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병 목사의 산골마을 팡세 (11)

제7회 활천문학상 최우수상 수상(2018),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졸, 동대학원 졸, 독일 베텔신학대학원 수학, 현재 독일 보쿰대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독일 다름슈타트 중앙교회, 독일 이삭교회 담임목사 역임. 현 간동교회(강원도 화천) 담임목사

어느 분의 글을 보다가 ‘들을 청(聽)’자를 풀이한 것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왕과 같이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귀와 열 개의 눈이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상대를 향해 집중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듣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말을 들으려면 속이 뒤틀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마음이 답답하여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그러기에 차라리 내가 뒤집어 말해버리는 것이 낫다고 여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귀를 닫아버립니다.

우리는 듣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말들을 엄마로부터 들어야 하듯이, 우리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아라비아 속담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답니다. 장사를 좋아하는 중동인들의 말이긴 하지만,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말을 듣는 것이 그렇게 유익하고 좋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얼마나 큰 유익이 될까요?

놀랍게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듣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칠십 오세에 믿음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모세는 말씀을 들음으로 팔십에 믿음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하는 자의 지시를 받아들인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기를 포기하는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그러하기에 들음을 통해 자신의 삶이 뒤흔들리고,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꿈꿔보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들음은 그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됩니다. 듣지 않으면 신앙의 세계가 열리지 않습니다.

들음은 순종을 뜻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반응하고 응답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듣지 않았기에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가 있다고 다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는 자세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들리고 깨달아집니다.

듣는 것은 신앙의 정점에 이르게 합니다. 신명기 6장4절 이하의 말씀은 쉐마 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로 시작되는데, 이 말씀은 오늘날까지 구약 말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먼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마음을 닫아두면 한마디도 들을 수 없지만, 마음이 열려진 사람에게는 엄청난 세계가 열립니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것(聽從)이 일만 마디의 청원(請願)보다 소중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울려 퍼질 때 들으십시오. 말씀이 깨달아질 때 순종하십시오. 마음을 다하여 듣고, 무릎을 꿇고 듣는 자가 지혜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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