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목사의 인문학 산책 (2)

 

이상욱 목사│목민교회(인천) 담임, 호서대학교( Ph.D),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성경에 묘사된 고레스 왕

구약성경에서 전략에 탁월하였던 왕이 있었다. 이사야서 45장에 등장하는 고레스 왕이다. 고레스는 페르시아를 건국한 왕으로 33개국을 통합하여 통치하면서 이전의 다른 제국들과는 달리 선정을 베풀어 식민지의 백성들까지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존경을 표시하였던 탁월한 왕이다. 성경에서는 고레스 왕으로 나오지만, 역사에서는 키루스 대왕(The Great King Cyrus)으로 나온다.

성경은 고레스는 비록 이방인 왕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연단을 끝마치기 위하여 그를 택하시고 사용하여 포로귀환뿐만이 아니라, 성전건축까지도 다 허락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스 1:2). 그는 끝까지 싸우는 전사로서 일생을 살았으며, 또 한 번의 북방 원정 도중 전장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보고 영광스러운 승리의 죽음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어쨌든 고레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소명을 부여받아 그 사명을 신실하게 수행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묘사된다.

페르시아 제국 이전에 아시리아 제국과 바벨론 제국이 있었다. 아시리아 제국은 식민지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와 제국 안에 각 지역에서 흩어 놓아 서로 힘을 모으지 못하게 통제하며 노동력을 이용하였다. 반면에 바벨론 제국은 식민지 백성들을 강가와 같은 곳에 캠프를 설치하고 모여 살면서 제국 안의 노동력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근본 발상부터가 달랐다. BC 538년 그가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를 건국하던 원년에 제국 안에 포로로 끌려와 사는 식민지 출신의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여 자신들 고유의 종교와 문화를 지킬 수 있게 허용하면서 경제적으로 번영케 하여 세금을 거둬들여 제국 전체의 경제를 일으키는 전략을 활용하였다.

페르시아의 그런 정책으로 바벨론으로 잡혀 와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감격에 넘쳐 부른 찬양이 시편 126편이다. 고레스 곧 키루스 대왕이 지금에까지 역사학자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받는 것은 그의 이런 제국경영의 전략 때문이다.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키루스 대왕의 지도력과 인격, 전략과 경륜이 어느 정도로 높이 평가받느냐면 미국에서 역사학 교수들이 일 년에 한 차례씩 모이는 역사학 대회에서 역사에 등장한 숱한 지도자 중에 누가 가장 훌륭한 지도자였느냐는 설문조사에서 키루스 대왕이 1등으로 선정되었던 인물이다.

『키로파에디아』 크세노폰 저, 이은종 역, 주영사, 2012.7.11

 

군주의 거울-키루스의 교육

『키로파에디아』는 크세노폰의 대표작으로 페르시아를 대제국으로 만든 키루스 대왕의 리더십에 관해 고찰한 책이다. 크세노폰은 약 2400년 전 그리스 사람으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문하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다. 그는 플라톤과 함께 소크라테스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플라톤의 사상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크세노폰이 살았던 당시의 그리스는 폴리스 국가들이 사분오열로 찢어져 내전을 반복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자신의 조국 아테네가 현자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내리는 것에 충격을 받아 이를 해결하고자 각자의 방법을 제시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철학과 관념론으로 계승했고,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계승했다. 그런 크세노폰이 그리스의 바람직한 정치상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바로 『키로파에디아』라는 작품이다.

이 책은 8권으로 이뤄졌으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권으로 이편에서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어린 시절과 그가 받았던 교육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한다. 2권에서부터 7권까지는 그가 전장으로 나가 대제국을 건설하는 모습을 꼼꼼하게 설명한다. 키루스는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고 가서 반란을 일으키려는 메디아의 속국 아르메니아를 굴복시키고, 후방을 안정시켰다. 뒤이어 메디아의 주적인 아시리아 연합군을 맞이하여, 승리를 거둔다.

