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뉴얼, ‘한국교회 희망이야기’ (13)

 

이대희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10년)를 역임했다, 학술원 교수 강의와 전국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크리스천 가이드> <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동부구치소 재소자 성경공부와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 중국목회자 훈련사역과 북한선교 지도자 훈련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200여권의 이야기대화식 성경교재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50여권의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올해의 책 선정).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하브루타 연구소장. 미국 Kernel niversity Korea Campus 국제 객원교수.

 

공부란 무엇인가? 동양의 공부는 마음과 생각과 아울러 몸과 행동이 같이 간다. 서구의 헬레니즘 교육관은 이성중심의 교육으로 몸과 마음이 분리된 상태로 이해를 한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많이 하면 아는 것만 많고 실천이 없는 말만 많아지는 사람으로 오해를 한다. 이것은 서구적인 교육의 영향이 크고 우리나라에 아직 교육관이 자리 잡지 못하다 보니 지금까지 혼란스러운 교육의 홍역을 앓고 있다.

헤브라이즘과 동양적인 공부는 학(學)과 습(習)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학(學)은 “배운다”는 것이고 습(習)은 “몸에 익힌다”는 것이다. 본래는 공부는 삶까지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공부다. 우리말에서 ‘학습’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바로 논어에서 나온 말이다. 논어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뜻은 “배우고 끊임없이 익히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이다. 바른 뜻을 배워 나의 몸에 익히는 공부는 그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필자는 그동안 많은 시간동안에 사람을 만나 성경공부를 해오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성경공부를 따분하고 지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공부를 많이 하면 오히려 머리만 커지고 교회 문제가 생기고 교만하게 된다는 분위기가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너무 깊게 공부하지 말고 적당하게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교인들을 성경공부를 하면 교회 부흥이 잘 안되고 말이 많아진다는 생각에서 목회에서 성경공부는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한국교회 성도들의 성경공부는 거의 유치원 수준이다. 성경자체보다는 설교로만 신앙이 만들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성경자체를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교회 분위기가 아니다. 설사 의문 나는 것을 질문하고 싶어도 그것을 자유롭게 받아줄만한 교회도 많지 않다.

성경은 어쩌다 시간 날 때 통독하는 수준이고 성경으로 세워진 초기 한국교회 정신은 사라지고 이제는 성경을 공부하는 교회가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공부에 대한 부정적 기류를 만들어 성경을 교회 속에서 몰아내게 한 사람들은 나중에 분명히 책임을 물을 것이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일어난다, 교회에서 성경을 몰아내는 것은 곧 성령의 역사를 거슬리는 일임을 안다면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물론 실제로 성경공부 했다고 말하는 성도들 중에 이런 영적교만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성경을 공부하지 않았기에, 또 재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나타나는 문제지 성경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사람의 혼과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가장 위대한 책이다.

어느 교재와 성공 프로그램보다 성경을 능가 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것은 성경 안에 답이 다 들어 있다, 세상의 모든 총제를 합해도 성경을 넘어설 수 없다. 이것을 교회가 고백을 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정작 교회가 먼저 성경을 부수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으로는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서 다른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일은 교회를 더 힘들게 한다. 사실 성경 한권이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성경 한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다른 것을 첨가하고 그것으로 신앙과 교회를 부흥 시키려고 한다.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될까? 그것은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경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에 대한 오해와 무지 때문이다. 그중에 하나가 성경공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정리가 부족한 것을 들 수 있다.

성경공부는 한마디로 하나님 공부다. 이것을 한마디로 풀면 신학이 된다. 성경공부는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공부가 지겹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지겨운 것이 된다.

성경은 말씀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 공부를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성경공부와 일반 공부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완전히 다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쓴 하나님의 숨결과 손길이 운행하는 책이다. 일반 공부는 인간들의 생각으로 서로 공부하는 것이다. 성경은 계시의 책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성경은 책이 아닌 인격이라는 점이다. 비록 글로 적은 책이지만 그 자체가 말씀이고 하나님이시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우상처럼 대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필자가 오래전에 러시아를 배낭여행으로 다녀 온 적이 있었다. 이삭 성당이라는 아주 큰 예배당에서 러시아 정교회 미사를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성경을 유리 금박에 넣고 열쇠를 잠궜다. 그것을 예배당 앞의 큰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성도들이 그 성경함에 입을 맞추고 경배하는 모습을 보았다. 성경은 읽는 책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성경을 단순히 특별한 베스트셀러 같은 책. 우상과 같은 경전으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문자로 기록되었고 그것이 책으로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글자로 된 책을 넘어서야 한다.

Saint Isaac's Cathedral 러시아 성(聖)이삭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성경은 문자로 된 책이지만 영의 책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만나는 책이다. 성경은 모두 예수이야기다. 성경에서 마지막 목표는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는데 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읽는 이유는 그 안에 계신 예수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그분을 닮기 위해서다. 성경은 예수의 책이다. 성경을 아무리 많은 공부를 해도 그곳에서 예수를 만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예수님도 모든 성경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물론 구약의 선지자들의 외침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함이다. 모든 신학공부와 성경공부의 핵심은 예수를 만나는데 있다. 성경을 책으로 공부하면 지식은 커지만 삶의 변화가 없다. 하지만 예수를 만나면 인생이 달라진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성경의 중심이요 주인공인 예수를 만나는데 있다. 예수를 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만나 삶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 목표다. 이것은 성경 속에서 예수를 우리 몸으로 체득하고 자기를 죽여 예수로 사는 변화된 삶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경속에서 예수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사실 이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유대인은 구약 성경을 읽고 열심히 하브루타를 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성경속에 있는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도 성경을 지식적인 책으로 이해를 한다면 그는 아직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다. 진정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만났다면 우리는 말씀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전하며 자기의 목숨을 던져 수고를 다하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이다.

성경 속에는 예수가 있다. 예수 없는 성경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 예수를 만나기 위해 성경 속으로 깊게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말씀속으로 빠져들어 그 속에서 예수를 만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깊게 공부하고 묵상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면 수가성 여인처럼. 엠마오 두 제자들과 길에서 눈을 뜬 바디매오 처럼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게 된다. 정말 예수를 만나고 싶다면 말씀 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결단을 해야 한다. 말씀을 통해 자기를 죽이고 포기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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