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신학대학교 2012학년도 2학기 교회사2 B반이라는 공동체로 모이게 하신 성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덕주 선생님을 비롯한 80인의 제자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놓고 대화하고자 합니다.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기대합니다. 각자의 생각은 다르지만 다름 속에 하나의 본질로 우리를 통일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위 기도문은 2012년 10월 24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종합관 107호에 있던 교회사2 B반에서 모든 학생들이 오늘날 교회를 향한 95개의 논제를 만들어갈 때 드렸던 기도이다.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 45주년을 맞이하여 2012년형 95개의 논제를 준비하는데 오랜 시간을 공들여 왔다.

총 일곱가지의 대주제로

①목회자에 대하여

②교인에 대하여

③교회에 대하여

④교회와 사회에 대하여

⑤교단에 대하여

⑥신학교에 대하여

⑦신학생에 대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김완숙 집사, 포항충진교회

<목회자에 대하여>

1. 목회자는 자기 과신을 버린다.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셨다 할지라도 여전히 육신이 연약한 인간임을 인정한다.

2. 타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목회자들은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에 빠질 위험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3. 목회자는 복음의 사역자로서 세속적인 힘을 가진 교회가 아니라 섬기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경적 가치관 전달에 앞장서야 한다.

4. 목회자는 물질주의에 빠져 양적 성장이나 예배당 크기를 목회자의 성공기준으로 삼는 세속화된 가치관을 배격하고 절제와 구제, 봉사와 복음 전도에 힘쓰며 사랑이 넘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5. 목회자는 결코 우리 자신을 기도보다 앞세우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의 목회를 지향해야한다.

6. 목회자는 모든 교회 재산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 재정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관리하여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바르게 감당해야한다.

7.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출된 직분자들이 임직할 때 그 어떤 명목으로도 헌금이나 헌물을 요구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8. 목회자는 세상의 문화가 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을 믿고, 이를 복음으로 변화시켜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의 문화로 이루어 가야한다.

9. 목회자는 설교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대언자 임을 믿고, 자기주장과 자기변호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해야 한다.

10. 목회자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임을 믿고, 하나님 없이 세속적인 복만을 추구하며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바로 전해야 한다.

11. 목회자는 교회 정신이 성경말씀으로 돌아갈 때 이루어짐을 믿고 신, 구약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몸소 실천하고 겸손히 가르쳐야 한다.

12.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일 뿐 구원을 위한 일체의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항상 가르치고, 자각하여 겸손히 종의 자리에 서야한다.

13. 목회자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킨 죄를 회개하며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 됨을 위해 힘써야 한다.

<교인에 대하여>

14.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된 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이다. 연합해야 하고, 배려해야 하고, 각자의 맡은 바에 충성해야 한다. 지체들이 높고, 낮음으로 서로를 평가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면 교회라는 한 몸은 바로 설 수 없다.

15. 교회 안의 직분은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렸다. 섬기라고 주신 직분은 오늘날 목사에게 대적하는 감투로 전락했다.

16. 직분은 성경을 알고, 믿으며, 성도들을 바르게 지도할 줄 알고, 아는 만큼 더 섬기고, 배려하고, 나누라는 하나의 멍에다.

17. 직분을 받고서도 편하길 바라고, 큰소리를 친다는 것은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직분은 감투가 아니다.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고, 섬기라는. 이것을 잊는다면 직분은 더 이상 직분이 아니다.

18. 성경은 교회 내의 교육과 섬김, 나눔을 말한다. 한마음과 한뜻으로 나아가도 모자랄 판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기독교를 보는 시각은 그리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19. 이제 우리는 한마음으로 연합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해야 한다. 변화는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0. 더 심각한 것은 우리끼리 싸우고, 교회 내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으로 간다는 것이다.

21. 교회 내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으로 판단하고, 서로에게 권면하며, 바른 길로 지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22. 이것을 위하여 직분은 존재한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말씀으로 훈계해야 하며, 장로와 권사와 집사는 세세한 부분에서 목회자의 일을 돕는 동역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23.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서로에게서 들으며, 배려해야 한다. 기독교는 상식이 통하는 모습으로 변해야만 한다.

24.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믿는 우리의 모습 또한 이렇게 나타나야 하는데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25. 야고보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말한다. 믿음과 행함이 일치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26. 한국 교회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셨다.

27. 하지만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견제하고, 정죄하기 바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가운데에서도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28. 사랑은 표현될 때 사랑이다. 야곱은 자기를 죽이려 했던 에서를 만나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라”(창33:10)하고 고백한다.

29. 성도간의 사랑과 관용의 모습은 이처럼 서로를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재 교인의 삶에 있어서 또 하나의 특징은 나눔이 없다는 것이다. 나눌 때 하나님은 채워주신다고 했다.

30. 경건의 모습은 이처럼 나눔으로 보여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야고보의 말씀이다.

