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10-20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구약 성경에서 애굽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애굽에서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거나 애굽을 의지하는 모습은 주의 백성이 불신앙의 길을 걷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애굽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 31:1-3)

오늘 본문 10절을 보니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왜 그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까? 기근 때문에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핑계이고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약하여져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여정에 있어서 전형적인 위험이 무엇이며 만일 그 위험에 빠질 때 나타나는 증상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먼저 믿음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믿음의 시련은 경제적인 시험입니다. 즉, 먹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부르신 소명을 계속 이루어 나갈 것이냐, 아니면 먹고 사는 문제가 걱정되니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을 뒤로 미루고 먼저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할 것이냐의 시험입니다. 이 문제는 믿음 생활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시험입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여기서 그 땅은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땅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머물라 하시며 하나님께서 뜻하신 땅입니다.

그런데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왔는데 풍성한 물질과 부요함이 아니라 기근이 닥친 것입니다. 

10절을 현대 용어로 바꾸면, 예수님 믿으면 축복 받는다고 해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경제적으로, 그리고 건강도 곤란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험입니다.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모아 놓은 것이 기근으로 인하여 사라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결국 바닥까지 드러나는 그러한 위험한 순간까지 갔을 것입니다. 이때가 믿음의 시험을 받는 순간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믿음을 지키려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고 계속 가나안 땅에 거하였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가나안 땅에 있었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도와 주심과 공급하심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면서 하나님께 큰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믿음을 버리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애굽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길을 갈 때 시험이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기근의 때가 찾아옵니다. 이때 믿음으로 나아가면 시험을 합격하게 되면서 쓸모 없는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기근의 때가 찾아 왔을 때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의지하기보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자신의 생각과 꾀를 따라 움직이면 그는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처럼 됩니다. 

그러므로 “기근”의 시험을 만날 때에 그 시험을 보통 눈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믿음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이 무너지지 않는 비결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역경을 당하여 돈이 한 푼도 없게 되었을 때, 또한 건강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가장 가깝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너질 때, 이때 위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영영 일어서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그의 인생을 망친 이유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3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사울 왕에게는 3천명의 군사가 있었고, 그 중 2천은 사울 왕과, 그리고 나머지 1천명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의 병력은 이스라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전차 삼만 대와 말을 타는 군인 육천 명이 있었고, 군사의 수는 마치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이를 보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용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굴과 나무숲으로 가서 숨었습니다. 바위 틈과 구덩이와 우물 속에 숨은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히브리 사람은 요단 강을 건너 길르앗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사울의 군인들은 두려움 가운데 하나 둘씩 슬쩍 도망치더니 겨우 6백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전쟁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줄 사무엘 선지자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전쟁 전에 하나님의 종에게 그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반드시 물었습니다. 사울은 극도로 불안하고 초조하여졌습니다. 삶의 위기를 느꼈습니다. 곧 망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지자의 역할을 대신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울 왕은 사무엘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믿음을 져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노골적으로 거역하고 본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울이 믿음을 저버리고 경거망동하게 번제를 마치자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종 사무엘이 길갈에 도착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되는 것인데 인내하지 못하고 범죄한 사울! 사무엘이 그를 책망합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삼상 13:13-14)
 
우리는 이 사건 이후 사울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다윗을 향한 질투심과 경계심의 노예가 되어 불안 가운데 살았고, 그리고 마지막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 후 자기의 칼에 엎드러짐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참조, 삼상 31:3-5).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날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기근의 시험을 당할 때 너무 쉽게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 기근의 때에 믿음으로 주를 붙잡고 하늘의 지혜로 그 위기를 잘 넘기면 엄청난 복과 행복을 누렸을 사람인데, 그 위기의 때에 하나님 보다는 애굽을 택함으로 여러 가지 불필요한 고통과 망신과 좌절을 당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돈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직장 문제 때문에, 결혼 문제 때문에, 건강 문제 때문에, 대인 관계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다 못하여 더 이상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신앙을 팔아먹더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위기가 있기 전까지 믿음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2장 7-8절을 보면 언제나 제단을 쌓는 아브람을 볼 수 있습니다. 7절에서는 세겜에서 제단을 쌓고, 8절에서는 벧엘과 아이 사이에 제단을 쌓습니다. 이는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 예배에 힘쓰며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통하는 삶을 살았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면서는 제단을 쌓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 앞에서 제단을 쌓았더라”는 말이 없습니다. 즉, 내 힘 가지고 살아보겠다고 애굽으로 내려간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제단을 쌓기를 멀리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입니다. 자!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는가? 아니면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머물고 있는가?’
‘나는 예배와 기도에 힘쓰는가? 아니면 내 힘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는가?’

