 통화가 되었고, 만남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루 정도의 시간을 나에게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 약속된 시간에 아파트 정문 버스 정거장에서 그 친군 정확히 나타났다. 신학도가 된 옛 동창에게서 은행원의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신중하면서도 삶의 피곤기 같은 것이 엿보였다. 무슨 이유일까.

남자의 심리에서 자존심을 빼어버리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런데, 40고개를 넘어와서 옛 동창 앞에 나타날 땐, 남의 차를 빌려서라도 폼을 잡을 판인데 그는 버스 타고 나타난 것이다. 서로간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 중에 친구는 부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 있다고 그랬다. 갈라선 것일까. 친구는 생활비 관계로 처자식이 시골에 가 있다고 했다. 은행 사표내고 신학 공부한다고 정기적인 수입 없이 3년이 지나니 더 버티기 어려워서 그랬다는 것이다. 아파트 팔아서 전세로 가고 또 작은 전세로 갔지만 결국은 가족을 시골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각오로 은행원을 그냥 두고 나이 든 신학도가 되기로 결심했는가?” 기독교의 내용보다 신학도 친구가 은행원을 그냥 둔 이유가 먼저 궁금했다.

“은행에 있다 보니 사람들의 삶이란 것이 온통 돈에 매달려 사는 것 같더라고. 다른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싫었지. 처음엔 돈 냄새를 맡고 사는 것이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점차 지독히 싫어지더라고. 물론 난 이미 기독교 신자이긴 했지만”

신학도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출근이 가까운 곳에 하숙을 정한 것이 계기가 되었지. 은행원이 되어서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되어서 오랜만에 인생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했지.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군. 물론 증권 같은, 월급 아닌 다른 수입에도 이리저리 눈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돈 버는 일과 그 번 돈을 소비하는 일에다 시간과 마음을 쏟으면서 살았지. 그런 생활이 계속되다가 문득,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내 인생이 어디론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그 끝이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때까지 난 불교에 가까웠지. 아버지는 무교이고 어머니가 그쪽이라. 어머니는 종종 내가 절에 가서 불공도 드리고 시주도 하라며 당부를 하셨지. 나도 절 경치가 좋아 그리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그 무렵에 원인 모를 안질 같은 것이 생겨서 고민하기 시작했지. 병원에서도 대수롭지 않다고 말하는데 불편함이 계속되었어. 은행 업무는 겨우 겨우 처리했지만,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지.

그런 어느 날 일요일 아침에 하숙집 가까운 곳에서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 소리가 들리더군. 그때 웬일인지 내 마음이 교회를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네. 교양 수준으로 성경이란 책을 가끔 뒤적여 보았지만, 그 내용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기독교나 교회는 마음에서 멀리 있었지만. 난 일요일 오전 시간에 하숙집 가까운 교회를 찾아갔지. 그러나 교회 문을 들어서기가 죽도록 싫어서 다시 돌아오려다가 마음을 다잡고 들어섰지.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가 본 교회. 예배를 드린다고 하였지만 난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였지. 그런데 마음이 이상하게 평안한 느낌이 들었지. 예배를 마치기 전에 난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이란 분이 계시면, 이 원인모를 안질을 낫게 해달라는 마음의 기도까지 했었어.”

친구의 과거는 실타래처럼 풀어져 나왔다.

“그 날, 교회를 한 번 간 것이 결국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네. 며칠 후 눈에 무엇이 자꾸 끼이는 것 같고, 가렵기도 했던 현상이 없어졌지. 한편으로 우연히 안질이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마음이 자꾸 기울어져 가더구만.

그런 시점에 마음에서는 격렬한 갈등이 벌어지더라니깐.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지금까지 내 멋대로 살아온 삶의 습관들이 기독교인들처럼 전부 바뀌어야하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는 눈에 불 보듯 뻔 한일이고. 그래서 난 교회를 다니지는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어보면 어떨까, 하는 타협안이 떠오르더군.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지. 일요일엔 교회는 가지 않으면서 마음으론 하나님을 믿겠다고 작정했지” 

- 곽철근 소설 『멀리 있는 빛, 혹은』 중에서....창조문예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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