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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인봉한 책을 펼친 그리스도(31) 변질된 교회들

계시록 8:8-12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본문을 문자대로 읽으면, 형용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일어날 것만 같다. 그래서 문자대로 해석하는 이단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은 주께서 풀어주신 그 비밀을 모른 채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만 바라보며 자기들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할 수만 있으면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평안을 빼앗아가느라 여념이 없다. 즉 쓴 쑥을 먹이며 물대신 피를 마시게 하고 있다. 그러나 계시록은 자연계의 멸망도, 지구의 멸망도 아닌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의 멸망과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다시 새하늘과 새땅인 믿는 자들을 성전으로 만드시는 것을 기록한 책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8절에서 불붙는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다는 것은 멸망의 산이며 불탄 산인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며, 솔로몬이 후궁들을 위해 우상의 산당을 만들어서 멸망산으로 부른 감람산 그리고 산이 의미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바다 즉 세상에 던져졌다는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그 당시 세상을 지배하는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것을 말씀한 것이며, 그 말씀대로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불에 타서 전소되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1장~25장까지 예루살렘 성전이 어떻게 무너질지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이 계시록에서 요한이 다시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엉뚱하게 가르치고 있다. 즉 쓴 쑥을 먹이고 있다.

스바냐 3:1-4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으로 변한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찐저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습 3:1-4)

바벨론으로 변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주께서는 스바냐 3장 7-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주께서는 주님의 질투(열심)의 불에 예루살렘이 소멸될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그래서 마태복음 21장에서는 예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는데,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단순히 나무를 저주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예루살렘 성과 이스라엘이 이렇게 무화과 나무처럼 저주를 받아 마를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무화과 나무의 저주에 이어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1장 21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수많은 이들이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는 말씀 뒤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에 자기 앞을 가로막는 산을 옮겨달라는 기도를 많이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산'은 '예루살렘 성전'을 말한다. 즉 앞에서 언급했듯이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은 것처럼 산이 바다에 던져진다는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이 바다인 세상에 던져져 짓밟히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즉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인 로마에 던져졌으며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처럼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산 위에 올라가야지, 우리 스스로 인간들과 손을 잡고 바벨탑을 쌓으면 반드시 주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그 탑을 불탄 산과 같이 허물어뜨리고 우리가 손을 잡았던 모든 인맥들을 흩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멸망을 바라보며 역사의 사건으로 보지 말고 우리 각 사람의 옛 사람이 멸망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바벨탑과 같은 우리의 옛 사람을 멸망시키고 새 피조물로 만들기 위해 주께서 하시는 일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물이 피와 쑥이 되어 사람들을 죽임

8절에서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된다는 것은 애굽에 내린 첫번 째 재앙과 같다. 물이 피가 되면 결코 마실 수 없게 된다. 그런데 10절 이하를 보면,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여러 물샘에 떨어지자 그 물들의 3분의 1이 쑥이 되고 그 물들이 써서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스바냐 3장에서 언급한 것 같이 예루살렘 성전이 거룩한 곳이 아니라 패역하고 더러운 곳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예루살렘이 생수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아닌 피로 변하고 또한 먹을 수 없는 쑥으로 변하여 사람들을 죽이는 장소가 되었다. 이는 과거에는 시온산이었으나 이제는 불탄 산이 된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회와 소위 성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성경에서 물은 생수의 근원인 진리의 말씀을 뜻하는데, 물이 피가 되고 쑥이 되어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 변질된 것을 의미한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데, 예수라는 이름은 있으나 변질된 예수, 왜곡된 예수를 가르치는 교회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골짜기로 끌고가서 사람들의 영혼을 서서히 피폐케 하여 죽이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씀하시며, 피를 먹는 자는 반드시 그 생명을 그에게서 찾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피와 기름은 생명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생명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결코 피와 기름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피를 먹어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보다 내가 먹고 싶고, 내가 갖고 싶은 탐욕 때문이다. 인간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싶어하는 탐심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창 9:4-5)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행 15:29)

"피채 먹지 말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으나 목사들의 모임에서 육회가 버젓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고, 선지가 들어간 해장국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겨 먹고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사도들이 예루살렘 회의를 하면서 "피를 먹지 말라"고 공포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에게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수께서 모든 것을 먹으라고 했기 때문에 마음껏 맛있게 먹으라고 거짓말을 지어내어 가르치며 쓴 쑥을 먹이고 있다.

