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이스라엘의 유목민적 삶과 그리스도인

 

미리토크 배경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다.

목사님과 세계역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주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번에 유목민 중에 대표적인 민족으로 유대인과 몽골인을 들었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몽골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네요. 몽골은 한국인과 비슷한 면이 많고 한국인과 가장 많이 닮은 민족이라 그 이야기가 더 관심이 가는 군요. 아시아의 몽골의 징기스칸은 서구의 알렉산더 대왕 보다 더 많은 땅을 정복했다고 알려졌는데 왜 역사에서 사라졌는지요?

12-13세기에 동양의 알렉산더라고 할 수 있는 몽골의 징기스칸이 있습니다. 징기스칸이 속한 부족은 나무도 없는 황무지에서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는 글도 모르는 야만인이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극복해 냈고 777만㎢의 땅을 정복한 사람으로 서양의 115만㎢을 정복한 나플레옹과 219만㎢을 정복한 히틀러와 348만㎢을 정복한 알렉산더를 합친 것 보다 더 넓은 땅을 정복했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입다. 당시 몽골고원 인구가 100만 명~20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로 중국, 이슬람, 유럽 사람의 1-2억 명을 정복했습니다. 몽골 나라 보다 10~200배의 덩치 큰 나라들을 무려 150년간 정복하고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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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는 강(Gan)과 쪼드(Dzud)라는 두 재앙이 있습니다. 강은 이상 기온에 따른 집중 가뭄이고 쪼드는 가뭄 뒤에 오는 강추위입니다. 이런 쓸모없는듯한 땅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가축이 죽으면 먹을 것이 없어 사람도 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전쟁이고 약탈이며 이웃부족의 정복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도구가 말입니다. 몽골인과 징기스칸은 말을 타며 정복을 이루었습니다.

듣고 보니 대단한 민족이네요. 유목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네요.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시지요

 

 

새로운 정복을 위해 계속 말을 타고 달렸던 징기스칸의 정복은 150년을 유지했습니다. 아직도 기록을 깨지 못한 대단한 정복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영원하지 못했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그가 죽으면서 점차 몽골은 지구상에서 미미한 존재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을 계속 타고 달리는 것은 육체의 힘이 있는 상황에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징키스칸은 말을 타고 달리다 말에서 떨어져 병을 얻고 결국은 인생을 마쳤습니다.

 아이러니한대요. 육신의 힘으로 정복하는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네요. 그런데 설명을 들으니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의미가 있네요.

 

그렇습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 돌궐 제국을 부흥 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이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톤유쿠크(Tonyuquq)는 몽골 제2제국의 ‘바가 타르칸’이며, 네 명의 칸을 섬겼다

그는 공간중심이 아닌 시간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징기스칸이 도구로 사용했던 당시에는 말이 가장 빠른 속도의 대명사였지만 그보다 더 빠른 대포가 발명되면서 유럽과 싸움에서 말보다 더 빠른 대포 소리에 놀라 힘을 못쓰는 말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몽골은 무너졌습니다. 더 큰 속도에 무너진 것입니다. 징기스칸에는 영원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한계에 부딪혀 큰 대제국이 한순간에 허무하게 사라졌습니다. 시간의 중요성을 깨우쳐 한때 세계역사를 가장 많이 지배했지만 그는 영원한 시간을 이해 못했고 거기에 그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유목민 중에서 몽골은 그렇게 사라졌는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대인은 어떤 점에서 다른지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대인은 옛 이름은 히브리인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어디서 출생했는가? 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들이 있습니다. 고대 기록에 의하면 하비루(Habiru) 라고 알려진 한 집단의 사람들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은 민족적인 집단이 아닌 근동 지방을 배회하던 유목민들이었다. 신명기 26:5에 야곱이 “유리하는 아람사람이다” 라고 언급된 곳이 나옵니다. 그들은 유목민과 같이 하찮은 존재로 이사야 말씀에 보면 “지렁이 같은 야곱아“ 의 구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대단한 민족이지만 실제는 버러지와 같은 아주 힘없고 햐찮은 존재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비루(Habiru)는 “먼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티끌은 오늘도 공중을 떠다닙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고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로 떠돌아다닙니다.

B.C 19세기 이집트 무덤 벽에 그려진 '하비루'들. 그들은 유랑민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이스라엘 뿐 아니고 우리 인간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성경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는 구절은 바로 티끌, 먼지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한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유목민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습니다. 한 국가의 인구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400년 동안 겨우 노예로서 정착한 애급도 결국 자기가 영원히 정착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역설적인 의미가 있군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지만 알고 보면 티끌과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있군요. 그것을 이스라엘 속에서 볼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하여 출애급하여 광야의 40년의 방랑의 생활을 했습니다. 광야생활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배우는 시기였습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하여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결국은 타락하여 초기에는 큰 왕국을 이루어 사울-다윗-솔로몬에 이르는 번성을 경험했지만 얼마 되지 못하여 나라가 분열하여 결국은 나라를 잃어버리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약 400여년 기간동안 정착 기간을 경험했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가서 다시 유랑민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빼앗긴 것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 간 것이었습니다. 애급의 노예생활로 다시 돌아 간 것이니 이스라엘이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했던 애급과 같은 땅에 다시 돌아 간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떠돌이 인생이었다는 이야기군요.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민족인데 그런 민족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 속에서 지금까지 떠돌이 유대인이 역사속에서 살아남은 그들이 터득한 비결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맞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음 시간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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