키루스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아시리아 본토로 침공한다. 결국, 키루스는 아시리아 연합군을 궤멸하고 그들의 수도인 바빌론을 함락시켰다. 이런 대외 원정이 7권까지의 내용이다. 그 뒤 8권은 대제국을 이룬 키루스가 어떻게 나라를 유지했는지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리고 키루스가 죽은 뒤, 페르시아라는 대제국이 타락하는 모습을 기록하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크세노폰은 이 책에서 키루스라는 인물이 약소국인 페르시아를 어떻게 강대국으로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키로파에디아』의 핵심은 바로 키루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책 제목 『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에서 볼 수 있듯, 키루스 대왕의 첫 번째 성공 요인은 바로 올바른 제도적 교육이다. 당시 페르시아 교육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첫 번째로 법치에 근거한 통치, 두 번째로 물질적 정신적 탐욕으로부터 절제, 세 번째로 신체적 운동을 중시한 교육 등이다. 키루스는 이러한 페르시아 교육을 깊이 있게 이해했고, 이러한 교육은 그가 죽는 날까지 철저하게 지켜졌다.

두 번째의 성공 요인은, 바로 선과 악을 융통 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이다. 세 번째 요인은 바로 평등이다. 성경에서는 노예가 된 유대 민족을 해방하고 그들의 종교를 존중했던 키루스의 모습을 고레스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현재 UN 본부 건물 복도에는 키루스 시대의 유물로 알려진 '키루스의 실린더'라는 유물의 모조품이 전시됐는데, 이는 인권 평등을 의미한 최초의 기록물임을 상징한다. 그 외에 부하에 대한 아낌없는 물질적 보상, 성공 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등 성공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두 제자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은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행복한 삶은 결국 바람직한 정치에서 찾았고, 그 정치를 수행하려는 인물은 철학을 알아야 하고, 지혜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크세노폰은 현실 속에서 바람직한 정치적 모델을 찾았으며, 그가 바로 페르시아 제국을 이룬 키루스 대왕이었다.

플라톤은 크세노폰과 동문수학한 사이이며,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같이 받은 사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달랐는데, 일단 플라톤은 부유한 귀족의 출신이었지만 크세노폰은 기사 계급의 출신이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관념적, 철학적으로 받아들였지만,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 크세노폰은 이러한 스승의 문제 인식을 올바른 정치와 올바른 리더십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아포리아 시대: 군주의 거울 키루스

고전은 살아남은 책이 고전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가 왜 2400년의 인고의 세월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졌는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은 길 없음을 뜻하는 아포리아(Aporia)를 3번 겪는다.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의 전쟁,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그것이다.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기사 출신으로서 자신의 전투 경험을 토대로 탁월한 지도자의 모습을 담은 『키로파에디아』를 썼다.

물론 『키로파에디아』는 허구에 입각한 책이지만, 중요한 것은 책이 허구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책을 통해 저자인 크세노폰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키로파에디아』의 핵심이었다. 크세노폰은 이 저작을 통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실현하지 못했던 물음을 풀어냈다. 『키로파에디아』는 그런 크세노폰의 대표작이며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제시했던 물음에 대해 크세노폰의 경험론적 대답이었다.

크세노폰은 플라톤과 다르게 현실론에 따라 스승의 문제를 해석했고, 그러한 해답을 역사적 인물인 '키루스 대왕'에게서 찾았다. 『키로파에디아』는 실제의 역사에서 찾은 모범적인 정치인의 사례와 그러한 정치인을 좀 더 완벽하게 다듬어낸 작가의 허구가 결합하여 탄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크세노폰이 보기에 키루스 대왕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는 키루스 대왕의 삶을 왜곡하고 그리스적인 색채를 가미한 철학을 섞어 자신이 생각했을 때 가장 완벽한 정치적 인물로 묘사했다.

키루스는 다른 민족에게 배타적인 유대인들조차 그를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로 불렀다. 유대인들은 특유의 선민사상으로 고대 근동에 할거하던 여러 나라의 왕을 악마시하고 폄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도, 아시리아의 산헤립도 모두 이방의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의 왕일 뿐이었다. 표면적으로 그도 이교도들의 왕이었으나 ‘여호와께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의 사자였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집단 포로 신세로 전락했을 때, 그들을 해방시켜 주고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도록 하였기 때문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책 『군주론』에서 “행운 또는 타인의 호의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에 의해서 군주가 된 인물들을 살펴볼 때, 나는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테세우스 등과 같은 인물들이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신화나 종교적인 인물을 제외하고 역사성이 확신한 인물 가운데서 키루스가 유일하다.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도 키루스를 아포리아(Aporia) 시대를 극복한 왕 중의 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탁월한 리더십의 탁월함은 무엇일까? 한 세대 후에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양진영(兩陣營) 세계에 한 진정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리더십이 그를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 구원자’로 헬라인들에게는 ‘왕중의 왕’으로 칭송받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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