가나안에 머무는 것은 기근 중에서도 계속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제단 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에 온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으며 주님과 더욱 간절히 교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주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주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통해 주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곧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바로 기근 가운데 가나안 땅에 머물며 애굽으로 가지 않는 자세입니다.

아브람은 기근이 닥치자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당장 그의 삶에 몇 가지 특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평강을 잃은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애굽에 내려간 아브라함은 초조함과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평강을 잃었습니다. 삶에 확신이 없어 불안을 느낍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데 불안합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초조함의 현상이 믿음을 버리고 애굽에 내려갈 때의 현상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적인 욕심에 의하여 삶을 결정해 놓고 애굽으로 내려가면 두려움이 엄습해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염려에 빠집니다. 두렵기 때문에 더 안간힘을 쓰며 어떡해서든 문제를 해결하고 그 자리에서 나오려 하지만 이상하게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그래서 삶에 어둠과 우울함이 찾아옵니다.
 
마태복음 14장 29-31절을 보니,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이 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바람과 물결로 인하여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그 배까지 오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령으로 오해합니다. 이때 하신 예수님 말씀!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  
베드로가 물 위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고 부탁을 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오라”
이때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걸을 때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분명히 여전히 바람과 물결이 부는 상황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빠졌던 베드로였습니다. 야단법석을 떨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며 걸을 때 물 위를 걷는 베드로입니다. 그는 풍랑과 위기 가운데 하늘의 평강과 하나님의 기적의 능력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4장 30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베드로는 갑자기 주님으로부터 눈을 떼어 바람과 물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마자 그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함께 그는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평강과 만족으로 가득합니까? 아니면 끝없이 되풀이 되는 불안과 초조와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혹시 두려움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경은 자명하게 보여 줍니다. 주의 백성들이 주님을 떠나 애굽으로 가면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떼는 순간부터 우리는 두려움에 빠집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순간, 아브라함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살아남기 위하여 그들에게 아부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서지 못하고 애굽 왕의 힘과 권력 앞에서 쩔쩔매는 아브라함을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여정에서 믿음을 잃게 되어 애굽으로 내려가면 우리는 언제나 두려워하게 됩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그 대신 사람을 두려워하고, 환경을 두려워하고, 장래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평안을 잃습니다. 그래서 삶이 죽을 맛입니다. 이에 잠언 29장 25절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고 말한 것입니다. 

둘째는,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면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은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창 12:11-13)

아브람의 말을 잘 들어보면, ‘우리 목숨’과 ‘우리 안전’이 아닙니다. “내 목숨과 내 안전”입니다. 그는 아내의 명예나 순결을 생각하기보다 오직 자기자신의 안전과 목숨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되던 상관없이 나부터 살겠다고 꾀를 부리는 매우 이기적인 아브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고자 하면 온통 자기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제 믿음을 잃고 애굽으로 내려가 스스로 힘으로 살아 보려고 하는 아브람의 삶은 거짓말쟁이 인생이 됩니다. 

12-13절을 보면, 살아보려고 꾀를 부리는 아브람과 사래를 보게 됩니다. 즉,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이 그의 인생을 꾸리는 방법은 이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자신의 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자신의 꾀로 살아가는 인생은 반드시 거짓의 죄악이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이기적인 아브람은 연이어 자신이 사라의 오빠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말하므로 타인을 속이는 죄를 범합니다. 사라가 그의 이복 누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대답은 고의적인 거짓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물은 것은 “이 여인이 당신의 아내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 땅에 내려간 아브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고자 거짓말을 꾸며대는 거짓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기를 칩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사기가 얼마나 많은지 신문마다 사기 기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렵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물질을 끝없이 쌓아 놓아야 안심을 합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사기를 쳐서라도 내 것을 쌓아 놓겠다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인생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면서 삶을 꾸리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상태가 되면 여러 가지 죄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삶이 복잡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치와 멸망이 코앞에 보이게 됩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것은 아브람의 거짓 계획입니다. 이때 이 거짓 계획에는 사래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사래도 공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이 없이 애굽 땅에서 스스로 살아나려는 아브람과 사래는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기로 했습니다(참조, 창 12:11-13).  

