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6-10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배경은 거짓 복음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바울이 주의 복음으로 개척한 갈라디아 교회는 든든히 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루살렘으로부터 왔다는 유명한 유대 율법자들이 갈라디아 교회를 찾아와서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것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할례도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바울을 ‘자칭 사도’라고 부르며 그의 사도권을 부정했습니다. 이때 어처구니 없게도 바울이 피와 생명을 다해 세운 갈라디아 교인들은 ‘신속히’ 참 복음을 버리고 거짓 복음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거짓 복음으로부터 교회를 바로 잡고 거짓 복음을 대적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는 서두부터 이단을 향해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복음의 변증과 수호에 집중합니다.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갈 1:6-9; 2:4-5)

이러한 가운데 바울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이 얼마나 귀한지 쉬지 않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를 마무리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귀중히 여기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의 교제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 의해 비롯되는 것을 알려줍니다. 즉, 그들은 말씀을 배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이에 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당부합니다. 여기서 “모든 좋은 것”은 사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좋은 물건이나 음식을 나누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부분들을 포함하지만 “모든 좋은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공감을 하고 기도해 주고 모든 일에 협력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2-13)
고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심고 거두는 원칙을 언급하는데, 저는 6절과 7절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확신은 복음을 가르치는 자를 귀히 여기는 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귀히 여기는 것이며, 이는 곧바로 그를 세우신 그리스도를 귀히 여기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를 세우신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은혜 가운데 복음을 허락하신 하나님으로부터 한량없는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동시에 복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복음으로 인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여기서 바울은 신앙의 삶을 농경의 원칙으로 비유합니다. 즉, 무엇을 심든 같은 종류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 언급되었습니다. 
[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20)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눅 6:43-44)

야고보 사도 역시 동일한 원칙을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약 3:12). 

이제 이 자연적인 원칙을 선포한 바울은 구체적으로 영적인 원칙을 언급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여기서 거둔다는 것은 추수를 의미합니다. 추수의 날에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눅 3:17)입니다. 불신자들은 오직 썩을 것을 심기 때문에 오직 썩어질 것만 거두게 되어 완전한 허무와 함께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썩은 열매는 허무가 되는 반면, 믿음으로 성령을 위하여 심은 것은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수확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즉, 썩지 아니할 복음의 씨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신자들은 그 날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정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신앙 생활 가운데 자기 영광을 위해 심은 것들은 썩을 것으로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들은 영원한 영광의 열매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를 보니 바울의 말씀과 유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7-8, 10-11)

주의 강림의 때는 추수의 때요 거두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추수의 때까지는 이른 비도 있고 늦은 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의 때도 있고, 열매를 거둘 수 없는 추운 겨울도 있을 것입니다. 즉, 추수의 때는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는 거두는 때인데 그 때까지는 종종 이른 비와 늦은 비도 있지만 가뭄과 추위, 그리고 여러 기생충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추수의 때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비결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며 수고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며 기다립니까? 그렇습니다. 추수의 때의 열매입니다. 사실 추수의 때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을 위해 자기 자신이 한 알의 씨가 되었던 자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아무튼 추수의 날은 하나님도 기다리시며,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는 자들 역시 추수의 날을 기다립니다. 그 이유는 그 날에 하나님이 박장대소하시며 마지막 추수의 대 수확을 거두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은 신자들 역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추수의 분깃을 받으며 한없이 즐거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2). 

갈라디아서의 배경에서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6절과 연관되면서 복음과 관련합니다. 그 당시 거짓 복음을 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짓 복음을 심는 이유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심는 행위로 인하여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이며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추수의 날에 그들의 수고는 썩어질 것으로 드러나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참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자들은 성령으로 뿌린 자들이기에 추수의 날에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수고가 그렇게 엄청난 영광의 열매를 가져올지 상상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한편, 9절은 우리의 신앙 생활 가운데 복음과 관련한 순수한 수고를 ‘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0절은 ‘착한 일’이라고 더하고 있습니다. 선과 착한 일은 모두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행과 착한 일은 추수의 날에 영원한 것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사실 추수의 날은 대추수의 날이지만 우리 주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심는 동안에도 작은 추수들을 허락하심으로 용기와 위로를 더하십니다. 그래서 20대에 성령을 위하여 심은 것들이 40대에 추수의 열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추수들은 영원한 영광으로 이어질 대추수의 날을 바라보게 할 뿐입니다. 대추수의 날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다 모으시고 그들이 행한 대로 정산하시고 각각에게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가 영원한 영광으로 선포되는 날이 될 것이며, 모든 주의 백성이 영원한 열매를 붙들고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구원 받은 자들에게 ‘선과 착한 일을 행하라’고 당부합니다. 그 이유는 자연의 법칙처럼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이요, 이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 영생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은 우리의 심는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고 알려줍니다. 여기서 “업신여김”은 원어로 (미크테이리조)인데 “속이면서 조롱한다”라는 뜻입니다. 개역 한글은 ‘만홀’이라는 번역했는데 ‘업신여김’보다 훨씬 뛰어난 번역입니다. 즉, 우리가 아무리 간교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숨은 동기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 뜻은 하나님은 억만분지일이라도 그릇된 정보나 동기에 의해 속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동기와 행위에 따라 완전하고 공의롭게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할례로 복음을 교란시키는 자들은 자신들을 대단히 의롭게 보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곁길로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깊은 동기에는 “자기의 육체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은 가장 거룩한 것으로 가장 그럴 듯하게 기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저주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2-4)

