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병 목사의 산골마을 팡세 (5)

 

제7회 활천문학상 최우수상 수상(2018),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졸, 동대학원 졸, 독일 베텔신학대학원 수학, 현재 독일 보쿰대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독일 다름슈타트 중앙교회, 독일 이삭교회 담임목사 역임. 현 간동교회(강원도 화천) 담임목사

자기 자신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상태가 좋으면 다른 이에게 관용과 친절을 베풉니다. 다른 이가 나에게 실수한 것에 대해서도 쉽게 용납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줄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해가 되는 일을 겪어도 잘 극복해나가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잘 해준다는 것은 자기의 상태와 기분이 좋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하면 다른 사람의 실수가 용납됩니다.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럴 수 있겠지...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 저 사람의 실수는 본심은 아닐거야...” 마음이 넓어지니까 금방 이해하고, 화해하고, 관계가 화목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고 침체되고 짜증이 나면, 남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어? 저 사람 너무하는 거 아냐?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저 사람은 원래부터 저랬어...” 너무 큰 잘못으로 보입니다. 상대의 약점을 잡아내서 공격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기분이 나쁘면 다른 사람의 결점이 커 보이고, 타인의 인격 전부가 심각하게 왜곡돼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 약점, 그것을 ‘내가’ 바로잡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바로잡으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쏟아놓습니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니, 남의 이야기는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관계는 악화되고 담장은 높아져만 갑니다.

존귀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만드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마음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반대로 비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서 비참하게 만들어야 자기 기분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에서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을 존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신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시고, 처지를 이해하시고 적절한 치유와 응대를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난한 영혼을 받아들이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도 존귀하셨기 때문에 따르는 모든 믿는 자들을 존귀한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남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남을 섬기고 존중해주며,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쁨은 자신이 대접을 받는 것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답고 높은 차원의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자기 자신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도 마음을 활짝 열고, 웃고, 화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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