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12-17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세례 요한이 헤롯 왕의 불륜 아내 헤로디아의 농간으로 헤롯 군병에게 체포된 때였습니다. 헤로디아는 빌립 왕의 아내였으나 빌립 왕의 형 헤롯 안디바와 눈이 맞아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에 세례 요한이 그 사실을 알고는 헤로디아를 악하게 평하였습니다. 따라서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제거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헤롯이 세례요한을 잡아 옥에 가둔 것입니다. 그 후 우리가 알다시피 헤롯 왕의 생일이 되었을 때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춤을 즐긴 헤롯 왕은 모든 손님들 앞에서 그 소녀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술김에 약속하였고, 그 소녀는 엄마 헤로디아가 시키는 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베어 소반에 올려 달라고 청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세례 요한은 옥에서 지내다가 목이 베어 죽게 됩니다. 

이로써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던 사자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짐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갈릴리로 사역지를 삼으셨습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땅의 북쪽 지방으로써 예수님이 자라나신 고향이기도 합니다. 갈릴리 지방은 여호수아 장군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아셀,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에 분배된 땅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성전 건축 자재를 공급한 두로 왕 히람에게 그 대가로 준 것이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대단히 형편없는 황무지의 땅이었습니다. 이에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대단히 실망하였습니다. 

[10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11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13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느니라](왕상 9:10-13)

 
그 이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게 되고, 갈릴리 지방이 속해 있던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바벨론, 바사, 마게도냐, 애굽, 수리아에 의해 차례로 정복됩니다. 따라서 갈릴리 지방에는 온갖 종류의 혼합 족속들과 혼합 종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41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왕하 17:33-34, 41)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 갈릴리 지역은 이방 족속의 땅이라고 불릴 정도였고, 이에 모세의 뒤를 잇는 참 선지자들은 그의 형제, 곧 순수한 열두 지파에서만 날 수 있다 했으니, 이방 족속처럼 혼혈지역이 된 갈릴리 지역에서는 결코 선지자가 날 수 없다는 소문이 조상 대대로 내려왔던 것입니다.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요 7:40-44)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요 7:50-52)

그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자라나셨지만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후에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그가 자라난 동네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의 다른 동네, 곧 스불론과 납달리 동네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갈릴리 해변을 끼고 있는 가버나움이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지역 역시 갈릴리 지방에 속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이유에 대해 마태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그 예언은 이사야 9장 1-2절에 있습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1-2)

이사야 9장이 어떤 장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에 대한 예언의 장입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으로부터 멸시 받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즉 갈릴리 해변 가버나움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 땅을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당시 갈릴리 지방, 그리고 특히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가버나움은 큰 빛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흑암의 지역이었다는 점입니다. 그곳은 온갖 종류의 죄악으로 난무하던 동네였습니다. 그 지역이 얼마나 어둠에 속하여 있었습니까? 이사야의 표현대로 하면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새롭게 사역을 시작하시니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 4:16)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내용에서 세상이 어두울수록 복음의 필요가 더 중대하여진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또한 세상의 죄악이 관영 할수록 참 교회와 복음의 사역이 더더욱 필요하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끔찍한 죄악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낙망할 것이 아니라 더욱 복음을 전해야 할 긴급함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하늘의 별은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합니다. 쓰레기더미에서 피어나는 순결한 백한 한 송이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에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빛이며 거룩한 향기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악하여질수록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고, 세상이 더러워질수록 더욱 강력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깨어서 복음의 역사를 위해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17절에 보니 무엇으로 시작합니까?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더욱 분명하게 말하면,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는 절망과 죄악과 사망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실 영적으로 성숙한 거듭난 자들 외에 누가 절망과 죄악과 사망과 그늘에서 자유롭습니까? 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악의 비참한 상태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이 있다고 죄악이 없습니까? 사회 지위가 있다고 절망이 없습니까? 과연 어둠이 짙어가는 이 시대에 사망의 그늘에서 자유로운 자들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이러한 절망과 죄악과 사망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 큰 빛을 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큰 빛이 그들에게 임한다면 그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첫 번째 현상은 무엇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회개입니다. 오직 회개할 때, 큰 빛을 볼 수 있으며, 큰 빛을 볼 때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소요리 문답을 보면, 회심은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알려줍니다. 즉, 거듭난 자들에게 처음부터 호흡을 마치는 그 날까지 나타나는 분명한 두 가지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회개와 믿음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마태와는 달리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회개하고 믿으라! 이는 성령으로 인한 거듭남의 현상입니다.

