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09) - 에스겔(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겔12:3).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시대에 활동하던 예언자이다. 에스겔은 유다에 임한 재앙의 의미와 포로시대에 갖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그는 성전 제사장이었던 경험을 통해 예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에스겔은 선지자 전통에 서서 상징적 행동을 하며 예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너 인자야 박석(레베나)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또 전철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성을 삼고 성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겔4:1-3). 에스겔은 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붙잡혀 갈 때 같이 1차 포로로 붙잡혀 간다. 이 메시지는 그 전 시기에 해당하며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고 결국 예루살렘 성이 멸망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을 쳐서 예언하라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찌라...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마광(磨光)되었도다”(겔21:2-9). 에스겔은 에스겔서의 저자일 뿐만 아니라 상징적 행동으로 예언하는 선지자로서, 선조 예언자 전통을 뒤좇아 가고 있다.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다른 성격의 예언자이지만 예언시대나 주제의 반복, 언어 등의 유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불균형성이 있다. 하지만 두 책은 쉽게 알 수 있는 저작의 성장 단계 등이 비슷하다. 익명의 에스겔 학파가 에스겔서의 자료를 모았고 해석하고 발전 시켰으며 새로운 형태를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계속 에스겔서를 썼다고 말할 수 있다(쉬미트). 에스겔은 그 당시 청중들에게 상징적 행동을 통해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인자야 너는 날짜 곧 오늘날을 기록하라 바벨론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에 핍근하였느니라 너는 이 패역한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한 가마를 걸라”(겔24:3). 전쟁의 참화가 심각함을 보여주느라 가마 속에 고기 덩이, 뼈, 피 등이 함께 섞여져서 삶기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한 심판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너의 더러운 중에 음란이 하나이라 내가 너를 정하게 하나 네가 정하여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정하여지지 아니하리라”(겔24:13).

마침내 포로지에 붙잡혀가서 희망 없이 절망 중에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데 마른 뼈 골짜기의 모습으로서 나타내 보인다. 시체가 다 썪어서 없어졌고 뼈들만이 우글거리는 현장에 비추어서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비참한 상황을 말하고 있다.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37:2-3).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고 힘줄이 생기고 군대가 형성되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무슨 상징적인 행동이며 말씀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37:11,14). 에스겔서의 자료층 분류에 있어서 1인칭 자료들이 초기의 전승 층자료로 볼 수 있다. “제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년 그 달 오일이라”(겔1:1-2;주전 593년경). 에스겔서의 편집시대가 널리 퍼져 분포되어 있다. 그래서 주전 573년 경, 20년 후의 시대적 상황을 뒤 부분에서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사년 정월 십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겔40:1; 주전 573년경). 이 시기는 학개와 스가랴서를 저작하였던 시대로 예측된다.

에스겔서는 학자들에게 저작의 신뢰에 있어서 의심하게 하는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게 한다. 특히 휄셔의 이론은 많은 의구심을 가져왔다. 시적인 본문과 산문적인 본문 사이에 차이점의 근거에 있어서 편집의 여러 단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써 환상과 에스겔 예언자의 시들은 예언서 형성의 핵으로서만 제공된다고 본다. 그래서 에스겔서 12장 본문과 같이 예언자의 상징적 행동은 중심적 구절이며 일차적 자료가 된다.

에스겔의 상징적 행동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또 말하는가? 우리의 영적인 포로상태에서 벗어나서 예수 믿고 참다운 영적 자유를 누리라는 메시지일까. “너는 낮에 그 목전에서 네 행구(켈레 골라)를 밖으로 내기를 이사하는 행구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되어 가는 자 같이 하라 너는 그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좇아 옮기되 캄캄할 때에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우고 땅을 보지 말찌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니라 하시기로”(겔12:4-6). 무엇에 우리는 사로 잡혀 있는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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