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대형교회의 번성과 파산에 춤추는 세태

수년 전 교회성장의 첨병 역할을 하던 수정교회의 파산을 두고 말들이 많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가든 그로브에 세워진 수정교회는 세계의 많은 목회자들에게 필수 견학 코스로 인기가 높았다. 아름답고 든든한 이 교회의 예배는 늘 황금시간대에 방영되곤 했다. 조커(Joker)와 같은 로버트 슐러 목사의 웃음이 거슬렸지만 그보다 그의 상업적 복음 남용에 분개했던 적이 그 얼마였던가?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는 성장을 꿈꾸던 젊은 목회자들에게는 우상 같은 존재였다. 대형교회의 파산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호사가들은 입방아를 연신 찧어댔지만 그 교회를 목표삼고 슐러 목사의 목회 방법을 벤치마킹하려던 목사들은 침묵하거나 덩달아 비판의 도끼질을 했다. 한 마디로 비겁하고 의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의 편이 되어서 한두 마디 변명 정도는 할 줄 알았다. 한 때는 그의 목회 방법을 배우려 안간 힘을 쓰던 이들이 한 목소리로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세태에 씁쓸함을 느낄 뿐이었다.

영적전국시대(靈的戰國時代), 대형교회와 스타목사

목회자라고 별 수 있을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약삭빠른 처세는 실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고 교회성장의 왕국을 견결히 이어가려던 성장학파들은 일시적으로 주춤거렸으나 이내 전열을 가다듬고 성장 지향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영적 은사를 다변화하여 검증되지 않은 영적 현상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을 영입했다. 일부 지역에서의 부흥 현상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이 주춤한 이 시점에서 성장을 최고선으로 간주하던 이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옛 시대의 영광을 재현시키려 한다. 영적 탁월함을 이룬 발군의 지도자가 뚜렷하지 않은 요즈음은 왕이 없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사사 시대를 방불케 한다. 실로 영적 전국(戰國) 시대에 다름 아니다.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일평생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리라는 결의를 다지며 올곧게 살아가는 이가 몇이나 될까? 평생 50명이나 100명 혹은 200명을 목회 상한선으로 정하고 그 이상이 되면 과감히 분립개척하거나 더 작은 교회로 임지를 옮기지 않으면 아예 개척에 나서려 한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묶인(?) 목회자가 있기는 한 것일까? 누구나 한두 번쯤은 대형교회를 꿈꾸면서 스타목사가 되었을 때 지금 비판의 대상이 된 목회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어쩌면 대형교회 목회자가 되었을 때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우리의 속성을 아시고 주님께서 너와 나를 스타목사의 반열에 들지 않게 하셨을 것이다.

복음의 동지들이 치열한 라이벌로

대형교회 목회를 한 1년간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무개념 목회자가 어찌 없겠는가? 열심이 부족한가 하여 열심의 불을 부지런히 댕기고 기도가 부족하지는 않나 하여 금식기도, 철야기도, 21일, 40일, 100일, 명칭이나 의미 있는 숫자에 맞추어 뜨겁게 기도한다. 학식이 부족한가 하여 세미나란 세미나는 무조건 참석하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박사 학위인가 하여 학위 취득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그래야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꿈의 무대로 진입할까 해서다.

신학교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형과 아우로 여기고 촘촘히 우정을 다녀왔던 복음의 동지들이 살벌한 목회현장에서 죽고 살기를 거듭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모질게 변해버린다. 피 터지는 목회현장에서 저질러지는 싸움도 선의의 경쟁이란 이름 밑에 감춰지고 원수가 아닌 라이벌이란 미명 아래 다투다 보면 응당 소수의 이긴 자와 다수의 진 자로 대별된다. 소위 급(級)에 따라 노는 물이 다르고 형성하는 동아리도 차이가 난다. 관계도 서먹해지면서 만나도 예전 같지 않고 묘한 분위기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한 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목회의 목적이 지독한 가난과 무시를 벗기 위함인가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중형교회, 대형교회 목회자들로부터 무시를 당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말로, 행동으로, 선교비 지원으로, 기타 인격적 모독에 가까운 형태에 섞여 가슴에 한이 되고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들을 자주 겪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차곡차곡 쌓기까지 했다. 목회자가 목회자에 의해 당한 수모나 한의 깊이를 재는 경연대회 같은 것을 해보면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쏟아질 것이다. 특히 선배에게서 당하는 수모보다 더 지독한 냉대는 동기나 후배에게서 온다. 살의를 느낄 때도 바로 그런 경우다.

직접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그래도 작은 교회 목회자의 영성이 아직은 순박하고 가난하기 때문이다. 살려면 죽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은 한을 풀고 덧난 상처를 아물게 하고자 작은 교회 탈출을 시도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작은 교회를 키운다. 숫자를 늘리고 빚을 내서라도 건축을 한다. 개척 후 3년 내지 5년, 부임 후에도 비슷한 시기 내에 결판을 내려 이를 악문다. 젊고 열심 있고 실력 있고 열매까지 있으니 입소문을 통해 널리 퍼져간다. 이미지 관리도 철저히 한다. 메스미디어를 활용하고 집회 일정도 잡고 쌈박한 책도 출간한다.