한편,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하고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은 복음을 따르는 삶으로서 신자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의 계명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 바울이 말하는 ‘선을 행함’이며, ‘모든 이에게 행하는 착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심는 자만이 오직 심은 것에 대해 기대할 자격이 있습니다. 만일 심지 않고 추수를 기다리는 자가 있다면 그는 지독히 어리석은 자이거나 정신병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화과를 심고 포도 열매를 기대하는 자 역시 지독히 어리석거나 정신 병자일 것입니다. 우리가 대추수를 믿고 바라본다면 오직 성령을 따라 심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영원한 풍성한 열매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앞에서 인용한 야고보서 5장 7-11절 및 성경 전체의 심음과 거둠의 원칙을 보면, 성령을 위하여 심은 선행 및 착한 행실에 반드시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 어떤 과실도 씨를 심자마자 열매를 내는 일이 없습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야 하고 땅으로부터 영양분을 받아야 하고 하늘로부터 비를 받아야 합니다. 땅에 심겨진 씨가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에는 어두운 밤도 있고 차가운 겨울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땅에 떨어진 씨를 알아주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씨를 뿌리는 때는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는 때입니다. 열매가 난다는 보장이 없어 보이는 때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때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관리하고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때가 되면 싹이 나기 시작하고 줄기가 자라나더니 어느덧 열매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바울이 알려준 심음과 거둠의 원칙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모든 참된 성도들에게 무한한 확신과 위로와 소망을 제시합니다. 그 이유는 말라 죽을 듯한 땅에서도 생명의 씨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 그 날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아무리 무더운 여름을 지나도 심겨진 씨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기 바랍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기 바랍니다. 선행과 착한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것입니다. 또한 주의 복음과 관련하여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지 않고 오직 성령을 위하여 심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역사는 더욱 어두워질 가능성이 짙습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도 지금 상태로 간다면 별로 소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믿는 것은 심음과 거둠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겨울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가장 무더운 여름에도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됩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열매는 맺게 하시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 대화를 나눌 대상이 없습니까? 온통 썩을 것을 위해 사는 사람들로 가득합니까?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심음과 거둠의 원칙을 기억하고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열심히 복음의 씨를 심기 바랍니다. 삶으로, 고백으로, 입으로 복음을 전하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열매를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병든 영혼들이 강건하여질 것이며 나갔던 자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이는 심고 거두는 원칙은 결코 변할 수 없는 영적인 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때는 인류의 역사가 가장 악한 때였습니다. 더러움과 어둠이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시무시한 변태들과 잔인함과 교만함과 불의가 가득한 때였습니다. 인간들이 이룬 세상 제국이 온 세상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며 살해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든 종교가 도리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며 오직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때였습니다. 참된 신자들은 극소수로서 지극히 외롭고 힘든 때를 지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장 어두운 때에 우리 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으셨습니다. 즉, 성령을 위해 심은 영원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씨가 땅에 떨어져 죽을 때는 제자들이 다 도망쳤고, 그 씨는 영원히 망하여 사라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씨가 땅에 떨어진 후 사흘 후부터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이요, 그 이후는 성령으로 인한 쉬지 않는 작은 추수들의 열매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 역시 동일하게 성령을 위하여 심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도 영생의 열매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인하여 영생의 열매는 한없이 많아졌습니다. 그러한 열매가 지금까지 미쳤으니 바로 이 시대의 저와 여러분도 그 열매에 해당합니다. 

