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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무관심이 빚어낸 지옥의 길가슴과 입까지 한 뼘 정도이다. 이 한 뼘의 고백이 영원한 인생의 갈림길로 정해진다.

영원한 것

이태리 밀라노 대성당에는 문이 셋이 있다. 첫째 문은 아취로 되어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있고, 둘째 문은 십자가형인데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고 새겨졌고,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참으로 중요한 문구들이라고 본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이나 고통은 다 잠깐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다. 영원한 삶은 죽음 뒤에 따라올 이야기이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고, 죽음 뒤에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요한 핵심은 죽음 뒤에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어진다. 천국으로 들어간 인생은 상관이 없다. 지옥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문제이다. 지옥의 심판을 받은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형벌을 받고 지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옥과 천국으로 한 번 정해지고 나면 그것이 영원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에 기록된 지옥의 모습

성경에 대표적인 지옥과 천국의 이야기로 고전중에 고전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누가복음 16장) 이야기가 있다. 도대체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옥에 들어간 부자가 지옥의 중간 단계인 음부에 들어가서 경험한 내용을 아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지옥은 고통당하는 곳이며, 지옥은 불꽃가운데서 고민하는 곳이며,지옥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물방울 정도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지옥은 기억하는 곳이다. 자신의 삶을 형편없이 망가뜨리며 살았던 짧은 인생을 후회하며 고통가운데 사는 곳이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희망의 출구가 없다. 한번 지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는 곳’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 협력원장(춘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저서: 충성된일꾼되어가기 등 다수.

지옥체험: 신성종목사

충현교회 신성종 원로 목사님이 은퇴 후 8일간 지옥과 천국을 가서 본 것을 간증한 내용들이유튜브에 있다. 먼저 지옥을 갔는데, "지옥문으로 들어가는데 견딜 수 없는 냄새가 진동했고, 지옥문에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다 저주를 받은 자니, 모든 희망이 없고, 이를 갈며 슬퍼하는자뿐이다”고 기록되었다. 지옥에는 물이 없고, 손을 굽힐 수 없고, 뼈만 앙상한 말기암환자 같았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고, 아주 고독하고 괴로운 장소였고, 지옥에 가보니, 스님도 성자도 석가모니도 공자도 들어와 있고, 남을 미워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 사기꾼, 음행, 마약, 부모를 버린자, 유괴범, 살인자, 자살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천국에 가보니, 첫 번째 자리에는 바울과 모세와 순교한 제자들이 있었다. 둘째 자리에는 전도 제일 많이 한 사람, 선교 제일 많이 한 사람이 두 번째 줄에 있었다고 한다. 본인이 그런대로 큰 교회 담임을 하고, 총신대학교 학장도 하고, 책도 80권 정도 쓰고, 한국에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모든 감투는 다했는데, 자기는 천국에서 꽤나 좋은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주님께서는 말하기를 ‘모든 영광을 네가 다 받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지옥과 천국을 갔다 오고 나서 첫째자리에는 못 않더라도, 둘째 자리에는 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선교하며 오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간증하였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무엇을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갖는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더 많이 선교하고, 전도하고, 구제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을 본다.

변화산기도원 입구

무관심의 독초

그러면 왜 부자는 고통 받는 음부에 들어갔을까? 그의 삶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영원한 지옥으로 갔을까? (1)부자가 음부에 간 것은 영적인 일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누리기 바뻐 하나님의 일에 철저하게 관심이 없었다. 하루하루 즐기며 살았다. 이 삶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 성경에 보니,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다. 한 마디로 고급옷으로 휘감고 살면서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는 것이 문제이다. 주님은 비유를 통해서 한 단어를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부자가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는 것이다. 왜 이것이 부자의 삶에서 문제가 되겠는가? 적어도 히브리인들은 매일뿐만 아니라, 안식일(주일)과 월삭(매달 1일)에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또한 1년에 3번의 절기인 유월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을 엄수해야 한다. 그런데 부자는 매일(날마다) 잔치를 벌이고 호화롭게 친구들과 세월을 보냈다. 부자는 방탕한 생활로 인해 지옥에 간 것이다. 영적인 일에 대해서 아주 무관심했다. 그 무관심이 그를 지옥으로 떨어지게 한 것이다.

(2)부자의 죄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는 죄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철저한 무관심이 부자의 죄이다. 노블리스(명예) 오빌리즈(의무)를 실천하지 않았다. 명예를 얻었으면 의무를 다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부자는 자기 집 앞에 병든 거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도와주지 않았다. 철저히 외면하고 모른 척 했다. 나누어줌과 봉사가 없었다.

(3)부자의 결정적 잘못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모세와 선지자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부자의 주변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성경이 무엇인지 알고 가르치는 선지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철저하게 그들을 외면했다.

부자의 철저한 무관심과 회개 없는 삶이 그를 지옥에 가게 한 것이다. 부자는 하나님을 반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의 죄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였다. 부자는 모세와 선지자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들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핍박하지도 않았고 그를 모욕주지도 않았다. 다만 부자의 죄는 나사로의 필요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나사로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것이다. 철저한 무관심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무관심은 큰 죄이다. 무관심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파괴하는 가장 이기적인 독초이다. 무관심이란 독초를 극복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왕으로 영접할 때 독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변화산 기도원 소 예배당

◐파스칼의 '팡세'

파스칼은 프랑스인이며 수학자, 물리학자, 종교사상가이며 천재이다. 어느날 파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세느강에서 마차 바퀴가 부딪치면서 마치 밑에 깔려 겨우 몸을 빼내서 살아났다. 그때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면서 ‘죽음앞에서 내가 천재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죽음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깊은 고통에 빠져 있을 때, 누나가 예수그리스도를 전했다. 파스칼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이렇게 고백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 세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다. 이 공허는 주님께서 찾아오기 전에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고백을 남겼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이후 일생동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변증서를 쓰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이 유명한 파스칼의 변증서인 팡세(불어로 ‘고찰’, ‘생각’의 복수형)이다.

파스칼의 유명한 내기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도박을 아주 좋아한다. 도박은 확률게임이다. 확률이 높은 곳에 배팅을 한다. 도박 이론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손해가 없음을 증명했다. 내기 이론은 아주 간단하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죽었는데, 천국 진짜 있었다. 그러면 내 인생은 대박인 것이다. 그런데 막상 죽어보니 천국이 없었다. 손해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죽어보니 천국이 있었다. 그러면 그 인생은 완전한 쪽박인 샘이다. 그런데 죽었더니 천국이 없었다 아무런 손해가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연장전도 다시 돌아갈 수 도 없다. 어느 순간 인생의 종말이 갑자기 찾아온다. 죽음이란 시간이 다가오면 연장전도 없고, 돌아갈 수 없는 다리에 놓이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쓸 수도 없다. 한 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때 후회의 눈물을 흘려도 때는 늦은 것이다.

지옥과 천국은 이 땅에서 결정된다. 죽으면 하나님의 은혜도, 긍휼도, 구원도, 회개도, 전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구원이란 관문을 누구에게는 동일하게 제시해주었다.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마음을 가슴이라고 한다. 가슴과 입술은 한 뼘 정도이다. 이 한 뼘의 고백이 영원한 인생의 갈림길로 정해진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며 원리이다. 이 원리를 무시하지 말라. 이땅에 즐거움과 누릴 쾌락과 욕망으로 인해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면 언젠가 예기치 않는 시간에 종말의 시간이 다가올 때 피눈물 나는 후회를 하게 된다. 깨어 있으라.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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