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목사의 인문학 산책 (4)

일리아스(원전으로 읽는 순수 고전 세계), 저자 호메로스, 역자 천병희, 출판숲

 

한 손에 『일리아스』를 한 손에 『성경』을

일반적으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의 진가를 잘 모른다. 이 책들은 알렉산더가 동방정벌할 때,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황금 상자에 넣어서 다니면서 전쟁지침서로 읽었다는 책이다. 『일리아스』는 신들에게 지배당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르네상스는 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들의 꼭두각시로 살다가 소모품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내 삶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독립선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서구인들의 뇌를 지배하는 책은 『성서』보다 『일리아스』가 더 근원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스 황금기의 3대 비극 작가 중의 하나로 추앙받는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비극 작품들이 모두 “호메로스 잔칫상의 빵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했고,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를 “시인들 가운데 최고이며 가장 신성한” 사람이라고 칭송한 것으로 보아 호메로스가 서구문명의 아버지임은 확실하다.

호메로스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 플라톤이다. 그를 시기했던 플라톤조차도 호메로스를 331번 언급했다. 플라톤만이 호메로스의 진정한 위대함을 맨 먼저 눈치를 챈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하라’라고 했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당시 사회의 음유시인들이 끼치는 해악을 염려해서였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호메로스가 죽고 40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리스인들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호메로스의 영향력을 알아차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호메로스(Homeros)는 누구인가?

호메로스는 시인도, 철학자도, 시인도 아니었다. 그는 기원전 8세기경에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노래로 구걸하던 가난하고 눈먼 가객(歌客)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호메로스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인이 아니고, 트로이전쟁에 관한 구전 이야기들을 노래하고 다니던 가객, 이른바 음유시인이었다. 또한, 그가 장님이기도 했다는 것은 그의 탁월함을 뜻하는 말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장님은 지혜로운 예언자로도 여겨졌기 때문이다.

눈먼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호메로스, 그는 대서사시 일리아스의 저자로 전해온다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 1948년~)은 호메로스가 없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배움의 장소랍시고 서 있기는 하지만, 뛰어난 미덕을 배울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없는 곳이라는 말이다. 호메로스는 서양 문명의 정신적 틀(시원적 사고)이다. 키토(H.D.F. Kitto)는 그의 저작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에서 호메로스의 위대성은 그의 작품들이 “그리스 문명의 본질을 이루는 모든 특성을 보유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서양 문명이라는 장구하고 도도한 강물을 이루어낸 ‘시원적 사고’들이 호메로스에서 흘러나왔고 보았다. 서구 사상, ‘생각의 도구’들이 바로 거기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해서

우리는 『일리아스』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 희랍신화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빼어난 미모를 가진 왕비 헬레네가 등장하면서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왕비를 유혹하여 달아난 사건에서 시작된 사건이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왜 그런 이야기를 전혀 다루지 않았을까? 희랍신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서사시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서사시는 글로 쓰인 것이 아니라 희랍사람들 앞에서 노래로 불리었던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희랍사람들은 신화의 내용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리아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이다. 그 외는 모두 삽화다. 「일리아드」는 총 24권, 대략 1만 5,000행으로 된 장대한 서사시다. 그런데 첫 행부터 단번에 작품의 주제를 선포하듯 드러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 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1권의 요약이자 이야기 전체의 핵심을 함축한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두에 제시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라는 주제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삽화들이 상호 간에 개연적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없이 잇달아 일어날 때”가 최악의 플롯이라고 했지만,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간결하고’, ‘정확하고’, ‘명료하고’, ‘구조적’이라고 규정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신적 틀’이 만들어진 하나의 형식이며 보편성을 추구하던 문명적 특징이다.

이 서사시는 9년 동안 일어난 벌어진 트로이아의 전쟁을 다룬 대서사시 가운데 단 50일 동안에 사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역병이 만연하던 9일, 올림포스의 신들이 아이티오페스 족의 잔치에 가 있던 12일,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목욕하던 12일, 헥트로에 화장을 위해 장작을 준비하던 9일을 빼고 나면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기간은 단 며칠로 압축된다.

책의 구성을 보면 『일리아스』는 모두 2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1, 2, 3권이 한 덩어리고 22, 23, 24권이 한 덩어리다. 1권과 24권, 2권과 23권, 3권과 22권은 내용상 대응 관계에 있다. 이걸 두고 학자들은 원환(圓環) 구성이라고 한다. 1권 제목이 ‘역병 아킬레우스의 분노’이고 24권 제목이 ‘몸값을 주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는다’라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해소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1권에는 인간인 아킬레우스에게 부탁하는 이야기가 있고, 24권에서는 신이 인간인 아킬레우스에게 부탁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서사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시작해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해소되는 것에서 끝난다 이렇게 동그란 원 안에서 서로 맞물리는 분노의 시작과 끝 사이에 서사시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안에는 9년 동안 벌어진 이야기가 다뤄주고 있는 셈이다.

 

트라이엄팬트 아킬레스는 트로이에서 헥터의 생명이 없는 몸을 끌고 갔다.

서양 사상의 시원-호메로스

호메로스는 생각의 보편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호메로스는 사물들에는 공통성(共通性)이 존재하고, 사건들에는 인과(因果)의 법칙이 있고, 세상은 어떤 법칙(法則)에 의해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한 최초의 서양인이다. 생각의 보편화를 시작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앙드레 보나르(Andre Bonnard)가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아킬레우스는 전쟁을 일삼는 부족에서 태어나 천성적으로 전투를 사랑하는 용맹스러운 전사, 즉 야만인으로 헥토르는 그에 못지않게 용감하지만, 문명인으로 보았다. 호메로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야만인지를 아킬레우스를 통해 보여주었고 헥토르를 이성적인 인간으로 그렸다고 말한다.

