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36-50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과 복은 죄 속에서 살다가 결국에는 지옥에 떨어질 불쌍한 인생이 어느 날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 그 사람의 삶은 크게 변화하여 주 안에서 의인으로 살아가며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이 땅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기적이며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불치의 병을 치유하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그 영혼이 병만 낫고 예수님을 모른다면 결국 지옥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그 기적은 궁극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을 병에서 나은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모른 채 살아가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따라서 삶 가운데서 기적으로 병을 고쳤어도 죄 사함을 얻지 못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난 청년이 있다 하더라도 만일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고작 수년 또는 수십 년을 더 살게 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사업이 잘되는 복, 장수하는 복 등, 모든 복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가장 큰 복인 죄 사함과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러한 여타의 다른 모든 복들 역시 잠시 누리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기에 죽음 이후는 지옥에 떨어지니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 나아가 영원한 천국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 복이 우리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최고의 복인 줄 진실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이 복을 주시기 위해 독생하신 하나님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게 하셨고, 그분으로 하여금 십자가 상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기적이며 최고의 복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영생을 얻는 자는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으니 거듭난 자들, 곧 중생한 자들은 가장 큰 복을 받은 자들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가장 큰 기적의 효력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거듭난 자들은 무한하게 하나님과 및 주의 어린양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2-14)

오늘 본문을 보면,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어느 날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였습니다. 초대의 목적은 확실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초대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인기는 최고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위대한 선생일 뿐만 아니라, 또한 많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시몬은 이러한 분과 친하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고 싶어서 예수님을 초대하였을 수 있습니다.

또는 바리새인의 종교적 열심으로 예수님의 어떤 단점을 발견하여 그를 무너뜨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자기 집에 초대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우리는 시몬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 감사하거나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초대한 것은 아닙니다.

초대를 받으신 예수께서 시몬의 집에 앉아 있을 때 반갑지 않은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39절에 보니 바리새인 시몬이 속으로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문맥상 창녀로 여겨집니다. 즉, 죄인 창녀 하나가 시몬의 집에 갑자기 들어온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식사 때에 문을 열어두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와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지들이나 또는 세리 및 창녀들의 경우는 절대로 집 안까지 들어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저 멀리 문 밖에만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죄인 창녀가 시몬의 집에 들어왔으니, 이는 이 여인의 엄청난 용기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그 여인은 혹시 주님을 못 만나게 될 까봐 문전 박대 및 쫓겨날 것을 각오하고 무조건 시몬의 집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려는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렇게 그 집에 들어왔습니다.

이 여인은 시몬의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곧 바로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 당시 손님들이 식사를 할 때는 왼팔로 머리를 기대고 소파 옆으로 누워서 오른 손으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그 집에 들어오자 마자 예수님의 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녀는 눈이 퉁퉁 분 채로, 회개하며, 감사하며, 겸손히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때 바리새인이 속으로 생각합니다.

‘이 여자가 얼마나 더러운 여자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을 보니 이 예수라는 작자는 선지자인줄 알았더니 선지자가 아니로군!’

이때 예수님은 시몬의 마음을 읽으시고 한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빚진 자 둘이 있다.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여기서 한 데나리온은 하루 노동 품삯을 말합니다. 오백 데나리온은 2년 정도의 품삯이고 오십 데나리온은 두달 정도의 품삯입니다.) 그런데 채무자가 둘 다 탕감하여 주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께서는 바리새인 시몬에게 질문하십니다.

“그 둘 중에 누가 그 채무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사랑’으로 대치하여 물으셨습니다. 사실, 그저 돈이라면 감사라고 말해도 되지만, 생명을 주고 죄를 사한 것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그 감사를 표현할 수 밖에 없기에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빚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따라서 탕감은 죄 사함을 말합니다.

시몬이 대답합니다.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입니다."

시몬은 계산을 매우 잘 했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44-46절).

“시몬아, 너는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다. 시몬아, 너는 정상적인 문안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들어올 때부터 쉬지 않고 내 발에 입맞추었다. 시몬아, 너는 내 머리에 싸구려 감람유도 붓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내 발에 그 값비싼 향유를 부었다.”

그 후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설명하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이 여인은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죄사함을 이미 깊게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너 시몬은 죄사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 여인은 죄사함을 알며, 그녀는 죄 사함을 깊게 체험하였기 때문에 나를 이렇게 많이 사랑하는구나! 나를 향한 이 여인의 지극한 그 사랑! 이는 바로 하나님의 용서를 깨달았기 때문에 나오는 사랑이다. 자신의 죄를 적게 사함 받은 자는 나를 적게 사랑하고, 많이 사함 받은 자는 나를 많이 사랑한다. 반면에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죄사함을 모르며, 따라서 나를 적게 사랑하는구나! 시몬아!"

