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병 목사의 산골마을 팡세 (9)

 

제7회 활천문학상 최우수상 수상(2018),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졸, 동대학원 졸, 독일 베텔신학대학원 수학, 현재 독일 보쿰대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독일 다름슈타트 중앙교회, 독일 이삭교회 담임목사 역임. 현 간동교회(강원도 화천) 담임목사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꿩이나 작은 새의 박제된 것이 있었습니다. 꼭 살아있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움직여 날아갈 것만 같은데, 실제로는 죽어 있습니다. 껍데기만 있고, 안에는 지푸라기나 솜과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껍데기는 살아있어 보이지만 내면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겉모습과 속모습이 다른 사람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진지하고 정직하지만, 자기만 알고 타인은 존중하지 않습니다. 거창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은 듯이 말하지만, 껍데기에 불과해 삶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종교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내면에는 칼과 창이 있어 남들을 비판하며 찌르기가 일쑤입니다.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는 종교인이지만, 내면은 정리되지 못해 친구도 없고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버린 사람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박제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정직하고, 종교적이라 하더라도 두 가지가 빠지면 박제된 사람, 박제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랑입니다. 아무리 정직하게 살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생활을 잘 해도,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살고 봉사도 잘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따뜻한 가슴, 품어줄 수 있는 마음, 실수를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세,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배우려는 태도, 손해를 보더라도 남의 어려움을 돌봐주고 자신의 것을 양보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겸손입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더 존중받고 싶고, 나의 것을 먼저 챙기고 싶고, 내 일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낫다’라고 인정 하는 것이 죽기보다 힘든 사람이 많습니다. 자아가 꺾이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은 무조건 자기 자신을 비천하다고 여기는 비하의 마음은 아닙니다. 실패자의 마음자세도 아니고, 게으른 자의 자기변명 또한 아닙니다. 겸손은 사랑받은 자의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으면 저절로 자아가 회복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좋은 나를 알게 되면, 그리스도 앞에서 겸손하게 됩니다.

내가 귀하지 않은 사람은 남도 귀하게 여길 줄 모릅니다. 존중과 존귀함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귀하기 때문에 남을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자기가 존귀한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 겸손하게 됩니다. 남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이 없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자기만 옳다고 말하는 것은 껍데기만 있는 박제된 신앙입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그리고 겸손하십시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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