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02) - 욥기(6)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을찌니라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원하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욥31:35).

왜 인생이 고난의 깊은 터널 속에 사는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질고(疾苦)를 겪으며 신음하며 살고 있는가. 대체로 사람들의 인생을 보면 그 고통의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 대게 알게 된다. 사람들의 삶의 태도에 비롯되며,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삶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신앙여부에 따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예측하게 된다.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의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34:11-12). 결국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고난의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지만 어떠하든 땅으로 가는 존재임을 말한다.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욥34:15). 인간은 육신의 죽음으로 인생에서 일차적인 고난이 끝나지만, 육체의 생명이 끝나면 또 다른 영적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롬6:1-21).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이라”(롬6:22). 인생의 마지막에 영적인 생명과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욥기의 구조를 살펴보자. 욥기가 후반부에 가서 순차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두 개의 삽입적 이야기가 언급된다. 가장 폭넓고 중요한 첨부가 있는데 4번째 친구, 엘리후(32-37장)연설이 나온다. 그는 욥기에서 그 이전 이야기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고, 또 엘리후 연설 이후에도 다시 나오지 않는다(욥42:7이하). 엘리후는 대화에 있어서 욥의 대답을 듣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엘리후 연설은 욥의 하나님께 대한 호소(욥31:35이하)부분과 욥의 대답 사이의 연결점이 끊어져 있다. 엘리후 이야기는 수정된 형태로 시도된 지혜 관점이 심도 있게 나타나고 있다.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내 발을 차꼬에 채우사 나의 모든 깃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욥33:8-33:11). 세 친구의 앞선 이야기와 달리, 엘리후 연설에서 빈번히 욥의 말을 인용하는 부분은 거의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이미 표현된 생각들의 많은 반복들에서 나타나며 이에 덧붙여서 엘리후 연설은 ‘고난이 하나님의 경고와 훈련(연단)의 조치’로서 사용된 것이라는 견해를 제공한다.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욥33:19-22).

욥이 당한 인생의 고통과 병고, 그리고 까닭 없는 징계는 너무도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그 힘듦을 잘 말하고 있다. 이 고난은 예수 십자가의 고통을 말해주고 있으니 그 구속사의 섭리는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없이 죽을 것이니라”(욥36:8-12). 인생의 고통과 고난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정통신앙(신명기 신학)에 비추어 보면, 교만과 악행, 교만한 행위, 죄악에서 기원되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어떠한 삶인가.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볼찌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하나님의 징계로서 고난은 축복이라는 사실은 욥기의 밑바탕에서 계속 말하고 있다. 이는 욥의 고난보다는 모든 인류의 고통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고난의 지혜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삶 속에서 비교적 고난을 줄이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임을 말하고 있다.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28:28).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며 결국 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지혜의 통찰력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잠1:7). “하나님이 그 길(지혜)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그 때에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궁구하셨고”(욥28:23-24, 27).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지혜의 주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심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