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기 박사(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국방사부 부장)

김승기 박사는 지난주 11월 27일(화) 오후 충남 논산에 위치한 '육군훈련소'(소장 : 구제서 장군) 간부들 70여 명을 대상으로 약 2시간 초빙강연을 했다.

'대한국인 안중근 장군의 항일 독립전쟁'을 주제로 일본제국과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침탈, 안중근의 생애, 연해주 의병투쟁, 하얼빈 의거와 법정 투쟁을 살펴 본 후, 결론으로 안중근 장군의 항일독립전쟁의 의의, 사상과 정신, 교훈으로 마무리 지었다.

 안중근 장군님은 을사늑약(1905년) 체결 이후 국내에서 전 가산을 처분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시다,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1907년)되는 참상을 목격하시고, 무장 독립투쟁을 위해 연해주로 망명하셔서 의병이 되셨다. 1908년에는 연해주 의병단체(동의회) 창설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셨고, 국내진공작전에 우영장으로 참전하셨습니다. 여기서 큰 실패를 경험하시고 재기를 다짐하는 뜻으로 11명의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었다.

한국 침탈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인 이토 히로부미(초대 조선통감부 통감)가 하얼빈에서 러시아 재무대신과 회담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대동공보사, 동의회 등과 대책을 논의한 후 대한의군 특파독립대장으로 하얼빈에 파견되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셨다.

뤼순 법정에서는 일제의 한국 침략과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과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당당하게 주장하시며 법정투쟁을 펼치셨다.

안중근 장군님은 조국독립을 위해 위국헌신을 실천하셨으며, 국민에게 민족혼과 자주독립정신을 각인시키셨고,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서 힘쓰겠다는 유언을 남기신 영원한 '대한국인'이셨다.

그의 사상과 정신, 전략은 임시정부와 독립군, 광복군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국군창설에 기여하셨습니다. 이 공을 인정하여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으며, 오늘날 국민과 국군 장병의 귀감이 되고 있다.

유묵 '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은 그의 항일 독립운동 생애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친다.

육군훈련소는 대한청년들을 정예신병으로 만들어 육군에 보내는 강한 국군의 초석입니다. 정신교육을 강조하는 육군훈련소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되어 보람을 느낀다. 

김승기 박사(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국방사부 부장)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