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1, §.9는 하나님 삼중일성(하나님의 삼위일체성-박순경, 김재진)이다. 우리는 Dreieinigkeit에는 ‘위(位)’라는 어휘를 부착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르트가 § 9.2에서 위(位, Person)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존재양식(Seinsweise)으로 전환을 추구하고 있다.

§ 9.1의 Die Einheit in der Dreiheit과 § 9.2의 Die Dreiheit in der Einheit이다. 박순경 교수는 “삼위성에서 있어서의 통일성”, “유일성에서 있어서의 삼위성”으로 번역했다. 영역(英譯)에서는 Unity in Trinity, Trinity in Unity라고 번역했는데 Einheit를 Trinity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Einheit(통일, 단일성, 결합)는 삼위일체(Trinity)로 번역하면 부당하다. 영역(英譯)에서 Dreieinigkeit를 Triunity라는 어휘를 창안해서 대치시켰다. Einheit는 칸트가 사용한 어휘이고, Dreiheit는 헤겔이 사용한 어휘이다. 헤겔은 정반합(正反合(三肢性), These, Antithese, Synthese(Dreiheit)을 구도화시켰다. 바르트가 제언한 Die Einheit in der Dreiheit와 Die Dreiheit in der Einheit는 칸트와 헤겔을 접합시키는 시도로 상상해 본다.

바르트는 § 9.2 들어가는 첫 문장이 repetitio aeternitatis in aeternitate라는 개념으로 시작했다(KD I/1., 373, GG 458, CD 353).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뒷 문장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바르트는 “영원성 안에서 영원성의 반복”을 § 9.1에서 제시했다(KD I/1., 369, GG 453, CD 350). 바르트는 in se(그 자체 안)에서 인격의 구별이 아니라 신성의 반복(repetitio)을 주장했다. 바르트는 “영원의 반복”이라는 교리를 자기 구조로 세웠다. 바르트는 아버지, 아들, 영의 반복이 시간에서 일어난 것(repetitio aeternitatis in tempore)이 아니라 영원에서 있는 것이라는 것으로 제언한 것이다. 상당히 영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시간에서 기록된 성경의 “아버지, 아들, 성령”과 “고대교회의 결정인 삼위일체”에 대한 수정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Die Trinitätslehre als Lehre von der repetitio aeternitatis in aeternitate bestätigt die Erkenntnis der Einheit Gottes(KD I/1., 373, GG 458, CD 353)라는 문장은 바르트가 “영원의 반복”이라는 교리로 삼위일체론을 재정립하여 ‘통일신(Einheit Gottes)’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 박순경 역, 영원성에서의 영원성의 반복에 관한 교의로서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유일성 인식을 확립한다: 박순경은 Einheit을 ‘통일성’과 ‘유일성’으로 번역했다). 바르트는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이단은 잘못된 전제(false presuppostition)에서 결정되었다고 제시했다. 그러한 예는 유대교, 이슬람교이다.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가 규정한 유일신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를 동일화시키는 구도를 제언하고 있다. 바르트의 신학으로 종교다원주의가 체계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종교다원주의는 유일신교에 근거한 것인데, 삼위일체를 파괴하고 세우는 것이다.

바르트의 매력은 “한 하나님(Gott ist Einer)”을 강조하는 것이다(KD I/1., 374, GG 459, CD 354). 바르트는 인격을 개별성과 고립성 그리고 구별 등으로 이해했고, 그것이 한 분 하나님의 기반 위에 세우려는 고초로 태어난 것이 삼위일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고초를 해소시키고 완전하게 하나님의 안에 세 존재양식으로 구도화시켰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세 존재양식은 영원에서 반복되는 개념이다. 고대교회는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신비(mysterium trinitatis)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바르트는 신비를 해체시키고 명료한 한 하나님으로 체계화시켰다.

바르트는 ‘인격’이라는 개념을 회피했다고 제시했다(Wir haben den Begriff "Person" im Leitsatz unseres Paragraphen vermieden, KD I/1., 374, GG 460, CD 355). 바르트는 인격의 개념 이해와 역사를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제시했다. 한 하나님은 인격이 아닌 주권이해로 전환시켰다(eine Gott nicht nur als unpersönliche Herrschaft, KD I/1., 378, GG 464, CD 358). 그리고 ‘인격’에서 ‘존재양식(Seinsweise)’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바르트는 존재양식에 대해서 긴 설명을 한다. 그리고 바르트는 존재양식을 셋(drei Seinsweise)으로 제시했다(KD I/1., 380, GG 467, CD 361). 바르트는 “계시, 계시자, 계시되어 있음”, “거룩성, 자비, 사랑”, “수난일, 부활일, 오순절”, “창조자, 화해자, 구원자” 등을 "삼성(三性) 신(die Dreiheit des Gotttes)"으로 제시했다(KD I/1., 381, GG 468-469, CD 361-362). 바르트는 존재양식의 상이성(die Verschiedenheit der Seinweisen)을 alius-alius-alius(다른-또 다른-또 다른)로 제시했다(KD I/1., 382, GG 470, CD 362). 계시자는 계시가 아니고 계시되어 있음이 아닌 셋이지만 하나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 다름도 결국 영원에서 일어난 반복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적인 이해가 아니다. 바르트는 paterrnitas, filiatio, processio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quid tres)에 대해서 통일성에서 삼지성으로 전환했다. 바르트는 힐라리우스의 Non sermoni res, sed rei sermo subiectus est(실체가 말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실체에 종속된다) 문장을 기본 명제(Grundsatz)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안셀무스가 Tres nescio quid라는 답으로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바르트는 § 9.2에서 하나님의 삼위 인격에 대해서 거부하고, 세 다른(alius-alius-alius) 존재양식(Seinsweise, Dreiheit)의 통일성(Einheit)을 구도화시켰다. 그것이 § 9.3에서 제시하는 Die Dreieinigkeit(삼중일신, Triunity, /박순경-삼위일체성)이다. 우리는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1을 읽으면서, 바르트가 삼위일체를 거부하고 자기가 이해하는 신 이해(Gott ist Einer)를 구도화시키고 있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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