스타 목사의 지름길, 성공 노하우와 철저한 인맥 관리

성공하는 기업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섭렵하여 성공 노하우를 100% 적용한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를 상당부분 인용하거나 가감 없이 전한다. 예배면 예배, 셀이면 셀, 선교면 선교, 심지어 교회건물 양식까지 본받는다.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기까지 스타목사의 그늘에 안주한다. 그의 곁에서 부지런히 다양한 포즈로 사진에도 얼굴을 내민다. 영향력 있는 선배목사와의 교감도 늘리고 철따라 인사 올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인사치레 정도가 아니라 통 큰 선물도 냅다 안긴다. 엄청난 부담감을 안겨주어 결정적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웬만한 교회 청빙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A급, B급 분류 대상에 포함시켜 눈여겨 봐둔 교회가 있다. 물망에 오른 교회에서 연락이 오기를 마냥 기다린다. 물론 기도의 형태를 빌린다. 보다 적극적인 목회자는 대형교회로 나아갈 발판이 될 만한 중형교회로 가기 위해 노회(老獪)한 정치목사의 수족이 되어 눈도장도 찍으려 안달이다. 기적이 일어나면 중형교회의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대형교회로 낙착된다. 이런 경우는 예정을 뛰어넘는 예정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일도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이 작전에만 몰입한다. 사역은 나중에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신학교를 살리는 한국 출신 신학생

미국연합감리교(UMC)의 보고에 따르면 목회자의 85%가 일생 동안 200명 미만의 교회에서 사역하다 죽는다. 아마 개중의 반 이상이 50-100명의 사역자들일 것이다. 한국도 약간의 비율 차이가 있다 해도 모르면 모를까 대동소이할 것이다. 대부분의 신학교는 이미 폐쇄 조치되었거나 명문 신학교들마저 양질의 신학생 선발권을 포기한 지 오래다. 지원자를 모두 받아들여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미국신학교를 살리는 것이 한국 출신의 신학생이라는 이야기는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미국 신학교의 현실도 걱정이지만 한국의 무수한 신학교도 모자라 유학 원정까지 오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유학해서 조국신학교의 강단에서 후진들을 양성해야 할 일군들은 반드시 있고 필요하다. 그런데 외국 신학교 졸업장이나 박사학위가 필요해서 몰려든 자들이 대세를 이룬다면 이는 쇠락의 징조다. 대표적인 미 서부 지역의 감리교 명문인 클레어몬트 신학교가 이슬람 계통인 링컨 클레어몬트 종합대학교의 단과 대학에 흡수된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다. 미국 기독교의 몰락을 알리는 서곡이 아닐까 저어된다. UMC면 상당히 큰 교단인데 이런 결정을 내린 지도부의 면면이 궁금하다.

에베소 교회, 유럽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의 오버랩

한국은 교회나 재정 능력에 있어 상승가도에 있지만 대형교회가 대형마켓으로 바뀌고 명문신학교가 이슬람대학에 편입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20년, 30년 후의 판도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낙관론을 펼치는 이들도 많지만 비관적인 징조들이 교회안팎으로 너무 많다. 엉뚱한 방향으로 통일이 되면 정치 체제도 바뀌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이루어질 테니 그런 끔찍한 상황은 상상만 해도 소름끼친다. 상상이 가능의 현실로 바뀌지 않게 하려면 교회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일반인들에게 잃었던 최소한의 신용을 회복하고 대 사회 신인도를 어떡하든지 되찾아야 한다. 그들이 빼앗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내버려 사라진 것들이기에 에베소 교회처럼 어디에서 잃었는지를 생각하고 지켜 회개해야 한다. 실로 뼈를 깎는 자성의 노고가 없이는 굳게 닫힌 대다수 영혼들의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방대한 재산 다툼과 세습의 악습 그리고 한기총 같은 유명무실한 대조직의 보스 자리를 향한 이전투구는 조국교회의 뿌리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이단의 행태와 하나 다를 게 없다. 저들은 합법적으로 이단노릇하고 있다. 우상이 달리 우상이던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라 바울은 힘주어 강변하지 않았던가! 이단이 달리 이단인가!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벗어나 힘을 추구하고 욕심을 키우는 것이 이단이 아니겠는가!

하나님 나라를 팔아 부동산을 사들이는 세태

지난 10월 9일 MBC <그것이 알고 싶다>는 명성교회의 비자금 800억과 관련된 수개월 간의 취재 결과를 방영했다. 세습의 망령에 한국 교계가 휘청거리는 동안 초대형 교회의 밀실에서 자행된 있을 수 없는 행각에 많은 이들이 할 말을 잃었다. 단순히 충격이란 말 한 마디로 얘기할 수 없는 추악한 범죄행위였다. 교회 소유로 확인된 전국에 문어발처럼 뻗친 부동산의 현황은 자신을 버려 교회를 세우시고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원하려는 보통 교회들의 사역에 정면 배치되는 사악함이었다. 감춰진 재산은 환원하고 세습은 철폐하고 우상화 사업을 회개하고 진정으로 처음 행위를 가져야 주님 앞에 할 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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