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병 목사의 산골마을 팡세 (2)

 

제7회 활천문학상 최우수상 수상(2018),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졸, 동대학원 졸, 독일 베텔신학대학원 수학, 현재 독일 보쿰대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독일 다름슈타트 중앙교회, 독일 이삭교회 담임목사 역임. 현 간동교회(강원도 화천) 담임목사

우리는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사업가나 대학교수로 명성을 쌓거나 지도층 인사로 많은 곳에 영향력을 펼치기도 했지만,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여 학위와 논문을 조작한 것이 탄로 나거나, 타인에게 악한 일을 한 것이 들통 나는 바람에 모든 신뢰와 명예를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비리와 부패의 소식들도 여전합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사회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고 추악한 일을 벌이면서 아직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부정부패를 지적하며 다른 사람의 비리를 폭로하던 사람도, 사실을 알고 보니 부패의 노른자위였고,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실상은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이었으며, 존경받는 인재요 촉망받는 예술인인줄로 알았으나 성욕으로 가득 찬 짐승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들은 청년기에 나름대로 올바르게 살려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가요? 부패를 보면 역겨워하면서, 민주화를 가로막는 공권력 앞에 목 놓아 울던 투사들이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옳은 말만하고 다니던 사람들이, 시간이 흘렀다고, 자기가 싫어하고 혐오하던 바로 그 모습이 되어 버렸을까요?

‘옳은 주장을 하는 것’과 자기가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옳은 주장을 한다고 해서 내가 옳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옳은 것을 좋아하고 말한다는 것과 자신이 옳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모든 기치(旗幟)들이 마틴 루터(1483-1546)의 머릿속에서 모두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14세기 옥스퍼드의 존 위클리프(1320?-84), 15세기 보헤미야의 얀 후스(1372-1415)에 의해서 이미 시도 된 바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이념들은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던 상식에 가까운 것들이었습니다. 특별히 가톨릭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종교개혁의 중요한 주장들은 에라스무스(1466?-1536)에 의해서 거의 다 제기되었던 것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당시에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고 로마 카톨릭과 싸워 교회의 바른 모습을 회복시킬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실행’했던 사람은 오직 마틴 루터였습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지식’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지식인들처럼 루터가 결단을 내린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옳은 생각이 자동적으로 옳은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옳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옳은 일을 실행해야 합니다.

의를 위한 분투가 없으면 악에게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자신이 옳은 생각을 가졌기에 자신이 옳다고 착각한 채로 위선하며, 분별없는 죄를 범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올바른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행동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오늘을 반성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단순한 동의가 아닌 말씀대로 움직일 때 능력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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