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숙 집사. 포항충진교회

얼마전 문화센터에서 만난 자칭 기독교인이 있었다. 그분과 같이 식사하다가 신앙에 관해 얘기하던 중 자기가 좋은 목사님을 소개할테니 그목사에게 배우면 크게 쓰임받을 것이라고 했다. 난 바르게 쓰임받길 원하지 크게 쓰임받는 것에 관심없다고 대답했다. 계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신천지 신도같다는 느낌이 와서 혹시 신천지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분은 펄쩍 뛰었지만 나중에 그가 신천지 신도임을 확인했다.

그후에 그분에게 신천지를 나오라고 권유했더니 욕설로 대응하여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 그들도 “크게 쓰임받게 해준다”는 세속적 방법으로 접근함을 알게 되었다. 소위 예언기도의 내용도 “너를 크게 들어 쓰리라”는 말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바르게 들어 쓰리라”라고 예언한다는 말은 못들었다.

인간은 크게 쓰임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과시적 쓰임이 아니라 바르게 쓰임 받아야함을 가르쳐 준다. 이름없이 빛도없이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결국은 신앙으로 승리하게 됨을 보여준다.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정말 크고 바르게 쓰임받았던 바울에게도 크게 쓰임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고 하셨다. 당시 바울은 크게 쓰임받는자로 보여지지도 않았지만 바울은 후대에 와서 진리를 위해 바르고 크게 쓰임받았음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성경은 세상적으로 높아지고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 남이 알아주지 않았지만 주님께 충성했던 바르게 쓰임받았던 분들의 이름이 군데군데 나와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당시 소수의 지지만 받았고 오히려 핍박받았지만 바르게 쓰임받았음을 우리는 알수 있다.

최근 명성교회나 사랑의교회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들을 보면서 크게 쓰임받은것 같으나 허망한 열매를 보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인정받는 자리에 있는 것이 바르게 쓰임받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교회 안에서 직분 등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오히려 세속적이고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큰 교회일수록 더욱 그러하기가 쉽다. 바르게 쓰임받는다는것은 결국 좁은 길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보다 외로운 길일지 모르나

우리는 큰교회로 크게 쓰임받음에 대한 허상에서 벗어나서 바른교회를 세워가고 바르게 쓰임받기를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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