그는 호메로스가 아킬레우스가 아닌 헥토르를 선택했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보다 헥토르를 더 사랑했고 그리스인이 본받아야 할 보편적 인간상을 아킬레우스에서 헥토르로, 즉 야만에서 문명으로 옮기고 싶었고 트로이전쟁으로부터 700년 후에 나타난 아테네 시민에게서 헥토르의 냄새가 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호메로스는 한발 더 나아가 「오디세이아」에서 그는 지혜와 참을성, 그리고 용기를 통해 바다와 싸우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했다. 그럼으로써 수백 년 후에 페니키아인들을 물리치고 지중해의 주인이 될 그리스인들의 미래를 열었다.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다. 호메로스 이후 문학작품에는 아킬레우스, 헥토르, 오디세우스는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다시 태어나고 있다. 프랑스 작가 레몽 크노도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일리아드」이거나 「오디세이아」다.”라고 했다. 호메로스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에 가능한 그 일을 맡겼다. 왕 프리아모스는 ‘보편적인 아버지’로, 왕비 헤카베는 ‘보편적인 어머니’로, 아내 안드로마케(Andromache) 역시 지극히 보편적인 아내로만 그렸고 그들의 성품이나 취향은 전혀 묘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인물들의 ‘본질’과 ‘탁월함’만을 노래하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제거했다.

호메로스는 아레테(Arete) 즉 보편적 인간의 원형이자 인간성의 본질을 다루었다. 그럼으로써 호메로스의 인물들은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인간이면 누구나 마땅히 본받거나 물리쳐야 할 보편적인 인간의 원형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아레테’라 부르며 탐구한 인간성의 본질이자 탁월함이다. 그리스인들은 이 같은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암송하면서, 다름 아닌 인간적 미덕의 전형이자 극단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보편적 인간의 사고와 삶의 태도를 훈련받은 것이다. 한평생 그리스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에 관한 고전 탐구에 전념한 프랑스의 문헌학자 자클린 드 로미이(Jacqueline de Romilly)는 “아킬레우스보다 더 영웅적일 수 있으며, 누가 헥토르보다 의무를 잘 자각할 수 있겠는가? 어느 여인이 헬레네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며, 페넬로페보다 더 정숙할 수 있겠는가? 또 나우시카아보다 정겹고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호메로스가 이룬 업적은 무엇인가? 호메로스가 한 작업을 현대의 인지과학 측면에서 보면, 호메로스는 그의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신성함과 비속함, 위대함과 하찮음, 용감함과 비겁함, 고결함과 덧없음, 주인과 노예, 지혜와 우매, 정숙과 부정, 자긍(自矜)과 비루(飛樓) 등을 가장 전형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추상적 개념의 범주화를 교육한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현생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지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지혜를 전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종(種)을 ‘호모사피엔스 나란스(homo narrans)’ 즉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지혜의 원천인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간의 집단의 능력일 것이다. 호메로스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통해서 지혜를 전해주었다.

 

세계관의 충돌과 인생의 지침서

플라톤은 왜 ‘이상 국가’에서 시인들의 작품을 엄격히 검열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그 이름, 호메로스가 빠지면 아예 『국가』라는 저작이 성립하기도 어려울 만큼 시인의 시를 수백 번 인용하고서 정작 ‘시인들은 믿을 게 못 된다, 언제 사고 칠지 모르니 감시 잘하라’라며 시인을 의심한 플라톤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수백 년 동안 그리스의 아이들은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암송하면서 전설적 인물들의 언행을 통해 그리스인의 세계관을 배우며 자랐다. 호메로스가 그린 영웅들의 자질들을 계발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인의 교육 목표였다.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는 “호메로스의 작품은 모든 종류의 씨앗을 담고 있는 못자리와 같다. 사람들은 거기서 원하는 식물을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라고 말했다. 또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이렇게 말했다. “카이사르가 로마 군대에 준 그 막대한 금품도 호메로스가 인류에게 준 선물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교과서였다. 『일리아스』는 인간이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인생독본’이었다. ‘시가의 검열’을 제창한 플라톤의 심리 이면에는 호메로스의 꺼지지 않는 인기에 대한 불같은 질투심이 있지 않았을까?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흑해 북쪽 초원지대의 영웅주의와 지중해 동부의 중앙집권적인 도시문화의 충돌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두 서사시의 차이도 설명한다. 『일리아스』에서는 트로이에서 일어난 전쟁과 좌절과 궁극적으로는 화해를, 『오디세이아』에서는 유연성과 통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두 서사시는 두 세계의 충돌로 인해 확고부동한 원칙이 흔들렸을 때 이에 대해 응답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개인과 공동체, 국가와 영웅,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인생은 변함없이 무한한 가치를 지닌 그 무엇인가, 아니면 그저 찰나적이고 가망 없이 무가치한 것일 뿐인가?

호메로스의 시는 또한 밀려드는 비애감, 시련과 고통이라는 존재의 본질과 맞닥뜨린 자의 필사적인 고뇌 및 죽음과 마주한 자의 쓰라림이라는 정서적 추동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시는 무언가가 시작되는 시점에 관한 이야기며, 이처럼 곤경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을 향한 애잔한 마음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동력이다. 그런 점에서 호메로스는 고전기 아테네인들에게 일종의 지침서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위대한 남녀에 관한 이야기, 고결함이 위기에 빠진 이야기,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깊은 도전에 직면했을 때 해야만 하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다뤄졌다. 말하자면 호메로스는 도덕적 선택에 관한 하나의 백과사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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