불신자가 처음에 복음을 접하고 구원 얻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회개입니다. 그리고 회개와 함께 그들은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듭니다. 이렇게 회개와 믿음이 함께 나타나면 그것이 회심이요, 거듭남입니다. 그 이후 그 거듭난 사람은 계속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역시 동일하게 계속적인 회개와 계속적인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회개는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인이라는 인식이며, 믿음은 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확신입니다. 이 두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연합하게 되며 그러면 십자가의 구속의 효력이 우리의 영혼에 나타나게 됩니다. 즉, 죄사함과 함께 계속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없이는 결코 거듭날 수 없고, 또한 예수님을 닮아갈 수 없습니다. 반면 참된 회개가 있다면 반드시 거듭난 생명을 소유하게 되면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회개의 합당한 열매(눅 3:8)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둠이 빛으로 바뀌는 시작은 회개입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시작은 회개입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시작은 회개입니다. 분열이 하나됨으로 변하는 시작은 회개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시작은 회개입니다. 

성령께서 오순절 날에 임하신 후에 베드로가 가장 먼저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그의 설교에서 구약의 요엘서에서 시작하여 성령의 강림 사건까지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청중을 향해 단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였습니다.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40 …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더라](행 2:38-40)

여기서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사실을 믿고 그분을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회개하라.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죄 사함과 함께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자각입니다. 특히 내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나의 교만함과 완고함의 죄에 대한 인식입니다. 참된 회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시작합니다. 회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식입니다. 나는 지옥에 떨어져 합당한 죄인이라는 실제적인 두려움을 말합니다. 

그러면 회개가 시작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복음 선포입니다. 복음 선포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공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율법의 말씀을 아는 만큼 자신의 영원한 멸망을 의식하게 되면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가 있지만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공의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 아래 사람들은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회개와 함께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개혁주의의 신앙 고백인 하이델베르그 교리 문답을 보면, 맨 처음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1 문: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변: 사나 죽으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시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성령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기꺼이 그분을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2 문: 이러한 위로 가운데 기쁨 안에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답변: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
셋째, 그러한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

즉, 구원의 시작은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를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죄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않고는 결코 복음의 능력과 은혜와 감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은혜와 능력이 이 세상에 강하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죄가 더욱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의 날 선 검처럼 어둠과 죄악에 속한 인간들의 부패한 심장을 예리하게 도려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이렇게 드러나야 십자가에서 영원한 희생 제물이 되시고 또한 부활 승천하여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그리고 새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사람은 죄로부터 구원을 얻게 될 것이며, 나아가 이 세상의 절망과 죄악과 사망과 그늘에 앉은 자들과는 달리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이 되어 죄악으로부터, 절망으로부터, 사망의 그늘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천국을 누립니다. 하나님과의 교통 가운데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의로운 사랑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크게 기여하게 되고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는 주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등장합니다. 그 교회는 죽은 시체와 같은 사데 교회보다 더 가망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사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배도의 교회의 특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6-17)

이때 라오디게아 교회가 멸망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회개’ 밖에 없었습니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 회개하라](계 3:18-19)

제가 미국에 있을 때 2007년 경에 칼빈 신학대학원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매우 저명한 목회학 담당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는데, 요약하면 설교할 때 죄를 지적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시대는, ‘죄인’, ‘심판’, ‘지옥’ 등을 말하면 그렇지 않아도 지쳐있는 청중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책망보다는 그저 달래주는 말, 위로하는 말을 하면서 복음으로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더 이상 죄인으로 여기거나 죄인이라고 선포하지 말고 그들을 단지 병들어 아픈 환자로만 여기고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중간에 강의를 듣다가 조용히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교수에게 수업을 듣는 허다한 신학생들이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는 어떤 설교를 하게 될지를 생각하며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도둑놈을 향해서도, 간음자를 향해서도, 부모에게 대드는 자들을 향해서도, 동성애자를 향해서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저 “주께서는 여러분을 이해하고 사랑하십니다. 세상 사느라 많이 힘들지요? 힘내고 더 열심히 살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기쁨이 되기 위해 좀 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설교할 것입니다. 그러면 청중들은 죄에 대한 심판이나 두려움보다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복음의 능력과는 무관한 인간의 의를 쌓는 그러한 교양 또는 품위 정도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을 가진 자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동성애를 인정하는 교회가 왜 배도의 교회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해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문둥병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자들이 특징을 요약하여 말합니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32). 