31. 성경을 왼쪽 가슴에 대야하는지, 오른쪽 가슴에 대야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목소리 깔고 말해야 경건한 것인가? 목소리가 항상 쉬어있는 것이 경건한 것인가?

32. 야고보는 진정한 경건을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나눔이 경건의 참 모습이라는 것이다.

33. 누가 성도인가?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성도가 아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믿은 그대로 사는 것이 바로 성도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할 때인 것이다.

<교회에 대하여>

3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목적하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살펴봤을 때 현대 한국 교회는 그 방향성이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35. 지금의 한국 교회는 ‘교회’가 아닌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6. 교회의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자의 인격적 성장이며, 신자의 성화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의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자’의 성장이 아니요, ‘교회’의 성장이다.

37.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성경은 신자들에게 말하기를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성화, 곧 신자들의 인격적인 성장이요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38.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신자들을 성화의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키우는 ‘기능인’으로 인도받고 있다.

39. ‘성숙한’ 신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 처리에 ‘능숙한’ 신자들이 교회를 메우고 있다.

40. 우리의 올바른 목적성 없이 인간의 욕심과 야망으로 메워진 교회는 신자들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게 하며, 또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지 전혀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41. 이러한 교회에서 신자들은 출석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그것으로 남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하는 가난한 신앙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42. 교회가 기업화가 되면서 더욱 완벽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자들 사이에서는 웃음보다 일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한 사람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데 더욱 익숙해졌다. 이러한 일들은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죽이고 있다.

43. 교회 안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을 찾고, 또 신자들 사이에 사랑과 인내보다 일의 효율만을 강조하는 삭막함은 과연 교회의 본질과 어울리는 것인가?

44. 하나님께서는 신자로 하여금 기능적인 부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성화의 삶을 살기를 요구하신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45. 이러한 성화의 관점에서 교회는 신자로 하여금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업화에 물든 비본질적인 부분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교회는 신자로 하여금 교회가 성화의 장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신자로써 행위(Doing)가 아닌 존재(Being)의 의미에 더욱 집중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46.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신자에게 목적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제시하고, 또 교회에서 그렇게 살아가도록 말씀으로 권고해야 한다.

<교회와 사회에 대하여>

47. 주님께서는 가장 큰 가르침으로 ‘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고 가르쳐 주신다.

48.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 같다. 속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앞선 계명은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9. 문제는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두 번째 계명이다. 지금 교회가 품고 있는 이웃은 과연 누구인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교회의 이웃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50. 지금의 교회는 울타리 안에 있는 자들만을 위해서 복을 빌어준다. 또한 교회의 기도도 울타리 안에 있는 자들을 향하고 있다.

51. 교회는 10년 넘게 일하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사람들과 그러한 현실 속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23명의 사람들에 목소리에 교회는 귀를 기울여 봤는가?

52. 혹 교회가 그러한 일에 입장을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이기 때문에 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장로 대통령을 조찬 기도회에 초청해서 그의 무릎을 꿇게 하는 일은 정치적인 행동과는 예외인 것인가?

53. 아프다는 소리한 번 못해보고 소리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간 그 영혼들은 주님의 명령에는 포함되지 않는 자들인가?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의 명단에는 누락된 존재들인가?

54.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 누구를 이웃이라 말씀하셨는지 다시 생각해보자.(눅 10:29~37)

55. 주님은 에쿠우스를 타고 세상의 지도자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직접 걸으시며 세상에서 소외받은 창녀, 세리, 문둥병자들을 직접 만나셨다.

56. 우리는 도대체 왜!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은 싹 다 잊어버리는 것인가? 왜 우리는 복음을 자신의 이익에 맞는 곳에만 사용하는가?

57. 주님께서 직접 낮아지심으로 이루신 그 구원을 왜 세상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인가?

58. 이제부터라도 교회는 세상의 약자들의 편이라는 것을 성도들에게 말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교회는 사회에서도 외면하는 자들을 향해 우리의 고개를 돌려야 할 것이다.

<교단에 대하여>

59. 지난 9월 25일(화)에 있었던 제 29회 총회 임시 입법의회에서 세습방지법안이 통과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60. 이는 감리교의 신앙전통은 기독교의 참된 구원의 진리와 성서적 경건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에 합당한 일이다.

61.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감리교회, 진정한 한국 교회가 되기 위하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성경에 계시되었고, 전통에 의해 조명되고, 개인적 경험에 의해 살아 움직이게 되며, 이성에 의해 확인된다는 웨슬리의 유산을 계승하는 신학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62. 감리교회가 지켜오는 신앙적 전승과 전통을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듯 교육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63. 웨슬리의 전통을 계승하는 감리교회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조직화에 있다. 순발력 있는 네트워크의 특성을 살려 개교회가 서로 대화하는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64. 감리교본부는 교회력을 통해서 매 주일마다 다루었으면 하는 본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주일 오후예배라도 감리교회 교회력에 따른 본문을 주제로 설정하여 모든 감리교회가 그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한다면 다른 교회에 다녀도 같은 말씀을 성도들 간에 나눌 수 있게 된다.

