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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詩】『꽃밭 여행자』소강석, 그는 목사인가? 시인인가?
  • 최장일 기자
  • 승인 2019.05.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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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08

『꽃밭 여행자』

                                                               

                                               소강석

 

꽃밭을 여행했으면 사막으로 가라

사막을 다녀왔으면 다시 꽃밭으로 가라

꽃밭의 향기를 사막에 날리고

사막의 침묵을 꽃밭에 퍼뜨리라

꽃밭에는 사막의 별이 뜨고

사막에는 꽃밭의 꽃잎이 날리리니.

 

 

달빛 서시(序詩)

                                   소강석

 

차마 고백하지 못한 사랑이 시라면 
밤 새 뒤척이는 달빛 그리움도 시라면
봄밤, 홀로 잠드는 우물가의 찔레꽃이여
소금처럼 하얗게 밀려오는 해변의 파도여
이 밤도 내 가슴을 푸르게 멍들게 하나요
만날 순 없지만 한 하늘 아래 함께 있어
빈 가슴을 저리게 하는 그리움이여
아, 달빛 그리움이 눈물이 되고
눈물이 녹아서 시가 될 때
우리 시가 되면 만나요
사랑의 시가 되어 만나요.

◈ 소강석 시인은 1995년 월간문예사조로 등단했다. 윤동주문학상,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받은 바 있다.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집 '다시, 별 헤는 밤'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 등 9권의 시집을 냈다.

【소강석칼럼】『시를 쓴다는 것은』

나는 목회자이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시를 쓰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많고 때로는 광장에서 수많은 군중 앞에 사자후를 토하는 검투사형 웅변가이기도 하다. 목회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면 시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아쉬울 때가 많다. 좀 더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꼭 한번은 정호승 시인에게 직접 시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서 시에 관한 한 그는 대기권 밖의 존재이다. 그의 시에는 문학적 기교와 예술적 혼만 있는 게 아니다. 시대에 대한 고민과 아픔이 깃들어 있어 위로가 됐다. 

정호승 시인은 우리 교회에 와서 사랑과 죽음의 본질에 관한 인문학 특강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니었기에 그분의 시 강의를 개인적으로라도 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분이 먼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시를 쓸 때 제목부터 정하고 내용을 씁니까? 아니면 내용을 쓴 후 제목을 정합니까? 그리고 시를 쓸 때 정말로 아픔과 고통을 느낍니까?” 

그 분의 물음에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저는 선생님처럼 전문 시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삶이 너무 치열하고 바빠서 주로 비행기나 차에서 이동 중에 씁니다. 그러다 보니 시 쓰는 고통을 많이 느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먼저 본인이 느끼는 시 쓰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시 창작의 지름길은 없습니다. 시를 쓰는 것이야말로 고통입니다. 시작을 위한 메모 과정부터 그것을 시로 옮기고 다시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도 이 시가 과연 얼마나 독자의 심금을 울릴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러므로 시는 고통으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저도 언제쯤 시 쓰기의 고통에서 해방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사람의 마음을 더 감동시키고 시의 꽃밭을 이뤄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통의 극지를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자신은 시를 쓸 때 제목부터 정하고 내용을 쓴다고 말했다. 내용을 쓰고 제목을 정하게 되면 시대 혼과 시인의 아픔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아무리 아름다운 시라 할지라도 그 속에 시대 혼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순수 서정시라 하더라도 그 속에 시대에 던지는 예언자적 혼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제사장적인 정신도 들어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 사상에서 시인의 가슴은 신전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그리스 사상에서도 시인을 하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라고 얘기했다. 

그분의 강의를 들으며 너무 부족함을 느꼈고 심지어는 ‘내가 가짜 시인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윤동주의 무덤 앞에서 썼던 시가 떠올랐다.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 /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 / 어찌 시를 쓴다 할 수 있으리요 /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 시를 썼던 / 가짜 시인을 꾸짖어 주십시오 /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 / 심판해 주십시오 /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 / 파면해 주십시오 /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 /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서 나는 출판을 준비하고 있던 시들을 적지 않게 수정했다. 처절하리만큼 바쁘게 사는 나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부끄러움, 고통, 눈물, 잔인한 사명, 가시 찔린 사랑, 꽃잎과 꽃잎이 마주하며 별들로 사랑을 속삭이게 하는 것일까. 

