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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길을 갈 때에

여호수아 3:1-6 

1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모세가 죽고 그의 보좌관이었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리워하던 요단 강을 건너지 못함으로 요단 강 서편의 땅에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그는 요단 강 동편의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차지했습니다. 그 땅은 가나안의 아모리 땅으로서 헤스본 왕 시온과 바산 왕 옥을 쳐부수고 차지한 땅입니다. 그 후 모세는 그 땅을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종종 모세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가 쳐부순 두 왕의 땅은 가나안 땅으로서 요단 강 동편 땅입니다. 그 땅 역시 가나안 땅이기에 두 지파 반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고, 요단 강 서편 지역은 아홉 지파 반에게 나누어준 것입니다. 다 같이 민수기 34장을 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3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4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5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 6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 7 북쪽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 산까지 그어라 8 호르 산에서 그어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이르고 9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이르나니 이는 너희의 북쪽 경계니라 10 너희의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11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12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1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 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14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 15 이 두 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민 34:1-15)

여기서 가나안 땅의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 스밤, 비를라 등의 지역인데 이는 요단 강 동편 쪽으로써 드넓은 아모리 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입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가나안 땅의 본토인 요단 강 서편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52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신 32:49-52)

이리하여 모세는 요단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강 동편 땅을 차지하고 두 지파 반에게 나누어주었지만 요단 강 저 너머 서편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모세가 아니라 그의 보좌관이었던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이끌고 점령해야 할 몫이 되었습니다. 

이제 새롭게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두 사람의 정탐꾼을 요단 강 서편으로 보내며 여리고 성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두 정탐꾼은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요단 동편을 정탐하고 다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보고 하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수 2:23-24). 

이에 두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여호수아는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데리고 요단 강 앞으로 갔습니다. 그 후 그곳에서 삼일 동안 진을 친 후 드디어 출발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요. 그러면 그 뒤를 따라가시오. 이제 우리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을 가게 될 것이오. 그러나 언약궤를 따라가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말했습니다.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 앞에서 강을 건너시오.” 
그러자 제사장들은 백성들 앞에서 그 언약궤를 메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2019년의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 한 해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특히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가정에, 이 교회에, 이 나라에,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길을 향해 발걸음은 내디뎠습니다.

지금 본문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길로 나아갑니다.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 주의 백성으로서 어떤 마음을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하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수 3:4). 

자, 그러면 먼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40년 동안 그들을 이끌어 오던 모세가 죽어서 그들에게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40년 동안 늘 보던 지도자가 사라졌을 때 백성이 받는 충격과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은 십자가 사건을 알고 심지어 성령을 받은 상태에 있지만 그럼에도 만일 40년 동안 영적으로 여러분을 가장 완벽하게 인도하던 지도자가 사라졌다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물며 구약 백성들은 십자가 사건도 저 먼 미래에 있고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강력하게 체험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들 눈에 보이던 모세가 사라졌을 때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참으로 불안하고 걱정과 염려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인가’하고 심한 두려움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연약한 인간들이었기에 이러한 공포와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을 분명히 가졌을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아무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벌써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던 상태였습니다. 얼마나 지치고 고달프고 지루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요단 강 서편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합니다. 사실 그곳은 과거 열명의 정탐꾼에 의하면 거주민을 삼키는 메마른 땅이며 그곳 가나안의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하고 심지어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악평을 듣고 마음이 흔들려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 사람들은 지난 40년간의 광야 생활 가운데 다 죽고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번도 자기 눈으로 그 땅을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그 소문은 얼마든지 그들에게 의심과 두려움을 자아낼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지금 그들은 요단 강 동편 기슭에 있고, 그들이 정복해야 하는 땅은 요단 강을 건너자마자 요단 강 서편으로 무한하게 펼쳐지는 땅입니다. 전혀 감도 못 잡고 또한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쉴새 없이 발생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이 전쟁을 전제로 하는 상황이기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호랑이 굴에 자살하러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모세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심기에 너무나 큰 변화가 있었는데, 앞으로 요단 강을 건넘으로 닥칠 변화는 얼마나 큰 불안감을 주었겠습니까? 그러니 자칫 한 두 사람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엄청난 소요에 빠질 위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과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중보적인 직분들과 하나님의 맹세가 담긴 언약궤가 있습니다. 그리고 먼 과거의 사건이기는 하지만 애굽에서 탈출한 기적의 사건이 있었고, 그리고 40년 동안 모세를 통해 나타난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십 년 동안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와 하루도 굶은 적이 없었고,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오직 그들이 아는 것은 과거입니다. 감사하게도 과거가 어떻게 그들에게 진행되었는지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그들은 다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전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자세로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미래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자, 여러분도 역시 오늘 이 거룩한 새해 첫 주일 예배에 삶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 갈림길은 여러분이 새해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세상을 위해, 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 갈 것인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개척하고 좀 더 잘 먹고 잘 살 것을 목표로 할 것인가? 아니면 오직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그분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인가? 

