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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유일신, 그러나 삼위일체는 아님바르트의 비평적 읽기(27) § 9.3.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1, § 9.는 “삼중일적 신”(Gottes Dreieinigkeit, 하나님의 삼위일체성-박순경, 김재진)이다. § 9.3.에서 Dreieinigkeit에 대해서 삼중일성, 심일성 등으로 번역했다. ‘위(位)’, ‘체(體)’ 어휘는 바르트에게 적합한 어휘가 아니라고 제시했다.

Dreienigkeit Gottes heißt darum notwendig auch: Einigkeit des Vaters, des Sohnes und des Geistes unter sich(KD I/1., 390, GG 478, CD., 370)는 바르트의 문장이다. 바르트는 “삼중일적 신”은 필연적으로 “유일성”인데, “아버지, 아들, 영”이라고 규정했다. 그 이유는 신의 본질이 하나이기 때문이다(das Wesen Gottes ist ja eines). 이러한 표현은 des Vaters, des Sohnes und des Geistes에서도 볼 수 있다. 영역(英譯)은 the unity of Father, Son and Spirit라고 번역했는데, 박순경 번역은 아버지, 아들, 영으로 번역해서 명료하지 않다. 독일어에서 und(and)를 하나만 사용한 것이다. 바르트의 제시를 보면 ‘아버지’에서 “아들과(und) 영”이 나오는 구조로 본 것이다. 한 근원에 나온 것은 다른 존재양식이지만, 한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아타나시우스가 성령의 신성을 증명할 때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참고, 김용준, <아타나시우스 성령론>, 조인). 그런데 바르트는 계시 안에 있는 성경의 증언이라고 하면서, 하나에서 둘로 인식될 수 있는 관계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바르트의 계시일원주의라고 설명했다. 바르트는 계시 안에 성경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 정확하게는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한 분 하나님을 세 분 안에서 인식되는 구조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단순하게 주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제자에게 명령하셨다.

바르트는 스스로 “아버지, 아들 그리고 영”이 유일성이라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규정하면서 8세기 다메섹의 요한이 제시한 페리코레시스(perichorese)를 제시했다(KD I/1., 390, GG 479, CD., 370). 그것은 다메섹 요한에서 삼위일체의 마지막 이해(unitas in trinitate, trinitas in unitate)가 시도되었다고 제시하기 위함이다. 바르트는 다메섹의 요한과 아타나시우스 신경에서 발전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 교회에서 삼위일체 이해는 325년 니케야 신경과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확정되었다. 그리고 3차 톨레도 회의(589년)에서 “필레오케오크베(filioque)”를 추가하는 것까지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거기에 perichorese와 unitas in trinitate, trinitas in unitate를 첨언하면서, 루터의 Dreieinigkeit까지 연결시켰다.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가 4세기에 확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이후에 전개된 논의는 개인 자격으로 논의한 것이다. 공교회의 결정은 325년, 381년, 4세기에 확정되었다. 필자는 오히려 두 공회의 문서에서 ‘삼위일체’ 어휘가 없다고 제시한다. 삼위일체는 테르툴리아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서방교회 진영에서 사용한 어휘이다. 공회의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실체(homoousion)”임을 고백했다. 주 예수는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고(마 28:19), 사도 바울은 아들의 은혜, 아버지의 사랑, 성령의 교통으로 축복(고후 13:13)하셨다. 교리는 예수를 빛에서 나온 빛이시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으로, 아버지와 동일실체로 고백한 것이다.

바르트는 논리를 확장시켜 유일성을 강조하며(Der Einigkeit des Vaters, des Sohnes und des Geistes unter sich entspricht ihre Einigkeit nach außen.) 계시자, 계시, 계시내용이 창조자, 화해자, 구원자(der Schöpfer, der Versöhner, der Erlöser)라고 드러내었다(KD I/1., 391, GG 480, CD., 371). Erlöser를 Redeemer로 번역했다. 바르트는 창조주, 구속주 도식에서(칼빈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창조주, 화해주, 구속주 도식으로 전환했다. 정통신학에서 구속주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인데, 바르트는 영의 위치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예수를 화해주로 전환시켰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사역(das Wirken Gottes)과 신(神) 본질(das Wesen Gottes)의 일치시켰다. 그리고 사역과 본질을 구분(unterscheiden)하는 필요성과 중요성을 제시하며, 그 방법을 회상(Erinnerung/remember)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우리 현상에서 발생하는 신의 사역을 신 본질(Gottes Wirken ist freilich das Wirken des ganzen Wesen Gottes)로 규범화시켰다.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자기를 부여하지만 신의 자유가 인간에게 속박되지 않는 방식을 취한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자유로운 사역에서 인식하는 불합리(die Unangemessenheit aller Erkenntnis)를 인정했다. 바르트의 특징은 신학에서 테르툴리아누스처럼 불합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불합리를 주장했기 때문에 기독교 믿음, 계시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바르트는 불가지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Darum ist uns auch die Dreienigkeit Gottes unbegreiflich).

그런데 바르트는 교회에서 삼위일체론은 파악이 가능했다고 독단했다. 그리고 “삼중일적 신”의 개념이 진리라고 규정했다. 바르트는 삼위일체 교리(the Dogma of Trinity)를 인식한 학문 구조인 삼위일체론(Trinitätschlehre)으로 설정하고, 불가지론적인 자기 삼중일적 신 개념을 절대 진리(Wahrheit) 체계로 확정하고 있다. 학문은 논증을 통해서 더 완전하게 발전하는 것이 원리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자기 신 개념은 확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사한 주장은 톰 라이트도 한다. 톰 라이는 신의 단일 계획(God's single plan)으로 모든 논의를 진행한다.

바르트는 교회가 이해했다는 삼위일체론은 삼중일적 신으로 나가기 위한 삼위일체의 흔적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우리는 공교회의 문장인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실체"는 "이해한 문장"이 아니라 “고백할 문장”인 것을 밝힌다. 참고 박순경 번역에서 삼위일체 맹점이 반복된다. 그것은 Wahrheit der Dreieinigkeit를 “삼위일체의 진리”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삼중일적 진리”라고 번역하고 있다. 박순경 번역을 읽을 때 독일어, 영어를 참고해야 할 어휘가 ‘삼위일체’이다. 바르트는 삼위일체의 흔적들은 삼신론의 오류(Irrtum des Tritheimus)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남용을 중지시키지 않고(Abusus non tollit usum) 경고(Hinweis)로 사용하겠다고 제시했다. 바르트는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겠다는 조소(嘲笑)적인 표현이다.

바르트는 성금요일, 부활절, 오순절을 하나로 묶으면서 단지 하나님의 사역으로만 제시했다. 세 존재양식과 일성 구조를 확립하며, 창조, 계시와 화해, 구속의 구조를 제시하며, 아버지, 아들, 영 구조를 제시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하지 않고, 성령 강림이라고 하지 않고, 성금요일, 부활절, 오순절이라고 표현하며 한 의미, 하나님의 사역으로 단정해버렸다. 그리고 삼위일체 위격의 고유성을 거부하고 존재양식을 확정한다. 그리고 바르트는 하나님의 현존을 강조한다. 결국 신이 자유롭게 인간에게 인식되면 삼중일적 신이 행동하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식하기 때문에 신이 사역하는 것이다.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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