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여행묵상집

이 책은 서종현의 여행묵상집이다. ‘22개국에서 만난 창조주의 세상’이 아름답거나 인상적인 사진들과 함께 이 특별한 책에 담겨 있다. 그가 방문한 45개국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독자는 서종현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의 호흡을 느낄 수 있고 따듯한 감성도 읽어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을 통해 나는 누군가와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주님은 내가 온전히 나이기를 바라신다.” 그에 따르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여행은 나를 찾는 여행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여행이었다.”

저자는 길을 걸으며 묵상하고 깨닫는다. 그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풍경보다 그곳에서 깨달은 은혜를 잊지 못한다. “이제는 그곳에서 내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소금처럼 살고 싶다. 영혼의 가슴에 복음을 전하고 그 가슴에 녹아 없어지면 그만인 것을, 나는 어찌나 나를 드러내려고 애를 쓰며 살았는지 마치 복음이 내 것인 양 나를 지껄인 순간들이 부끄러웠다. 주님은 겸손한 소금이 되라고 나를 설교자로 세워 주셨는데 그렇게 세워진 설교단 위에서 나 자신의 색을 설파하여 나의 색에 동화되도록 선동하곤 했다. 설교 안에서 드러나는 나의 자아는 주님의 복음을 가리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곳 저곳을 방문하면서 그 자신을 발견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를 성찰하는 법을 배운다. 그는 목회(선교) 현장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살고자 했으나’ 그의 자아는 번번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회중들 앞에서 교만의 색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설교자의 그같은 추태는 지진처럼 위험해서 성도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들쑤시기만 한다. 나는 겸손한 소금이고 싶다. 복음의 맛을 내고 사라지는 아름다운 소금이고 싶다.”

저자는 땅에서 하늘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예배라고 말한다. “마치 예배는 전쟁 같은 우리 일상의 훈자행과도 같다. 내 영혼의 훈자인 천국을 향하는 고된 행군은 예배와 다름 아니다. 예배를 통해 하늘을 경험하는 일은 훈자에 가는 길처럼 고단하다. 협착한 낭떠러지 길이 쉼 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기필코 그 길을 지나 천국에 닿아야 한다!”(‘훈자’는 파키스타의 마을이다) 예배는 전쟁 같은 일상 중에 만나는 천국으로의 행군이라고 말한다. “내 영혼의 훈자인 천국은 영원한 삶을 누리는 곳이다.” “예배의 수신자는 성도가 아니라 주님이시다. 예배는 성도를 만족시킬 의무를 갖지 않는다. 예배는 드려지는 것이지 감상하거나 소비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예배는 본래 성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다.”

서종현은 어느 나라를 가든지 그 나라의 어둠이 궁금하다. 어둠은 다름 아닌 그의 파송지이기 때문이다. 첫 설교도 소년원에서 했다. “그동안 복음을 들고 한국의 많은 윤락가를 배회했지만 그곳에서 주님을 전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그리스도인이 윤락가를 가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가는 날마다 주님을 만났다.” 서종현은 빛으로 계시는 그분을 어둠 속에서 만났다. 주님은 어둠 속에 계셨고 어둠과 함께 계셨다. 그의 파송지가 ‘어둠’인 이유는 예수가 보내지신 곳이 어둠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 속에 있던 그에게 빛으로 오셔서 그의 빚을 탕감해 주셨다. 그리고는 그를 빛으로 변화시키셨다. 그래서 서종현는 말한다. “이제는 다시 어둠 속으로 보내졌다고 믿는다. 예수께서 내게 하신 것처럼 빛으로서 어둠 속을 서성인다. 예수를 알기 이전의 나는 어둠과 섞이려고 어둠 속을 서성였지만 지금의 나는 어둠을 몰아내려고 어둠 속을 서성인다.”

사람들은 그와 그의 동역자들을 ‘다음세대 사역자’라고 부른다. 그는 이 땅의 영적 피폐함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오늘을 산다. 그에게 다음세대를 위한 열정은 영적 싸움을 해나가는 동력이 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음세대를 사랑하는 것은 이 땅에 이루어질 회복의 큰 동력이다.” 서종현은 ‘농사꾼 같은 선교사’, 천국의 열매를 땅에 틔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서종현은 독일여행을 통해 종교개혁의 목소리를 몸으로 받아들인다. 그 곳에서 좋은 믿음의 그릇으로 준비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신앙이란 성경에 밑줄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에 밑줄을 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곳으로 첨벙 뛰어드셨다. “우리는 그 사랑을 복음이라고 부른다. 나도 진정 복음을 품고 싶다. 더러움에 슬씩 발을 담그고 주를 따라 살았노라 하지 않고 첨벙 뛰어들어 주들 따라 죽었노라 할 수 있는 그런 복음을 갖고 싶다.”

저자는 소년원 출원생과 미혼모들이 모인 ‘죄인교회’를 섬긴다. 그는 주님의 계획을 신뢰한다. 주님은 그를 통해 ‘삐딱이들’을 만나고 계신다. “나는 창조물로서 창조주의 창조목적을 완수하고자 소년원 퇴원생 교회를 개척하였다. 보라, 이리저리 제멋대로 자라는 소나무가 되어 삐뚤어진 것들의 목회자가 된 것이다. 주는 소나무로 자란 나를 잘라다나 집을 지었다. 나의 창조목적은 방랑벽이나 역마살이 아니라 방랑하고 떠도는 것들의 집이었다.”

저자는 “구속사의 십자가 사건은 1세기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 『로드 온더 로드』 제 1권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독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예수를 믿습니까?” “그 예수를 전하고 사십니까?”

그에 의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를 전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곳마다 선교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품은 자마다 선교사다.“복음은 과거의 것이자 오늘의 것이며 내일의 것이다. 복음은 2,000년 전에만 있었던 ‘한시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시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저자 서종현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그의 여정 가운데 툭툭 던지는 근본적 물음 앞에 서곤 할 것이다. 피하지 말라.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아직 모를지라도. 이 여정에 동참한 독자로서 그의 도전에 공감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독자 스스로 자신의 길(road)에서 길(way)을 찾아 나서야 하기에.
 
“중요한 것은 오직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한결 같이 곧게 가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길과 비교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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