정호승 시인은 말했다. 시는 은유의 옷을 입고 자신의 상처와 고통, 외로움을 드러내며 비극적 황홀에 도달하는 과정이라고, 그리고 그 비극적 황홀을 통해 인간과 신과의 관계 속에서 숨겨진 비의를 노래하여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라고. 그분 덕분에 나는 시인으로서 또 한 번 거듭남을 경험하였다.

 

◆100년이 지나도 살아 있는 교회

저는 지난 수요일 저녁 안동교회에서 있었던 통합측 경안노회 남선교회 창립 97주년 선교대회 설교를 하였습니다. 저녁 7시에 시작하는데 겨우겨우 7시 3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제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제 목회일정을 소화하고 늦게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가서 보니 본당 뿐만 아니라 1층 교육관에도 성도들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이 모였습니다. 

특별히 안동교회는 109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이고 109년 역사상 단 한 번도 분열한 적이 없습니다. 분열 하지 않는 대신 21개 교회를 분립, 개척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지방이지만 장년이 2000여명이나 출석하는 교회라니 가히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안동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분은 김승학 목사님이신데 정말 인자하고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석조건물의 우람한 모습을 보고 제가 감탄을 하니까 담임목사님께서 그 건물은 1937년에 건축해 지금 81년 된 건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큰 건물이지만 그때는 명물 중의 명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안동에 오면 먼저 안동교회부터 구경하고 갔다고 합니다. 이런 은혜롭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유승준 작가의 ‘안동교회 이야기’라는 책에 잘 소개 되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교회 소개를 받고 강단에 10분 정도 늦게 섰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올라가자마자 가슴이 울컥 거렸습니다. 가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친 것이 아니라 앉아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제가 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사회를 맡은 장로님과 대표기도 하는 분들의 기도가 제 마음을 울리고 때렸습니다. 그뿐 아니라 찬양대에 서셨던 장로님들의 모습만 봐도 저절로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도 모르게 강단에서 눈시울을 적시며 설교 하였습니다. 특별히 그 교회는 195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39회 총회 때 일제 신사참배에 대한 개를 결정했거든요. 그때 총회 총대들이 안동교회에서 신사참배를 회개하고 금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교회가 안동교회보다 훨씬 더 큰 교회이지만 강단에 선 저의 모습은 왠지 너무 작아 보이고 왜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30년 동안 목회하면서 한 번도 안 싸운 것을 자랑했는데 109년 역사 앞에 서니까 진짜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다시 당회장실에 가서 역대 담임목사님들의 사진과 장로님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아, 저 분들은 얼마나 훌륭했으면 이런 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까? 109년의 세월 동안 찬 서리도 내리고 눈보라와 폭풍이 몰아치기도 했을 텐데 단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화목하게 지내왔다니... 아니야, 하나님의 은혜가 더 컸던 거지. 하나님의 은혜가 저분들에게 임해 오늘의 안동교회가 있게 된 거야.’ 그렇습니다. 저의 고향 남원도 양반도시라 정말 예수 믿기가 힘들었던 곳인데, 안동은 남원보다 더 양반도시고 미신과 전통문화가 더 강한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곳에서 예수를 믿는 것도 큰 은혜요, 기적이었지만 그런 곳에서 109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21개의 교회를 분립했던 그들이 정말 위대하게 느껴지기만 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설립 30주년을 앞두고 안동교회에 오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합동측 권택성 장로님과 권정식 장로님이 간절하게 부탁해 약속했는데, 도중에 ‘내가 왜 통합측 교회까지 가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요즘 너무 바쁘기 때문이죠. 그러나 가서 보니까, 저를 초청해 주신 장로님들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주최측에서 사례비 봉투를 주었지만 저는 손이 부끄러워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우리 교단의 두 권 장로님에게 언젠가 한 턱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안동교회는 3대 담임목사가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야기로 유명하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언젠가 은퇴할 것이 아닙니까? 은퇴 할 때쯤이면 제 후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끄러울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새 담임목사가 와서 원로목사인 저하고 갈등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교인들하고 충돌할 수도 있을 것이고요. 우리 교회라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안동교회는 어떻게 109년을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지내왔는지 차를 타고 오면서도 당회장실에 걸려 있는 사진들이 눈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0년이 지나도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는 교회, 100년 후에도 은혜가 넘치고 화목하며 시대와 사회를 섬기는 교회, 이런 교회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장일 기자  bonhd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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