65. 교회마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웨슬리가 말한 성화의 개념이 개인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화로 발전해야 하듯이 자기 교회에만 관심을 치중하지 말고 먼저 성장한 교회는 미자립교회로 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

66. 감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화’의 교리는 타 교단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사회적 성화에 특히 힘쓰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되어야 한다.

67. 교단 본부는 ‘이 땅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질타를 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여느 사회기업, 기관보다도 청렴한 경영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일 가운데에도 전문인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68. 복지사업, 구제사업, 사회참여사업, 종교 간의 대화 등등 각종 기독교에서 담당하는 모든 사업들을 위한 양성 기관을 설립하여 전문인을 양성하는 것은 어떠한가?

69. 또한 교단 내 교리와 장정에 나와 있는 법이 굉장히 허술하다. 법을 개정하는데 있어서 여느 사회기업, 기관보다도 확실하고 빈틈없는 짜임새를 갖춰야 할 것이다.

70. 신학교에서는 사회법, 교회법에 통달하는 전문인을 양성하는 기관을 설립하길 바라며 감독과 기독교 사업기관과 헌법기관이 삼분되어 보다 아름다운 교회로 만들어가는데 힘써야 한다.

<신학교에 대하여>

71.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교를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학교 공간의 개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72. 많은 학생들이 모임과 같은 장소를 구하기 어렵고 제한하는 학교의 태도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불편함을 호소한다.

73. 교수와 학생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측면에서의 방안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74. 학교는 학생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와 관련된 개혁방안을 반드시 추진하고 실천해야 한다.

75. 소통의 원활함을 위하여 학칙을 세워서, 반드시 학생들의 물음과 게시글에 꼭 응답하도록 제안한다.

76. 채플에 관하여, 습관적이고 의무적인 그리고 출석을 위한 예배가 되지 않도록 성적과 관련된 현재의 상황을 개편해야 한다. 예배는 거룩한 것이다. 의무로 들어가서 제대로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드리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것이다.

77. 강의 과목에 관하여, 더욱 더 다양하고 특화된 과목을 개설하여 학생들이 훗날 교회 사역에 필요한 것을 반드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8. 장학금에 관하여, 많은 신학생들의 금전적인 형편은 여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현재의 안일하고 느린 장학금 제도의 개편을 강력히 요구한다.

79. 학교 내에서도 투명한 예산 관리를 위하여 학생들에게도 그 내역을 공개하여야 한다.

80. 신학교는 학생들이 좀 더 질 높고 깊은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현 커리큘럼의 재편을 강력히 요구한다.

81. 특히 과목의 특성을 고려하여 커리큘럼을 재편하여야 한다. 특히 독어와 헬라어를 동시에 배우는 커리큘럼은 그 과목에 충분히 집중할 수 없게 하므로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82. 또한 신학의 지식전수 뿐만 아니라 예수를 닮아 살아가는 신학생이 될 수 있도록 훈련할 수 있는 환경과 프로그램을 세워야 한다.

83. 학교는 학생이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비롯해 지원하여야 하며 도서관의 책의 양과 개방 시간을 확대하여야 한다.

<신학생에 대하여>

84. 공부하지 않는 신학생은 대수롭게 넘길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자신이 이 길을 왜 걷는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신학생들 스스로 영혼을 살리는 사람들, 살릴 사람들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85. 그러나 육을 고치는 의대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한번 보거나 혹은 법을 공부하는 법대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봐야한다. 그들의 반만큼이라도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86. 심지어 감리교인으로써 감리교와 장로교의 정체성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알지를 못한다는 것은 학교 탓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87. 예수님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삶을 사는지, 스마트 폰을 잡고 놓지 않는 삶을 사는지 생각해보자. 스마트 폰을 만지는 시간만큼만 성경을 보고 책을 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88. 우리 신학생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말이 더 이상은 진실 되지못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이 되는 것에 회개해야한다. 우리의 현재 사명은 공부임을 잊지 말고 사명을 저버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89. 날마다 내 삶에 역사되어지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해야 되는 것 때문에, 설교를 위해서 말씀을 본다. 말씀이 도구화 되고 있는 것이다.

90. 또한 우리는 정답만을 말한다. 설교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서 우리는 정답인 것을 인식하는데 문제는 결국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91. 사람들에게 정답을 제시하고 권면을 하지만 우리는 정답을 행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먼저 그 정답들이 경험되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92. 우리는 채플에서 은혜로운 예배, 은혜롭지 못한 예배를 평가하며 교회에서의 예배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예배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설교자의 설교를 평가하는 평가를 한다.

93. 채플에서 하나님을 높게 보는 경외함보다 그 위에서 예배를 평가하는 평가자가 되어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위치이다.

94. 이제는 참된 예배자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며 지난날의 예배의 태도를 회개해야한다.

95.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이런 우리를 이곳에 신학생으로 부르심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십자가 고난의 길을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는 신학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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