그리고 여러분이 오늘 결정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에 나타나는 결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갈림길은 롯처럼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는 발걸음이 되면서 결국 유황불에 모든 것을 잃는 신세가 될 것이고, 천성을 향하는 갈림길은 무한한 만족과 감사와 보람을 가져오는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삶의 결과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실 것이고, 쓴 열매와 썩은 열매, 그리고 죄악의 열매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삶의 결과는 영광과 열매와 사랑과 거룩함의 열매로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오늘 결정이 자기 영광과 세상 자랑을 추구하는 방향이라면 불평과 미움과 죄악과 어리석음 가운데 한 해를 보낼 것이지만, 만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 곧 복음의 삶을 추구한다면 이 한해는 그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안성맞춤이 되는 복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방향을 취한 신자들에게는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어려운 난관이나 억울한 일들이든, 그 모든 일들이 그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가장 안 좋은 불행한 일들까지도 도리어 영원토록 감사할 수 있는 가장 복된 순간들로 승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늘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과거를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와 자비와 전능하심에 대한 기억 때문에 미래에 대해 그 어떠한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그가 비록 요단 강 서편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기억하며 노래합니다.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6-29)

특히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처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의 영원하신 팔이 우리 아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개역개정은 간단하지만 원어로는 훨씬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신 33:27). 

원어로 보니 (~l'_A[ t[oåroz> tx;T;ÞmiW ~d<q,ê yhel{åa/ ‘hn"[om. ) (므오나 엘로히 퀘뎀  우 미트하트 즈로오트 욜람)입니다. 원어대로 직역하면, (엘로히 퀘뎀), 즉  동쪽의 하나님, 이전의 하나님, 이전 상태의 하나님, 앞의 하나님, 앞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하나님은 (므오나), 즉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혹시 세찬 비바람 가운데 큰 바위 틈 새에서 안식하는 작은 새 한 마리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지요? 그곳은 세상의 풍파와 상관없이 지극히 안전한 틈새입니다. 바로 그것이 (므오나)입니다. 

그런데 (엘로히 궤뎀)이 (므오나)라고 합니다. 문맥상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한 말이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므오나)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개역 개정이 (영원한)이라고 번역한 원어 (퀘뎀)은 동쪽을 말합니다. 시작을 말합니다. 항상 새로운 시작을 뜻합니다. 지극히 먼 과거의 시작을 말합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께 속한 속성을 묘사한다면 그 의미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차원의 시작을 뜻합니다. 그래서 개역 개정은 영원하다고 번역했지만, 그 깊은 의미는 알파와 오메가의 의미로서, 창세 전부터 목적을 가진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계속 목적을 향해 섭리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즉, 주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으로 모든 것을 이끄십니다. 따라서 그 목적과 인도하심 안에서는 하나님은 주의 백성에게 지극한 (므오나)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정리하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은 너희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 안에 있고 주의 음성을 따르면 이 세상에서 어떤 풍파가 있든 상관없이 지극히 안정하고 평강하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라는 말씀은 (미트하트 즈로오트 욜람)인데, 욜람은 끝이 없는 시간 및 공간 개념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을 완전하게 붙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그분의 보호하심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나 원수나 장애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욜람)의 전능하신 팔, 곧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주의 백성의 저 무한한 아래로부터 완벽하게 쳐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이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나아가면 이 세상의 삶 가운데서는 위험이나 불안이나 위기나 멸망이나 실패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40년의 과거 동안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완전한 섭리를 기억하게 합니다.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17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하고, …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신 8:1-3, 6-7, 9-14, 17, 19-20)

그러므로 우리가 새해에 우상을 취하려 할 때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패배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에 있어서 패배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점에서 패배입니다. 죽음을 지날 때 영원한 열매는 없고 냄새 나는 썩은 열매를 가져갈 것이니 패배입니다. 죽음과 함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영원한 패배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5-21)

또한 바울 역시 어리석은 삶의 방향을 취한 자들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도다”(딤후 4:10). 

