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전문가칼럼
【청솔칼럼】 당뇨병으로 가는 한국교회

한국교회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아니 당뇨병에 걸렸다. 십여년 전 그 유명한 그랜드 케이년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도 감탄했지만 살며시 다가오는 토끼만한 다람쥐에 놀랐다. 이 놈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따라다닌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에 당뇨병이 걸린것이었다. 

한국교회의 현주소가 당뇨병에 걸린 토끼와 닮은 꼴이 되고 말았다. 개인주의, 이기주의와 무사안일주의, 물량주의, 기복주의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특히 자기 교세 확장에만 급급하거나 대교회, 물량주의와 선교를 앞세운 이권행위 등 세속화 경향에 대해 모든 교회는 이에 오염되어가고 있지나 않는지 냉철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물량주의적 성장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소영웅주의자들의 왕국화를 부채질하고 있지 않느냐는 점이다. 개교회이든 선교단체이든 간에 '인간의 왕국화' 현상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에서부터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민족의 여망에 일치점을 이루면서 발전해 왔다. 개신교 지도자들은 1880년대 선교초기에는 개화운동의 주역으로서, 1900년대는 기울어지는 국운을 수호하기 위한 민족운동의 보루로서, 1919년 이후 일본 치하에서는 민족독립을 위해, 1945년 이후는 건국과 반공의 주역으로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70년대 경제발전과 유신체제 기간에는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던 근로자 문제와 인권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앞장섰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는 점차 비대해지면서 물량주의와 개 교회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어 겸허한 자기반성과 갱신을 통해 새로운 세기를 맞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한국교회가 80년대 이후 세계가 놀랄 만큼 물량적 성장을 가져오면서 '가진 자의 교회'로 전락, 소외된 이웃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불신과 분열의 벽을 극복하지 못한 채 무사안일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론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자세를 새롭게 하여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물량주의적 가치관의 타파와 화해와 일치의 실현, 자기왕국건설의 인간적 욕망과 세속화경향을 과감히 차단하는 일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하루속히 시정되지 않는 한 교회는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 외쳐진 4만 5천 교회 1천2백만 신도라는 구호적 자랑에 도취하기 보다는 이제는 한국교회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더욱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로 낮은 자리로 임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사회가 겪는 갈등과 혼란 속에서 한줄기 빛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해야 하며, 민족이 겪는 분단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주님의 마음으로 고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순수한 선교는 성숙한 교회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교회의 사명이다. 아니 교회됨의 의미이다. 그러나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교회의 물량적 성장에 편승,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선교'라는 이름을 빙자한 상업주의적 경향이다. 세속화의 물결을 더 이상 방치한다면 한국교회는 이 사회 속에서 존재의미를 상실해 버릴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다.

교회와 신앙의 세속화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딜레마를 가져다주었다. 세속화의 물결에 순응하자니 신앙의 정체성을 상실할 것이고 반대하자니 이 시대의 이방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도들은 이 난감한 상황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엉거주춤한 상태에 처해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중적인 삶을 살기도 한다. 세상에서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고 교회에서는 탈세속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삶의 태도에는 언제나 자기분열이라는 괴로운 대가를 치른다. 그들은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의해 비난받고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성경말씀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성경은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는 길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가? 성경의 해답은 소극적 수용이 아니라 변증법적 대응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세상을 정죄 한다 세상은 악하고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며, 미혹하는 곳이며, 헛된 곳이며, 소망이 없는 곳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 그리스도를 내어줄만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길은 '성육신'(Incarnation)이었다. 하나님은 스스로 육신이 되셔서 세속화의 길을 걸으셨다. 그러나 결코 신성을 버리지 아니하셨고 세상을 구원하셨다. 그분이 육신이 되심으로 세상을 이기신 것이다. 성육신의 원리는 세속화시대를 사는 교회의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상담자는 세속화의 딜레마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육신의 신비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말씀하신다. 세상에 속한 자이나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창조자들이다.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에 보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세상을 본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교회의 성도는 세상을 배우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판단하는 자요(고전6:2) 세상을 이길 자이기 때문이다(요일 5:4).

남서호  webmaster@bonhd.net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서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