이제 대추수의 때가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의 때입니다.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계 14:14-16)

지금 호흡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성령을 위하여 심기 바랍니다. 아무런 열매가 맺혀질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심기 바랍니다. 거짓과 위선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진리의 복음과 함께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삶은 땅에 심긴 씨앗이 되어 때가 이르매 열매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 심음이 얼마나 많은 열매를 가져올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열심히 심기 바랍니다. 눈물로 심기 바라며 인내로 심기 바랍니다. 그러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우리 주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시 51:6).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

그러므로 간사함이 없는 가운데 성령을 위하여 심기 바랍니다. 이러한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골 3:1-8)

둘째는, 추수의 날에 주어질 영원한 영광을 늘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4, 17-18)

그러나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그들에게 멋지게 보여 인기를 끌려는 자들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로서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는 씨를 뿌리는 자는 그것으로 인해 썩어질 것을 거둘 것입니다. 또한 썩어질 것을 위해 심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미워하십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 16:15). 

셋째는, 불에 타지 않을 것을 심으며 살아갑니다. 고린도전서 3장을 보면, 신자들의 삶은 두 가지 종류의 행동을 쌓는다고 알려줍니다. 하나는 불에 탈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불에 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에 타지 않은 것만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과 열매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리라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3-15, 11-12)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움을 받은 우리의 인생은 그 위에 어떤 종류의 행위로 쌓을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넷째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선이나 착한 일을 할 때 억지로 하지 않고 오직 자원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즉, 복음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합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을 것이라](고전 9:16-17)

또한 성령을 위하여 심고 쌓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법에 따라야 합니다. 이는 씨앗을 심는 과정 역시 정직하며 진실하며 거룩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딤후 2:5, 7)

다섯째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선행과 착한 일을 할 때 주의할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9절과 10절입니다.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

즉, 낙심할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낙심은 원어의 뜻으로 보면, 힘들어서 지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어떻든 의욕을 잃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열매가 빨리 보이지 않아서 의욕을 잃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9절은 낙심과 반대 개념으로 ‘포기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내입니다. 그리하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고 합니다. 즉, 열매는 때가 차야 거둘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낙심하게 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든, 또는 상황이 어떠하든 그냥 쉬지 말고 계속 심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약하고 죄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쉬지 않고 심기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해결은 십자가로부터 흘러 넘치는 은혜의 강을 마시는 것이며, 하늘로부터 오는 하늘의 떡을 늘 먹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태를 성경은 성령 충만이라고 하고,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는 우리는 낙심이나 포기는커녕 쉬지 않고 성령을 위하여 심을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님과 사랑에 빠지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계속 교통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인내하며 소망하며 기다리기 바랍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성령을 위하여 심기 바랍니다. 그러면 때가 이르매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갖게 될 것이며 그 열매로 인하여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의 신앙의 생활 속에서도 작은 추수들을 거두게 되면서 대추수의 영광을 미리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예수님의 심판대에서 있을 주님과의 상봉을 미리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령을 위하여 심고 있습니까? 혹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는 삶은 아닙니까? 참으로 썩은 열매를 거두는 그 비참과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심는 수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의 한계가 있고 자원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 시간과 자원으로 무엇을 위해 심겠습니까? 그 자원과 시간을 썩을 것을 심는데 사용하지 않기 바랍니다. 쓸데없이 헛수고의 비참을 맛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대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을 심기 바랍니다. 사람은 선을 심지 않으면 반드시 썩을 것을 심기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선을 심기 바랍니다.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배우고 좋은 영향을 받기 바랍니다. 쉬지 말고 성경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 자신을 심고 채우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성령을 위하여 선을 심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 예수님과 사도의 음성을 마음에 새기기를 바랍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 14: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 1:8-9)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는 짚으로 세워진 교회들과 신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돈과 세상을 추구하는 신자들이며 교회들입니다. 그들은 썩을 것을 위하여 심으면서 자칭 신자라고 하고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그러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푸라기 같은 신자들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교회이거나 신자입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 심지어 다이아몬드 보석과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또한 보석과 같은 성도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수천 수만의 지푸라기보다 고귀하고 가치가 있는 존재들입니다. 여러분이 심는 모든 것들이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 되어 심는 우리들이, 심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 늦기 전에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하나님과 교통하시면서 날마다 순간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을 행하기 바랍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기 바랍니다. 그리고 심은 후에는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때가 차면 열매를 주실 줄 믿고, 계속 심는 일에 힘쓰고 관리하고 물을 주면서 대추수의 때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 오늘의 이 설교에 감사하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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