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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생 詩】노모 / 뻘에서 살다/ 안녕 / 송년산행선물 / 말구유 / 나는 믿네 / 초겨울 / 두타연에서 / 단풍놀이 / 가을 노래 / 단풍 / 추석

노모

                   장영생

 

얼굴만 볼 수 없는 
이별이면 좋으리
들을 수 없는
이별이라도 좋으리
차라리 좋으리

입 맛 없다는 투정
잠 안온다는 혼잣말
이른 새벽
갈라진 헛기침에
문 열리는 소리라도
들렸으면 좋으리
차라리 좋으리

어머니!
불러 보지만
가녀린 목소리도
따뜻한 숨도
들리지 않는 차가운 방
견디기 어려워라
하늘 문과 이승으로 나눠진 
육신의 이별은 
백수를 넘겼는데도
마음이 아파라
가슴이 미어지는 이별이구나

 

뻘에서 살다

                     장영생

널배 씻고
몸에 붙은 개흙 닦고
차가운 샘 곁에 닿으면
하루의 짐이 벗겨진다

볏짚으로 엮은 또아리에
왼무릎 대고
뻘에 박은 오른 발에 힘을 주니
널배가 나른다
기역자로 꺽은 무릎이
개흙을 가르면
꼬막 길에 나와
방황하는 녀석 잡아 채고
뻘길따라 밀고 더듬으면 
손에 잡히는 꼬막
뭍에선 지팡이를 잡아도
물렁물렁한 갯뻘은
꼬부라진 허리도 신이 난다

널배도 뻘도
꼬막도 모르던 시절
손 안에 들어온 꼬막
손가락에 엉켜 붙는
뻘낙이 고마웠다
널배도 한 몸 되어
갯일로 한평생을 보냈구나
혼자 걸으면 손도 시리운데
들일로
뱃일로
힘든 날 보낸 영감
경운기라도 끌고오니 고맙소
널에는 실어도 들고는 못다니지

아파도 힘들어도 꼬박꼬박
갯뻘로 출근했다
자식 먹이고
가르치고
숟가락 두개 
쌀 반말이 전 재산이던 영감
죽어도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널배를 창고에 가둔다

밤에도 꼬막
낮에도 꼬막
뭍과 갯뻘 사이를
널배로 산 일생
내가 죽으면 
널배도 외롭다고 울고
뻘낙도 꼬막도
갯뻘 질러 찾아 올거야
제 동무 하나 떠났다고

송년산행

            장영생

 

알몸을 드러내고도
부끄럼이 없는 겨울산은 
욕심을 품지 않는다
큰 품으로 주는 따뜻함은
깊고 넓은 계곡을
얼음으로 덮지 않고
얕고 좁은 물엔
살얼음으로 숨구멍을 연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뿌리를 내린 앙상한 가지
감추지 않고 가리지 않으니
고개만 들면 
길을 말하고
거침없이 지나는 세찬 바람
남은 미련을 낙엽에 담아
산 아래로 밀어낸다

가벼워진 몸
홀가분한 마음
사면을 오르는 하얀 입김이
소리를 낸다
무술년아! 안녕이라고

선물

               장영생

 

당신이 죄중에 있다고
슬퍼하거나
괴로워 마세요
죄가 깊을수록
용서받는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안다면

죄에서 벗어나는 것도
은혜를 깨닫는 것도
그 분의 과정에 있고
그 분의 권한입니다

실망에 빠져
포기하고 있다면
부르고 
사용하려고
준비중인 것은
전혀 보이지 않겠지요

잘 나갈 땐 
깨닫기 어려운게 은혜랍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체험으로 만나는 은혜는
그 분의 도구가 되어
누리는 영광에 붙어 올
교만을 이기고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연단이라는 선물

지금
당신이 믿음을 갖고 있다면
죄중이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그 분은 반드시
그 분의 도구가 되는
선물을 주실테니까

 

말구유

                     장영생

질그릇과 누더기가
도구가 되어
비단 옷과 도자기를
부끄럽게 하고
객과 고아
가난한 과부
죄인들의 밥상으로
권세와 재물의 잔치상을
초라하게 하신
창조주와 온 인류의 중재자
구원자 아기예수

