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06) - 욥기(9)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인생이 어찌 하나님 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욥4:17).

욥기는 행복보다는 고난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도 많이 보게 된다. 인생이란 좋은 날도 있지만 궂은 날도 많이 보며 고통을 겪게 된다. 인생에 겪는 고난을 보면서 그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고 삶을 맞이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욥은 고난을 멋있게 해석하며 인내하였다. 욥은 자신의 엄청난 고난을 맞아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는 것을 알고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다. 고난과 축복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신앙을 가졌던 것이다.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하니하니라”(욥1:21, 2:10).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도 하시고 또 그 복을 거둬 가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 주권(主權)을 인정하는 욥의 모습을 본다. 이 세상의 모든 일과 인간의 일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보며 욥은 고백하고 있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욥24:4).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빌닷)”(욥8:6).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욥15:14). 인간의 한계를 알고 절대적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보고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로우며 욥은 하나님을 찾고 정직하게 살아야 가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고난과 행복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사실을, 욥기는 말하고 있다. 욥기는 고난과 탄식, 항의와 항변,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 점점 그 주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욥이 그 주권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이야기이다. 이 대화의 전개를 통해 그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혜의 요소들이 욥기 이야기에서 발견되지만(2:10), 지혜전승이 지배적인 것은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있다. 개별적인 담화에서 그러한 지혜를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고, 전도서에서 긴 연설형태로서 보다 큰 범위로 나타난다. 또 다른 공식적 구성형태로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법적인 체계에 친숙한 형태로 나타난다(40:8).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욥13:3). 또 시편으로 알려진다. 탄식시편은 밀접하게 연관되며(욥3;29장), 찬양 주제(모티브)로 표현된다(욥38장).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욥9:4).

하나님의 주권아래 인간의 불행과 행복이 벌어지는데 인간이 생각하는 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원인과 결과가 이어지는 인과론과 같이 주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전도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욥기의 대화 저자는 행동과 결과, 덕과 행복, 잘못과 고통 사이의 연관을 의심한다.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전7:15). 욥은 이러한 인과론에 대한 인생관에 대하여 도전한다. 적어도 자신의 경우에는 최소한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壽,장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21:7). 권선징악의 측면이나 신명기 정통신학에 따르면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복을 많이 받고 나쁜 사람은 저주받는 것이 전통적인 신앙관이다. 이것은 대체로 인과론적으로 그 현상이 벌어지는데 때로는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욥의 친구들은 그러한 전통신학의 입장에서 뚜렷하게 엄격한 방식으로 말하며 전제한다(욥8:6이하, 20장).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4:6-7).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므로 그 귀에는 놀라운 소리가 들리고 그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의 기다림이 되느니라”(욥15:20-22). 결국 행한 대로 당한다는 것,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因果)법칙을 말한다. 욥의 친구들이나 우리 인생의 대부분의 경우가 다 이러한 생각 속에 이해되어지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욥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친구들은, 어떠한 인간도 완전히 의로운 자가 없고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무죄한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4:17; 15:14; 25:14). 이것은 욥이 그들과 함께 동의하는 유일한 점이다.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과 욥기가 대화나 주제(선과 고통)면에서는 유사하다. 수메리아 욥과 바빌론 욥에서 “내가 지혜의 주를 찬양하리라”-소위 바빌론의 신정정치나 바빌론 전도서와 유사하지만 전체의 구조나 신학적인 내용은 아주 다르다. 여호와 유일 신앙을 강조하고 독창적인 히브리적 사고의 구조에서 여호와 신앙을 나타내는 점에서는 독특하고 독창적이다. 시편 73편은 지혜 시편으로서 욥기와 아주 유사하다. 비록 지혜가 제공하는 대답이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편 73편이 아주 욥기와 가깝다. “볼찌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73:12-14, 17-19,28). 결국 무죄한 자들이 잘 되고 형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와 의인이 복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에게 보다 은혜로 열릴 것이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5:10-11).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