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본 <양심적병역거부>

이상욱 목사│목민교회(인천) 담임, 호서대학교( Ph.D),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타데마(Lawrence Alma-Tadema, 1836~1912)그림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 주는 게 '전무(戰舞)'이다. 그림은 창과 방패를 든 전사들이 일사불란한 무용을 묘사하고 있다.

거대한 돌기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신전 안마당이나 경기장인 것 같다. 군대 위용을 감상하려는 시민들이 둘러서 있다. 앞뜰에는 나이나 풍모로 보아 원로원 인사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병사들의 동작을 유심이 바라보고 있다.

병사들은 한 사람인 것처럼 빈틈없이 동일한 동작을 보여 준다. 창을 머리 위로 치켜든 것으로 봐서 적의 화살 공격이나 마상 공격을 막는 동작인 것 같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언제든지 창을 던지거나 찌를 태세다. 마치 호랑이나 사자가 먹이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해 도약 직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다. 다리동작에 따라서 운동장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장면에 사실성을 더 해 준다.

Lawrence Alma-Tadema(1836~1912) 전무(The Pyrrhic Dance),1869

최근에는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와 이를 위한 대체복무 허용에 관련해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성경의 가르침을 액면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에서는 살인하지 말 것이며, 살인 하려는 마음도 품지 말라고 한다.

따라서 군사훈련은 살인 연습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격훈련이나 총검술 훈련이 살인 연습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격은 한 방에 머리나 심장을 맞추는 연습을 반복한다. 총검술 역시 총검이 향하는 방향이 심장이다.

대체 복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병역기피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든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양심이 종교적인 것으로 제한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악용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실상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감옥 형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된다고 요구한다. 그동안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2~ 3년 정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일반 군인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근무 강도가 높은 것을 지정하고 기간도 훨씬 길게 하는 쪽으로 대체복무를 검토하기도 했다.

징병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나라를 방어할 의무를 지우고 일을 실천하도록 하는 강제하는 제도이다. 일정 자격을 갖춘 국민에게 징병검사를 받게 하고 군대를 가 일정 기간 복무하도록 법으로 강제한다. 때문에 징병제는 필연적으로 종교적인 양심이나 정치적인 이념 문제와 충돌을 일으킨다.

<양심적병역거부>라는 단어에도 문제가 있다. 신앙의 양심에 따라 병역의무를 다하기도 한다.

일찍이 소로는 <시민의 불복종>이란 책에서 상비군은 정부의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상비군은 사회구성원 전체 이익보다는 정부 이익을 실현하고 유지하는 물리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또한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에서 인류사에서 전쟁이 확대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상비군 제도를 뽑았다. 그런 상비군은 결국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상비군은 항상 전쟁에 대비한 준비가 되어 있음으로써 다른 나라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다른 나라들과 끝도 없는 군비경쟁의 돌입하게 된다. 결국 군비의 과잉 지출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 보다는 오히려 단기간의 전쟁을 선택한다. 이로써 상비군 자체가 공격적 전쟁의 유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을 죽이도록 혹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고용 된다는 것은 인간을 타국에 손에 놀아난다는 단순한 기계나 도구로 간주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상비군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유지되어온 인류의 군대 형식인데 이를 없애자는 주장은 완전히 공상적인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상비군의 출현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대부분 18~19세기 근대국가 형성기에 만들어 졌다. 그 이전에는 전쟁 시기에 소집되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는 방식의 일시적인 군대였다

우리 역시 이제는 분단 상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론 상비군 강제징집 제도에 문제와 인간이 누려야 할 근본적인 자유의 문제를 연계해서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게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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