예수님의 논리는 그 여인이 나를 사랑하며 감사함은 죄사함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은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인식 후에 그 죄로 인하여 신음하며 괴로워하다가 이제 주님을 발견하여 죄사함의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 및 그리스도의 권위로 그 여인의 죄가 사하여졌음을 선포하십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자 시몬의 집에 초대 받은 다른 손님들! 아마도 바리새인들이 전부였을 텐데, 그들이 함께 앉아 속으로 말합니다.

‘이가 누구기에 죄도 사하는가?’

즉, 그들은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는데 어떻게 예수라는 청년이 그 여인의 죄를 사한다고 선포하는 것인가 하고 대단히 고깝게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시기에 자신이 앞으로 십자가에서 치르실 대속을 근거로 하여 그녀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이르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여러 종류의 죄를 지적하면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매 모두 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는 길은 오직 주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거절하면, 그는 본인이 직접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대가는 영벌, 곧 지옥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창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주께서 자기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알고 주께 나아와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주를 향한 사랑입니다. 주를 향한 사랑은 언제나 구원 받은 자의 무한한 감사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4-25).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6-57).

이에 이 여인은 그 사랑과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어서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자기 머리털을 수단으로 하여 주의 발을 닦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두 가지 종류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하나는 창녀의 죄처럼 누구나 손가락질 하는 자명한 죄들입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폭행, 거짓말 등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죄는 시몬의 죄로서 매우 고차원적인 죄입니다. 그 죄는 위선, 교만, 그리고 자기 죄를 인정치 않는 "자기 의"의 죄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 죄들을 살펴보면,

첫째는, 말 만하고 행하지 않는 죄입니다. 이런 모습은 그들 마음 속에 자기들의 영광을 구하며 자신들을 높이려는 정욕이 사무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 23:3-7)

둘째는, 천국 문을 가로막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들도 막는 것입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들을 그릇 가르쳐 더 악한 사람들을 만들어 지옥 자식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겉으로는 거룩한 예식과 종교적인 행사를 하면서 그 마음은 탐욕과 방탕과 음란이 가득한 죄입니다.

다섯째는, 자신들의 권력과 명예를 지키느라 서로 미워하며 질투하면서 선한 주의 종들 및 주의 백성에게 큰 해를 끼치는 죄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위선을 지적하며 분노하셨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대단히 의롭고 거룩하고 예절 바르고 종교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멸시하는 오만과 교만과 위선의 죄를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몬은 영적인 죄, 곧 교만과 위선과 자기 의에 빠진 악한 사람이요, 한편 죄인 창녀는 육신적인 간음 죄를 지은 사람으로서, 이 둘이 예수님 앞에서 뚜렷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또한 시몬의 죄와 창녀의 죄는 공개적으로 드러난 죄와 인간의 깊은 마음 속에 숨겨진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의 큰 죄는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는 일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은 남들의 노출된 작은 죄들에 대하여 분노하며 흥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대단히 의롭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숨겨진 큰 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온갖 음란과 미움과 탐욕과 교만의 죄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티를 지적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음흉한 숨겨진 죄들과 속내는 다 탄로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주님은 비유를 통하여 둘 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비가 필요한 죄인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몬이든 죄인 여인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서 탕감을 받아야 하는 죄인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보고 내 행동을 어떻게 보느냐가 아닙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내 인생과 내 행동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죄란 하나님이 나의 인생과 행동과 동기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죄로 선언하는 것! 하나님께서 죄라고 선언하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을 모르면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모르면 죄를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과 내 행동과 내 마음을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더 나아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8 (보혜사)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 16:8-11)

이처럼 죄라는 것은 내가 죄를 지었다고 느끼느냐 느끼지 않느냐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곧, 어떤 행위가 죄냐 아니냐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내가 나의 행동에 대하여 선악을 결정한다면, 이는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는 가장 무서운 교만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현재 동성연애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는 삶의 또 다른 형태요, 문화이지 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낙태(abortion)에 대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인권이지 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동성연애와 낙태는 죄가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죄라고 정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은 어떤 것에 대해 죄로 여기지 않을 지라도 그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시기 때문인 것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랍니다. 즉,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죄라고 동의하면 죄가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죄가 아니라고 하면 죄가 아니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31).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죄는 죄이지 죄가 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은 인류 속에서 가장 심각한 죄를 문둥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의 특징은 감각이 사라지는 병입니다. 그래서 아픔이 없습니다. 이는 무엇을 암시합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심각한 죄는 죄에 대하여 아픔이 없는 화인 맞은 양심인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아프지 않고 태평한 사람! 그가 바로 영적인 문둥병 환자입니다.

지금 바리새인 시몬은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 없는 의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그는 더욱 사악하고 위선된 흉악한 문둥병 죄인일 뿐입니다.