"...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5)

"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계 22:18)

특히 횃불은 하나님을 상징하는데, 마귀는 언제나 하나님을 모방한다(창 15:17). 그래서 횃불이 아니라 횃불같은 큰 별로 묘사하고 있다. 다니엘 12장3절에서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늘의 별처럼 빛난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큰 별이 떨어졌다는 것은 이사야 14장12절과 누가복음 10장1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그리 땅에 찍혔는고?"(사 14: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

"...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성경에서 말씀하는 쑥은 우리가 먹는 식용 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쑥은 근동 지방에서 나는 들풀로 성경에서는 고통과 슬픔을 나타내며, 다음과 같이 쓰였다.

"대저 음녀의 입술을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לַעֲנָה wormwood)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잠 5:3-4)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לַעֲנָה wormwood)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렘 23:15)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날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לַעֲנָה wormwood)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멸할찌라도 평안하리라 할까 염려함이라"(신 29:18-19)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לַעֲנָה wormwood)으로 취하게 하셨으며"(애 3:15)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애 3:19)

"공법을 인진(לַעֲנָה wormwood)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암 5:7)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לַעֲנָה wormwood)으로 변하며"(암 6:12)

이 말씀들을 통해 바알을 섬기는 것이 쑥을 먹는 것이며, '쑥'은 '음녀'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음녀는 타락한 교회를 말하며, 잠언은 타락한 종교인 음녀와 그리스도인 지혜를 대조하며 설명한다. 음녀는 처음엔 꿀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달콤해 보이지만, 그 결국은 쑥처럼 쓴데 그 쓴 것에 취해 죽게 된다. 그런데도 수많은 교회가 음녀가 들고있는 금잔 앞에 줄줄이 사탕처럼 줄을 서서 음행을 즐기고 있다.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 73:27)

▶ 깨진 배: 변질된 진리로 영혼을 죽이는 교회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나오는 배는 구약에서는 노아의 방주이며, 신약에서는 풍랑을 만난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구원하신 예수께서 함께 하셨던 배이다. 그래서 배의 역할은 구원이며, 구원의 역할을 하는 배는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를 상징한다. 그런데 구원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회들을 주께서는 깨뜨리신다. 즉 그리스도가 머리가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어떤 것을 중심으로 모인 교회와 기독교 단체를 주께서 깨뜨리신다.

한 예로,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을 때에 계절상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부는 계절이라서 바울이 권면을 했으나, 백부장 율리오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떠났다가 결국 파선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의 말보다 전문가나 또는 자신과 더 가까운 사람의 말을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성과 지식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들을 귀가 없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행 27:21-22) 

오늘날 교회나 소위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조직 중에는 이처럼 기도하며 결정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도하는 교회나 조직이 아니라 전문가들이나 자기에게 유익을 줄 것 같은 이들의 말을 듣고 지극히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며 또는 감정에 이끌린 교회나 조직이 되어 자기 만족에 취해있는 깨진 교회와 조직이 너무나 많다. 특히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주여, 주여"하지만, 정작 그들의 내면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깨진 조직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많은 교회가 대형교회를 추구하며 교회 안에서 제자들을 양육하는 것보다 선교를 많이 해서 교회 이름을 내고 싶어한다. 또 제자훈련을 한다고 하는 교회들을 보면, 진짜 주님의 제자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담임 목사의 제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그래서 교주처럼 변질된 목사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그들이 꾸며놓은 강도의 소굴 속에서 사고팔며 죽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 전파되면 되는데,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교회의 이름과 목사의 이름과 선교회 이름을 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것이 바로 바알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은 좁고 협착해서 사람들이 가기 싫은 길을 가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그 길을 가면서 이왕이면 풍요롭게 살고싶어한다. 

부유하게 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욥은 족장이면서 대부였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자는 물질적인 부자가 아닌, 자기의 의를 쌓은 자를 부자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좁은 길보다 풍족한 삶과 칭송을 받는 것을 더 추구하기 때문에 돈과 권력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 풍요의 신 바알을 함께 섬기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죄와 똑같은 현실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님을 우상과 똑같은 레벨에서 함께 섬기는 것이다.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면서 우리의 자녀와 배우자와 사업과 건강 등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는 않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한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고전 13장은 말씀하고 있으나, 사랑을 지식으로만 알고 영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들은 기복신앙과 인본주의를 추구하며 깨진 배가 된 채 수많은 영혼들에게 피와 쑥을 먹이며 죽이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피와 쑥을 먹이면서 그것이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알려주는 주의 신실한 종들을 죽이려고 달려든다는 것이다.