그리고 아브람은 모든 종들과 그들의 식구들에게 ‘쉿, 우리가 부부라는 것을 애굽 사람들이 알게 되면 우리 모두가 망하게 될 것이오. 그러니 다들 누가 물으면 아 그들은 오누이 관계라고 말하시오’라고 지시를 내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람의 종들은 거짓을 말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이로 인해 애굽 사람들과 애굽 왕 바로까지도 거짓을 사실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을 알지 못하는 애굽 사람들은 아브람과 사래의 거짓말로 인하여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즉, 애굽의 바로 왕이 사래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바로 황제는 곧바로 사라를 첩으로 삼으려고 바로의 궁으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19절을 보면, 결국 애굽 왕 바로가 아브람의 이 거짓말로 말미암아 아브람의 아내 사래에게 무서운 간음 죄를 범하게 되는 순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적인 큰 죄악을 낳을 뻔 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아브라함의 그 후손을 통하여 열국을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마저도 거의 무효가 될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 한 사람의 불신은 거짓의 죄악을 만들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에 무리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저버리고 스스로 먹고 살려고 하다 보면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자들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자들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 거짓을 통하여 내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와 생명을 유지하려고 하면 그는 이미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 애굽에 가 있는 사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종종, 돈과 명예와 권력과 인기와 텃세 때문에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유포하고 수군거리고 비방하고 돈을 떼어 먹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만일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이러한 죄된 방법으로 살아보려고 머리를 쓰며 속이는 자가 있다면 믿음을 저버리고 애굽에 가 있는 사람인 줄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하기 바랍니다.  

물론 그런 사람은 애굽 땅에서 거짓말을 통해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다고 노력하지만 마침내는 아내마저도 잃어 버리고 가정도 파괴되고 직장도 잃고 건강도 잃은 상태에서, 심지어 죄의 저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멸망의 자리로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아브람은 애굽에서 칭찬 받기보다는 이곳 저곳에서 공공연한 비난을 듣게 됩니다. 18절을 보니, 주 하나님을 안 믿는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창 12:18-19). 
따라서 아브람은 그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이처럼 신자가 믿음을 떠나 애굽에 내려가면 불신자들의 조롱과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신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에 로마서 2장 24절을 보면,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섯 째는, 신자가 애굽에 내려가면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고난을 초래하게 합니다. 즉, 그러한 불신앙의 신자는 어디를 가나 남에게 이익이 안되고 손해만 끼치는 사람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 12:17). 
만일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믿음 없는 행동을 하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애굽에 내려간 불신의 신자들은 이방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합니다(참조, 18-20절), 모든 거짓이 다 탄로나고 모든 사람들이 분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큰 망신을 당한 가운데 아무 곳에도 설 곳이 없게 됩니다. 아브람은 바로 왕 앞에서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심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다면 아브람은 바로 황제의 칼에 죽었을 것입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먼저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위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실패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줍니다. ‘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실패할 때가 있었구나! 그 위대한 아브라함도 한때는 믿음의 실패의 여정을 걸었었구나.’ 따라서 여러분의 믿음의 실패에 대하여 너무 낙망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신앙의 실패가 주는 삶의 결과들을 자명하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꾀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애굽의 삶에 대하여 경고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 네 꾀를 의지하고 살 때 어떠한 삶이 되는지 알도록 하라. 그 결국은 이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이 말씀은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으로서 진리 중에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7절에서 20절까지를 다시 읽기 바랍니다.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창 12:17-20)

이 구절에서 특히 17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17절에 대하여 개역 개정의 이전 버전인 개역 한글은 제가 볼 때 훨씬 더 정확하고 또한 히브리 문법에 맞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개역 한글). 