반면 창녀는 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자신은 용서 받을 수 없는 큰 죄인이라고 느끼며 주의 자비와 용서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용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본문의 죄 많은 여인은 복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한 후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의지하였습니다. 그 믿음의 표현이 오늘 그리스도를 찾아내어 감사와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적 문둥병인 시몬의 죄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진실하기에 우리의 영혼의 거울이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내 자신의 영적인 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간절히 구하는 가운데 마침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유일한 용서의 길인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그분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7:25, 8:1-2)

그 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죄사함을 체험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하여지고, 그 후로는 더욱 자신의 죄를 혐오하게 되면서 하나님을 무한하게 감사하며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려줍니다.

[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5-6, 8, 10-11)

즉,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차고 넘치게 되는 때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근거로 우리 마음에 구원에 대한 감사로 차고 넘치게 하시는 때입니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될 때 우리 마음은 즐거움과 감사와 주를 향한 사랑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여인이 향유로 예수님의 발과 머리에 붓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 여인이 자신의 죄사함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알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의 죄 사함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값없이 오는 죄사함이지만 그 용서 자체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흘려짐으로 인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사랑하시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죗값을 대신 치르게 하신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녀 대신에 십자가의 저주를 감당하실 것을 알고 그 고마움이 너무 커서 자신의 전 재산인 가장 값비싼 향유를 가져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치르신 그 보혈의 대가를 아십니까? 주의 보혈 외에는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할 것이 이 우주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주의 보혈은 이 우주 전체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의 생명 수천 수만보다 더 무한하게 귀한 것이 그리스도의 보혈인 사실을 아십니까? 그 보혈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 보혈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다 잃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어둠과 완전한 궁핍, 그리고 영원한 고통을 받고 사는 삶에서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보혈! 심지어 그 보혈 덕분에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아십니까?

주의 죽으심의 그 대가를 정말 알고 있습니까?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치르신 그 피로 인한 죄 사함을 안다면, 우리는 이 여인처럼 ‘아멘’하며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되 우리에게 가장 지극히 귀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보답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처럼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한 죄사함에 감사하여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께 바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죄사함을 경험한 이 여인의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을 보기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그 사랑을 표현하느라, 자신을 발길질 할지도 모르는 시몬의 집에 무작정 들어가는 여인의 용기를 보기 바랍니다. 그녀가 원수들 앞에서 공적으로 보인 주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녀는 주 예수님을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를 업신여기며 미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또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위선된 종교인들 앞에서 과감히 여러 번 반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향유를 붓고, 주님 발에 입을 맞추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의 향유를 닦아냄으로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시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무가치한 것을 주께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제일 소중한 것을 드렸습니다. 왜요? 죄 사함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경배는 가장 값비싼 경배였습니다. 이는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다 갚을 수 없는 그 은혜!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 여인의 갸륵한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이 선포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오늘 주의 죄사함을 체험한 이 여인은 진정한 자유를 맛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죄의 무거운 멍에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와 권력과 인기가 있어도 누릴 수 없는 영원하고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주의 평강을 맛보았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사랑하는 여러분!

의로움이 없이는 평강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야만 깨끗한 영혼이 될 수 있고 깨끗하여진 그 영혼에 하늘의 평강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들에게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이 있다면 하늘의 평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임하는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평강은 자기 죄를 인정하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필요로 하는 겸손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반면에 시몬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났지만 참된 자유와 평강을 얻지 못했습니다. 시몬은 도끼 눈을 뜨고 남의 티를 찾기에 바쁜 인생이었지만 그에게는 사랑도, 평강도, 생명도 없었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는 자신의 죄를 몰랐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죄 사함의 은혜와 사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창녀 여인은 예수님를 떠나면서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 여인은 주님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죄를 볼 줄 알면서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한 시몬은 변화되지 못하였고 죄의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게 될 때는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변화되었습니까? 그 변화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혹시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영적 문둥병에 걸린 바리새인, 위선자, 교만한 사람은 아닙니까? 아니면 이 여인처럼 주님의 용서를 체험하면서 한 없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주의 사랑을 보답하려고 버둥거립니까?

여러분은 시몬입니까? 아니면 죄를 인정하고 주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겸허한 죄인입니까? 정말 오늘도 주님의 사랑을 영혼 깊은 곳에서 경험합니까? 참으로 내 자신은 주님의 은혜가 항상 필요한 죄인임을 잘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을 의지하며 믿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온 맘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며 사랑하십니까?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기 전, 가장 뚜렷한 현상 하나는 감사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 그리고 주어진 모든 상황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이후 인간은 감사를 잃었습니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 참된 신자들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근거한 것이기에 영원한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또한 우리의 심령에 부으신 성령으로 인한 것이기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무한한 사랑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무한히 깊고 많은 죄가 다 사하여졌도다. 이에 너의 감사함과 사랑함이 무한히 깊고 많으며 무궁함이라”(참조, 눅 7:47).

오늘 이 감사의 주일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 예수께 나아와 우리를 무한히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이제 주안에서 변화되고 앞으로 평생 죄사함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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