별빛 
달빛 담은
천하고 추한 말구유
귀한 몸 누이실 때
뭇 천사의 노래
옹색한 마굿간이
영광으로 가득하네

어둠을 벗고
죄악에서 풀리고
하늘가는
구원의 문 
열어주신 아기예수

이천년 전 
말구유 속 뜨거운 사랑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네

 

나는 믿네

                     장영생

 

나는 아네
나는 아네
보여줄 것도
자랑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걸

나는 아네
가진 것이 없다는 것
내 주머니
내 가슴
내 머리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네
나는 믿네
그 분이 함께 하시고
들어 쓰시면
무슨 일에든 
감당할 힘이 나온다는걸

초겨울

               장영생

 

산에 오른다
겉 옷 벗는 지점이 
점점 높아진다
몸이 정말 식었구나
아껴쓸까
군불이라도 땔까
몸이든 마음이든
쓰지 않은 곳
덜 사용한 곳
오르는 내내 살피다가
내려오며 지웠다
새 봄 기다리는
겨울눈 품은 목련
진달래 가지 꽃봉오리
고목을 넘어 내리는 햇살
차가운 바람을 타고
귓가에 속삭인다
지으시고
이 땅으로 보내신 
그 분의 뜻대로 순종하라고

두타연에서


               장영생


바람과
물이 같았고
하늘 빛
산세도 여느 곳처럼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노닌다
흔들리는 비포장도로
초겨울을 부르는 길엔
지뢰 품고 우뚝 선
억새도 찬바람을 흔든다
골이 깊어 닿기 힘든 햇살
사람의 손길이 그리운
칠십여년
꼬불 꼬불 잔가지들
반갑다고 흔드니 몸살나겠다
국토 정중앙
배꼽으로 자리한 양구
십년은 젊어지는 맑은 공기
고농도 산소는
동족끼리 겨누다
잉태한 슬픈 얼을 뿜는다
파주 철원 고성
같은 민통선이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군사작전지역 두타연
경사면마다
구르다만 너덜들
세찬 과거를 한으로 울지만
건드리지 않고
먹힐 천적 없는
천연기념물 열목어는
두타연에 떼지어 논다

단풍놀이

              장영생

 

몇 잎이나 남아 줄까
물들려는 이파리
시작도 안한 푸른 잎도 있는데
설마 고운 잎 없을라구
세찬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면
단풍도 꽃처럼
한꺼번에 떨어지려나
고운 잎 벗어버린 나무보다
염려가 묻은 낙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때를 놓쳐
늦게 잡은 단풍놀이
푸른 빛 하늘 보이는 날엔
오늘이 그 날이었으면
희뿌연 하늘이면
그 날 아닌게 다행이라고
맑은 날이 이어지면
궂은 날 만날까
을씨년스러운 추운 날 될까
주는대로
남은대로 즐기면되지
감당할 수 없는 
하늘을 고민하고 있다

 

가을 노래

               장영생

그가 들려준 가을 노래는
슬프지 않았습니다
쓸쓸함도
허전함도 어울리지 않는
눈이 부실
그림만 불렀습니다
물들다만 푸른 잎
화사한 가을 꽃
새벽부터
요란하던 천둥과 번개
따라 온 바람과 비
빨갛게
노랗게
주홍 빛 얼굴을
씻고 지나간
창문 밖에는
샛노란 모과 열매도
화려한
단풍잎 사이에서
뽐내고 있습니다

 

 

 

단풍

                장영생

 

홀로 피자니
어색하고
함께 피다 묻히는 
아쉬움에
눈치보고
꼬드기고
무성한 잎사귀들
언젠가부터
햇빛 섞어 빨갛게
달빛 넣어 노랗게
이른 밤
차가운 밤
늦도록 물들이다가
화려하니 가을 꽃
데리고 왔다
하이얀 눈 
앞에 둔 
잎몸들의 마지막 잔치

계간 국제문학 신인작가상 수상

추석

            장영생

 

찡그렸네
이그러진 볼
누가 울린거야
아니
보고픈 얼굴
만나려 몸 푸는거래
웃고
떠들 일 감당하려고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저만큼 보일 때
달려가려면
종아리 힘도 키워야 되는데
볼살 핀 보름달
하늘이 방글방글
우리 맘도 덩실덩실

송광택  songrex@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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