여기서 “사래의 일로” 또는 “사래의 연고로”라로 번역된 원어 (알-브다르)는 연결되지 않은 두 단어로 볼 때는 “사래의 일로”라고 번역함이 옳지만, 히브리어의 (알-브다르)는 두 단어가 연합하여 만든 하나의 단어로서 숙어처럼 “because of”, 즉 개역 한글의 “연고로”가 해석되어야 정확하게 맞습니다. 따라서 권위있는 영어 성경들은 한결같이 “because of”로 번역하였습니다. 

KJV Genesis 12:17 And the LORD plagued Pharaoh and his house with great plagues because of Sarai Abram's wife.

NAS Genesis 12:17 But the LORD struck Pharaoh and his house with great plagues because of Sarai, Abram's wife.

NIV Genesis 12:17 But the LORD inflicted serious diseases on Pharaoh and his household because of Abram's wife Sarai.

심지어 가장 독자를 배려하여 번역된 New Living Translation 역시 because of, 즉, 사래 때문에 로 번역되었습니다. 

NLT Genesis 12:17 But the LORD sent a terrible plague upon Pharaoh's household because of Sarai, Abram's wife.
 
즉, 성경은 아브람의 실수와 불신과 어리석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지키신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사래의 연고로”, 즉, 사래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자매님들로 인하여 남편들의 이기심과 무지와 불신앙이 고쳐지길 원합니다. 여러분 아내들과 여인들로 인하여 가정과 남편과 자녀들이 복을 받길 원합니다. 어질고 믿음이 깊은 여인을 둔 남성들은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래의 연고로 모든 비참과 실패가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IMF 가 터졌을 때, 사래의 연고로 일어선 가정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천박하고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아내를 둔 가정은 영락없이 무너졌습니다. 즉, 아내 한 사람에 의해 무너졌던 가정이 다시 서기도 하고 또는 더 철저하게 무너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래의 연고로”는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래가 누구입니까? 그녀는 하나님의 언약의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사래에게서 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즉, 사래의 태에 먼 훗날에 오실 메시아가 약속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여인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올 것을 하나님이 정하셨기에 하나님은 친히 사라를 보호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래의 연고로 아브람의 가정은 구원을 얻고, 회복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을 보호하고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그 어떠한 애굽 땅에서의 비참과 절망과 좌절 속에 있더라도, 집을 나간 탕자처럼 모든 것을 죄악으로 탕진하고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신세가 되었더라도, 가족 및 교회 공동체, 그리고 직장 및 나아가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버림을 당할 지라도,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 안에서 죄 사함 받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사래 안에서 나게 될 그리스도 덕분에 아브람과 그 가족은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여질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여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며 조만간 모든 것을 회복하여 얻게 될 것입니다. 

이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시 37:28). 

따라서 우리가 믿음에 실패하였을지라도, 그래서 애굽 땅에서 가장 비참한 삶이 되었을지라도 우리를 다시 도우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오늘 십자가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애굽의 자리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 자리에 계속 거하려고 고집한다면 반드시 멸망하게 되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불신앙의 자리, 두려움의 자리, 거짓의 자리,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자리, 거룩한 공동체를 허무는 자리, 하나님을 향하여 게으르고 주의 제단을 멀리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저를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소서. 불신으로 인한 시련과 고통을 당할 때 더 멀리 주께로부터 도망치기보다는 더욱 주를 의지하며 주 앞에 서게 하셔서, 이 시련을 이기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혹시 지금 자기 멋대로 탕자처럼 내 계획과 생각대로 애굽으로 달려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자의 품을 떠난 길 잃은 완고한 양은 아닙니까? 지금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아브람과 같이 더 큰 잘못과 비참과 멸망의 위기에 빠지기 전에 돌이키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여 주실 것입니다.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요일 1:9; 고후 5:21; 딛 2:14)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들에 피었다지는 꽃도 입히시고, 공중에 나는 새들도 먹이십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기근이 다가옵니까? 궁핍합니까? 그렇다면 스스로 애굽을 찾아 떠나지 마시고, 더욱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간절하게 붙잡기를 바랍니다. 만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계속 가나안 땅에 거하면 하나님께서는 기근의 때를 통하여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기적을 체험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이긴 후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모든 풍성하신 축복과 보람과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과 함께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보람되고 복 있는 삶이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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