성경을 보면, 두 가지의 배교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리적인 배교입니다.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참 하나님 되심과 참 사람 되심.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인한 구원 등을 허무는 가르침 등입니다. 이러한 거짓 교리에 빠지면 말씀에 서는 신앙이 무너지면서 배교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리적인 배교는 유대교와 같은 행위 구원론 및 종교 다원화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동성애를 지지하는 거짓 목사들처럼 죄를 죄라 하지 않는 가르침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또 다른 배교는 실천적인 배교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교리적으로는 건전한 것 같은데 그들의 삶은 전혀 세상과 구별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주님의 이 경고에 해당하는 자들이 바로 실천적인 배교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십계명이 금한 죄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면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용납하실 줄로 착각합니다. 그들의 양심은 화인 맞아서 죄에 대한 뼈저린 고통도 없고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면서 성경의 엄중한 경고를 농담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전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참된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가 사는 길은 회개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성령의 충만함을 얻기 위해 지나야 할 가장 중요한 단계는 회개입니다. 그리고 신앙 생활할 때도 가장 예민해야 하는 부분은 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십계명을 철저하게 배우기 바랍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철저하게 배우기 바랍니다. 성경을 자주 읽기 바랍니다. 인간의 내면의 죄를 들춰내는 복음적인 청교도 글들을 많이 접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역사로 내 죄가 더욱 깊게 보이고 더욱 훤하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교회의 죄악에 대해서도 환하게 보게 되면서 뼈저린 아픔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또한 교회의 죄악으로 인해, 나아가 이 땅의 주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 9장을 읽어보면 구구절절 다니엘의 슬픔과 간절함이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부패한 이스라엘 온 민족을 대신하여 눈물과 애통함으로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
](단 9:3-8)

다니엘은 계속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를 반복하면서 슬퍼하고 애통하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당하는 모든 비참과 저주와 괴로움에 대해 합당한 처우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 자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임할 것을 알고 주께서 보내실 메시아를 바라보비다. 즉, 진정한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통로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요, 죄사함에 이르는 회개이며, 나아가 죄의 권능을 이기는 믿음의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심각성을 아는 만큼 사람은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만이 복음의 무한한 귀중함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은 다름 아닌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고, 죄를 우습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철저하게 죄를 회개함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피하기 바랍니다. 그 어떤 사람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멸망에 이를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기 바랍니다.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 3:18-21)

그러나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참조, 요 3:36).

언젠가 누구든지 자신이 지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이 세상에서나 또는 죽음과 함께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은 영원한 공포 속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 공포를 아는 자들은 다음 구절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오싹하며 두려움에 떨게 될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 
오,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여! 신속히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설교자를 위해 늘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청중으로 참된 회개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말씀이 좌우에 날 선 검처럼 예리하게 청중의 심령을 도려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중이 “어찌할꼬”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게 만들 수 있어야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위대한 설교자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7-38).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늘 설교자를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들이 온전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 충만함을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설교자가 회개의 역사를 이끌어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닮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늘 주의 백성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9 또 (설교자인)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저는 바울처럼, 스펄전처럼 청중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만드는 그러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족한 설교자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저한 회개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만일 아무리 작은 죄라도 현재 진행되는 것을 허락한다면 여러분은 회개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실 수 없습니다. 믿음의 양심에 걸리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철저하게 회개하고 당장 끊기 바랍니다. 그래야 죄사함을 받아 마음이 청결하게 되고, 청결한 그 마음에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다시는 죄에 패하지 않고, 주 하나님께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 드리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사 44:3-4). 

오늘 이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및 모든 지체들이 진정한 회개 가운데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