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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사망의 환경을 생명적 환경으로 바꾸라유지와 실력의 차이를 구분하라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 협력원장,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주기도문 연구 등 저서가 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환경에는 사망적 환경과 생명적 환경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사망적 환경에서는 미래를 열어갈 수 가 없다. 사망적 환경을 생명적 환경으로 바꿀 때 인생에 놀라운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망적 환경이란 미움, 원망, 슬픔, 부정적인 생각등에 사로잡힌 정신적 스트레스와 술과 담배와 오염된 물과 공기로 인해 오랜시간 건강한 세포를 괴롭힐 때 나타나는 육체적 스트레스가 있다. 또한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환경에서 찾아오는 환경적 스트레스도 있다. 이런 것들이 오랜 세월 쌓이게 되면 우리는 질식해서 죽어간다.

또한 미래를 개척하는데 장애물이 있다. 게으름, 포기, 절망, 어둠에 사로잡힌 언어, 누추한 말,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에 지배를 받으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환경 뿐만 아니라 마음과 주변의 환경도 철저하게 바뀌어야 한다.

2019년도를 출발하면서 누구나 새로운 시간들을 살아가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하며 목표를 세워간다. 어떤 자세로 출발해야  좋은가?

 

◐창조주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열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전제 조건에서 우주 만물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사망적 환경에서 생명적 환경으로 전환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나를 지으시고 나를 만들어가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우리의 영적 환경을 조정하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열 때 가장 중요한 도구는 성경이다. 성경을 읽고, 쓰고, 암송하고 사모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얻을 수 없는 신선한 영적 에너지를 공급한다. 성경의 언어에는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하다. 모든 고난과 역경을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하늘의 에너지를 공급할뿐 아니라 구원의 은혜와 성장의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신다.

교회 초창기 개척 멤버 중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면 늘 불평불만, 원망에 충만한 집사가 있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원망을 남편이나 자식에게 투사할 때가 많았다. 삶에 지치면 상한 감정을 추수리지 못해서 파괴적인 언어로 가정 분위기를 어둠으로 억압하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성숙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생긴 것을 보았다. 그 이유는 성경쓰기였다. 성경을 쓰면서 어수선하고 지친 마음의 감정을 폭발하지 않고 신앙적으로 풀어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았다. 성경은 흐뜨러진 마음의 상태를 잘 정리정돈하도록 돕는 영적 에너지를 제공한다.

 

◐ 소확행은 목표가 될 수 없다.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목표를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중장기, 단기 목표가 있습니까? 물어보면 그냥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너무도 비전이 하나님 나라에 걸맞지 않는 대답이다. 이런 대답은 우리 한국 사회의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단어가 있다면 소확행이다. 소확행이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보면, 비전과 사명과 꿈을 포기하고 살겠다는 말고 같다. 나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방식이 곧 사망적 환경이라고 본다. 주님이 소확행으로 살라고 주님이 십자가에 죽어서 우리를 구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은 원대하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소확행으로 살았다면, 자신의 미래가 보장된 젊음을 포기하고 100년전에 조선땅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벽안의 선교사들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평안한 삶을 버리는 위대한 헌신과 십자가를 향한 거룩한 섬김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종교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지만 소확행으로 우리들의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고 열려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한결같이 소확행을 추구한다면 그들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목표가 없다는 것은 그의 삶이 사망적 환경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미래가 나아지지 않는다. 점점 추락할 뿐이다.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것은 자신을 생명적 환경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년말에 조용히 시간을 보내면서 몇 권의 책을 읽었다. 읽은 책 중에서 나의 마음에 도전을 준 책이 있다. 김여나씨가 쓴 ‘내 인생의 판을 바꾼 1년’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경단녀이다. 결혼후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회사 퇴직 후 육아를 담당하게 되었다. 아이는 예쁘지만, 동네 아줌마로 전락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면은 심각하게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무너져 내려가는 자신의 삶을 붙잡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 블러그에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다. 좋았던 문장은 필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육아를 하면서 정리한 책이 500권이 넘었다. 저자는 말한다.‘책 속에 길이 있다고', ‘책 읽는 것, 정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 만만치 않는 일들이 쌓이면 그 또한 자산이 된다’고 했다. 저자는 ‘책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그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살 수 있다. 읽기만 하면 그 사람이 수십 년 동안 해왔던 경험을 몇 시간 안에 살 수 있다.’는 진리를 던져 주고 있다.

목표가 없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예의가 없는 것이다. 거꾸로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인생에서 1년 정도 전부를 불태워 보라고 강한 질문을 던진다.저자는 말한다. ‘왜 미쳐야 하는가? 세상에 잘난 사람 너무 많다. 열심히 사는 사람 너무 많다.’ ‘한번 쯤 미쳐보는 것이 내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언어가 있다. ‘죽을 만큼 불태워봤니’ ‘그게 인생에 대한 예의야!’

 

변화산기도원

 

◐ 유지와 실력의 차이를 구분하라

학교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 있다. 유지와 실력의 차이가 어디서 판가름 나는지를 알고 있다. 학교에서 정규 시간 공부하는 것은 유지이다. 진짜 실력은 혼자 씨름하는 시간으로 채워질 때 생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주일성수나 십일조 생활은 기본이다. 이 기본을 신앙생활의 유지라고한다. 기본만 하고 탁월한 신앙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한참 착각하는 것이다. 진짜 탁월하고 능력 있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기본 가지고는 안된다. 기본만하고서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는 능력의 제자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진짜 실력은 기본을 뛰어넘는 온전한 헌신과 바른 순종이 뒤따를 때 가능하다. 그래야 탁월한 제자가 되고, 쓰임받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에게 날마다 기본만 해, 그래도 충분해라고 속삭인다. 적당하게 하는 것이 지혜야,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마라. 짧은 목회생활을 뒤돌아볼 때 기본만 해서는 하늘의 영적 능력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신앙이나 인생이나 소확행처럼 살아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현실에 주저앉아서 그 자리에 늘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가?

사단은 계속 유혹한다. 적당히 신앙생활을 해, 헌금 생활도 적당히 해, 십일조는 안돼, 회사생활도 대충해, 공부한다고 뼈죽한 수가 있어, 공부해도 별 볼 일 없어, 적당하게 놀고먹고 네 자유를 찾아. 건강할 때 여행해야 해. 그것이 인생이야. 이런 유혹에 빠지면 인생은 점점 형편없이 무너지게 된다. 사탄은 항상 사망의 환경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주님은 늘 생명의 환경으로 인도한다.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사탄의 음성을 듣고 질질 끌려다니다가 인생을 황폐하게 만들것인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사는가? 죽는가?의 문제이다.

유지와 실력의 차이를 극복한 사람들에게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 차이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삶의 내공이 있다. 세상은 그들에게 환호를 보낸다. 주님도 그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

처음부터 역경을 모르는 금수저들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없다. 그들에게는 인생의 눈물이 담겨 있는 반전드라마가 없다. 사람들은 히어로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역경을 디딤돌로 만드느냐? 혹은 장벽으로 만드느냐? 이 선택은 오로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

 

 

최원영목사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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