▶ 해와 달과 별이 침을 당해 어두워

12절에서는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서 어두워진다고 한다. 성경에서 해와 달과 별 역시 사람을 뜻한다. 특히 다니엘 12장 3절에서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라고 말씀하듯 지혜의 신이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여 별과 같이 빛나게 되어있다. 그런데 하늘의 광명체들이 어두워진다고 한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 37:9)

이 부분은 애굽에 내려진 흑암 재앙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알 것은, 애굽인들에게 내린 흑암 재앙 중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전혀 어두워지는 재앙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시므로 온 세상이 어두워진다고 할지라도 그분의 자녀인 우리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재앙은 구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광명체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성전 안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말한다. 성전 안에 있는 등대의 "불"(light)을 히브리어로 "마오르"(מָאוֹר)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창세기 1장 14-16절에 나오는 "광명"들에 쓰였으며 신약에서는 성전 안의 "그릇"으로 쓰였다. 창세기는 해와 달이라는 말이 없다. "하늘의 광명(light)", "두 큰 광명과 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성전 안의 등대의 불(מָאוֹר)이 어두워진다는 말로 성전 안이 어두워진다는 뜻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는 우리가 성전이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성전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소멸된다는 말이다. 성전인 우리, 광명이 아니라 광명체(마오르)인 우리는 빛을 비추어야 마땅하지만, 성령을 소멸하며 성령을 훼방하면서 점점 어두워지기 때문에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만 다니면, 또는 집사·권사·장로·목사·교사의 직분만 갖고있으면 성전이라고 착각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이 말씀은 경고장을 던지는 것이다.

주께서는 스스로 성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빛이 다 꺼져서 캄캄하게 되도록 주께서 하신다고 말씀한다. 교회가 크게 부흥되어 교회 이름과 목사 이름을 날리지만, 이성 문제나 돈 문제를 비롯하여 종교다원주의, 동성결혼, 베리칩, 휴거 등 엉뚱한 것들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도덕과 윤리 문제에 있어서도 세상과 전혀 다를 바 없거나 더 추악한 두 얼굴을 소유한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주소이다. 또 세상의 것들을 전도와 선교라는 이름으로 잔뜩 교회 안과 성전인 우리 안에 들여놓으면서도 전혀 거리낌 없이 주의 일을 한다고 한다. 이러한 교회들과 목사들과 교인들이 바로 깨진 배이며 해와 달과 별이 침을 당해 어두워졌다고 하는 것이다.

[적용]

불탄 산인 예루살렘 성전 그리고 성전인 우리가 바다인 세상에 던져지자 물이 피와 쓴 쑥으로 변하고 그 안에 있던 피조물들이 죽고 배가 깨지는 일들이 일어난다. 빛의 자녀인 우리가 빛을 비추지 못하고 어두워져 세상과 타협하게 되는 순간, 우리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세상까지 어둡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령을 모신 우리 각 사람이 빛을 비추지 못하고 천국을 이루지 못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은 교회가 변질되고 우리 주변이 어두워져 천국 대신 지옥을 이루며 살게 된다.

그 동안 우리의 신앙생활을 살펴보자. 나와 우리 교회는 어떤 말씀을 전하며 들었는가? 또 어떤 기도를 했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찾는 기도와 말씀을 했는가? 아니면,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한 즉 우리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와 말씀만을 해왔는가? 즉 명목상으로는 주의 나라를 구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나의 평안과 우리 가정과 우리 직장과 우리 교회의 행복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닌가? 내가 죽더라도 그리고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와 민족이 희생되고 고난을 받을지라도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했는지, 아니면 절대로 죽지 않게 해달라고 이기적으로 구했는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묵상해보자.

주님께서는 교회들에게 쑥을 먹이며 물이 피로 변하게 하시며 배들이 깨지게 하시며 해와 달과 별이 침을 당해 어두워지게 하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보다 나와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의 의를 구하며 사는 이들은 이미 쑥을 먹은 것이며 생수이신 그리스도가 아닌 먹으면 죽는 피를 마시면서 그 피에 취해서 더욱 성도들의 피를 흘리고 있는 깨진 배 즉 구원의 방주가 아닌 마귀의 수용소에서 가짜 진리가 생명의 양식이라고 우기며 살고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한다. 

지금 나와 우리 가족은 깨진 배인 음녀 교회를 다니며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가?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세상과 얼마나 타협하고 있는가? 주님의 거룩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전도와 선교라는 명목으로 세상의 것들이 성전인 우리의 마음 속과 성전들이 모인 교회 안에 자유롭게 들락날락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마음 속의 빛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주변을 밝힐만한 큰 빛인가, 아니면 바람만 불면 꺼질 것 같은 약한 촛불인가? 내 마음 속은 세상을 빛으로 밝게 만들만큼 성령충만한가, 아니면 어두워져서 주변 사람들까지 어둡게 만들고 있는가?

마오르 즉 광명체인 우리, 성전인 우리 안에는 오직 성령님만 모셔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으로만 충만해야 한다. 그러할 때에 우리가 부인되어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며 그리스도의 영광만이 우리의 언행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나는 지금 성령충만을 위해 쉬지않고 기도하고 있는가?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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