사도 요한도 동일한 말씀을 합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심지어 야고보 사도도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내용으로 경고합니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3-17)

네, 그렇습니다. 그릇된 방향, 세상을 향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것이 죄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는 한 해의 운수를 떠보기 위해 점을 치는 사람은 없겠지요? 기독교인들 중에는 연초에 점집에 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이보다 더 무서운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새해부터 가증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지극히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아들의 생명을 죽음에 던지시며 구원하신 우리가 우리 주 하나님께 어떠한 존재이겠습니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겠습니까? 얼마나 그분의 눈을 잠시라도 뗄 수 없는 귀한 존재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주 하나님께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며 보호하시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선한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인도하실 때 우리가 잘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 주 하나님께서 얼마나 즐거우며 행복을 느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오직 주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 영원한 보람과 안전이 있습니다. 이때 보람과 안전은 세상이 보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입니다. 따라서 고난도 있을 수 있고,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 안에서는 그러한 모든 일들이 고작 하나님의 영원하고 가장 고상한 뜻을 이루는 수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영원한 보람과 영원한 영광이 보장된 최고의 복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내 마음과 삶을 주께 던져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곧바로 영원한 팔이 우리를 지키시고, 영원한 목적을 향하시는 주의 뜻이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사 우리로 무한한 평강과 기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청중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새해에 더 나아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더 나아지기를 원하십니까? 미모가 더 나아지기를 원하십니까? 더 젊어 보이기를 원하십니까?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으로 더 나아지기를 바랍니까?

제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세상적으로는 더 나아졌는데 도리어 성품적으로는 교만해짐으로 인하여 결국 진실하고 겸손한 모든 거룩한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가더니 가장 비참하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돈을 얻고자, 또는 명예 때문에, 인기 때문에, 야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과 원수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더 외롭고 더 지친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됩니다. 

나아가 세상적으로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무관하며 또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무관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상 야망을 내려놓으시고 더 진실한 사람, 더 정직한 사람, 더 거룩한 사람, 더 하나님과 주의 종에게 칭찬 듣는 사람, 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러한 목적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는 그러한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과 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길로 가야 세상적으로 형통하고 배부르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무엇이 주의 뜻일까를 찾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한 후 그 뜻을 찾으면 생명 걸고 달려가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최고의 복과 안정과 보람을 얻는 길이며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 시간 무엇이 나의 약점이며 죄성인지를 돌아보기 바랍니다.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고 죄를 범하게 만드는 상황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행여 수군거림으로 원수를 대하였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였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신앙 생활을 통해 더 훌륭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가정에 유익한 존재였는지를 점검하기 바랍니다. 과연 많은 영혼들을 복음으로 인도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였고, 또한 그리스도를 닮게 하였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면에서 부족했던 것을 느낀다면 회개하고 그 방향으로 힘차게 달려가겠노라고 주 앞에서 다짐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의 결단이 베드로처럼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알기에 성령께서 우리의 바른 결정을 붙들어 주실 것을 기도하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시간에 이러한 방향으로 새해의 삶을 출발한다면 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최고의 보람과 영광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이러한 참된 삶의 방향을 취하도록 주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늘 바른 삶의 방향을 취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새 길을 맞이하는 여러분을 향해 사도 베드로가 권면합니다.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7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5, 17-19)

바울 역시 새 길을 향하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롬 12:1-2; 골 3:1-2, 4-8)

그러면서 올해도 한 가지 목표를 향하여 힘써 달리도록 그 목표를 정확하게 알려주는데 이는 주께서 바울에게 알려주신 목표이기도 합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2-17)

복음의 능력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닮아가던 바울은 주의 백성에게 동일한 부탁을 합니다. 
“너희도 복음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으라.”
그것을 위해 시간이 주어진 것이고 하루 하루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매일의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비결은 부활의 능력, 곧 성령으로 인한 생명의 역사라고 알려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빌 3:10-11). 

마지막으로 우리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 피로 값주고 구속하신 우리의 왕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말씀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또 다시 당부하십니다.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29-32)

자,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면 여호수아가 주의 백성에게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이 말씀을 가슴 깊은 곳에 새기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을 가게 될 것이오. 그러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요. 그러면 그 뒤를 따라가시오. 그러면 주께서 여러분을 가장 안전하고 보람된 영광스러운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오.”

오늘 이 시간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거듭난 여러분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여지겠다고 다짐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하나님의 새언약, 곧 복음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따라가겠노라고 결단하는 복된 순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thebloodof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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