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목사의 찬송가 강해 설교 (1)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성경본문 : 사 42:8-10

 

<이 천지간 만물들아>의 찬송 곡은 미국의 메인 주 태생으로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찬양으로 진로를 바꾸었던 루터 올란도 에머슨(L.O.Emerson;1820~1915)이 1847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아이자크 우드버리(Isaac Woodbury) 문하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후에 보스턴으로 이사하여 벌핀치가교회(Bulfinch Street Church) 오르간 연주자 및 음악감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약제사로 교회음악가로 삶의 방향을 전환한 그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300회 이상의 음악회를 지휘하고, 70권 이상의 책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찬송 곡명은 그가 섬기던 매사추세츠 주 살렘 교회 목사 알렉산더 세션즈(Alexander A.Sessions)의 이름을 따서 붙였습니다.

“이 천지간 만물들아 복 주시는 주 여호와 전능 성부 성자 성령 찬송하고 찬송하세 아멘.”

 

Ⅰ. 복 주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 (창12:1~9)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문명의 요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죄악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을 때 그곳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르 땅은 신앙을 지키며 믿음으로 살기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어서 아브라함을 그 도시 밖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과 2019년을 새롭게 출발함에 있어서 확실한 믿음의 방법을 통해 한 해를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기 아버지와 친척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과 더불어 하란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아버지 데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또다시 그 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도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데리고 함께 떠났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 성격적으로 어려웠다는 것과 아직까지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안전과 번영, 행복을 기하기 위한 자기 방편으로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던 아브라함은 오히려 롯 때문에 불편한 일들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새해를 출발함에 있어서 우리 역시 하나님만 의지하고 떠나기 보다는 자꾸 일가친척, 동문 선후배, 지인, 권력, 물질, 민노총 등을 의지하여 출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없으면 자신을 불쌍한 흙수저로 여기며 부모와 사회와 환경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내가 흙수저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큰 축복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그런 연약한 내 모습 때문에 홀가분하게 주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 2-6절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섯 가지 축복의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1)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2) 너를 축복하겠다. 3) 네 이름을 크게 하겠다. 4)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5) 내가 네 편이 되겠다. 그래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 6) 너는 땅 위의 모든 복 받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 후에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특별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7절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고향과 친척을 떠나 정처 없이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는 나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단입니다. 아브라함은 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약속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의 복의 근원되십니다.

Ⅱ.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복음송 ‘넘지 못한 살이 있거든’ 가사 중에 “이럴 때 누굴 의지하나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참지 못할 슬픔 있거든 주님께 맡기세요! 우리 살아 갈 길은 눈물의 골짜기 내 힘으론 참지 못해 늘 흐느끼네! 이럴 때 우린 누굴 의지하나요? 주님밖에 없어요! 나는 그 길 갈수 없지만 주님이 대신 가요...나는 그 길 갈수 없지만 주님이 대신 가요...”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그 사랑도, 그 공의도 자유롭게 행사하실 수 있으시며, 인생들을 죄와 허무에서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내가 연약한 것이 무엇이며, 내가 어디가 아픈지, 우리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주님이 다 아시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나로 하여금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고전 10:13) 시편 33편 15절에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 살피시는 이로다.”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14절로 15절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할렐루야.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 주님을 더욱 믿고 의지하고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서 절대로 중간에 포기하고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인도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시면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아침에는 만나를 보내시고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만들어주시고 저들이 필요할 때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고기를 실컷 먹게 해주심으로 광야 속에서도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시고 가나안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저들을 인도해주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우리를 이 험한 광야 길에서 인도하여 주셔서 저 천국까지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낮에는 말씀의 구름기둥으로 환란의 밤에는 성령의 불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2019년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힘이 들어도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계신 전능하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Ⅲ. 만물들아 주를 찬송하고 찬송하세

시 98편 1절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시편을 보면 계속해서 새 노래로 찬양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모릅니다. 이 노래는 눈물이요 감동입니다. 기적입니다. 승리의 개선가입니다. 그래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근심걱정이 사라집니다. 세상에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다 쉬워 보이고, 모든 것이 다 편안해 보입니다. 은혜로 충만해 보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환경이 여러분을 속일지라도, 오랜 백수의 늪에 빠져 있을지라도, 불치병에 걸렸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록 죽음이 오더라도 걱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듯이 실패와 낙심과 절망의 자리를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 외치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주십니다.” “주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7장 12절에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찬송과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사람이 찬송을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찬송을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예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행위는 예배입니다. 인간이 예배를 드릴 때 비로소 가장 위대해 집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이사야 42장 8절은 이 사실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2장 10절에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의 내용처럼 만물들이 새 노래로 주를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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