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9-17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나타납니다. 노아의 홍수를 지나면서 이전 하늘과 이전 땅이 사라지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하늘과 이 땅이 생겨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지금 이 하늘과 이 땅은 사라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성경은 하늘이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간다고 묘사합니다.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4-17)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2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 12-13)

요한계시록 21장은 이 땅에 하나님의 보좌가 임하는 장면으로서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그림입니다.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완전하게 임하는 그림이 계시록 21장입니다. 죄와 저주와 마귀와 악령들과 불신자들은 다 불못에 들어가고 이제는 아무런 해와 죽음과 병마와 고통과 슬픔과 저주가 없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통일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하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부활체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천사에 대한 묘사나 언급이 없습니다. 또한 사망이 없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망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부활체를 입은 주의 백성들이 다시는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망이 없습니다. 즉,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는 그 날에 하늘과 땅이 완전하게 통일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계시록 21장에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내용이 나오고, 새롭게 된 만물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유업으로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은 불못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둘째 사망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21장 3절에서 “하나님의 장막”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7장 15절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란 하나님의 성전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구약의 광야에서 지어졌던 성막은 하늘 장막의 모형 또는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1-2, 5; 참조, 히 9:23-25)

이처럼 하나님의 장막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거하시는 하나님의 보좌 및 지성소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장막이 새하늘과 새땅의 세상에서 이 땅에 내려오는 것이 바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는 사람이 사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가 실제로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2-23).

이때 하나님의 장막인 새 예루살렘 성에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참조, 계 21:27).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7장은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에 대한 언급이 있고, 하나님 보좌 주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즉,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장막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 땅에 내려오는 장막이 아니라 도리어 주의 백성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감으로 그들 위에 그 장막이 쳐지고 있습니다. 이는 주의 백성이 죽음을 지나 하나님의 보좌인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성령과 함께 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이 땅에서는 믿는 자들을 향한 배척과 핍박이 진행될 것입니다. 특히 역사 끝에 이르면 대환난이 있어서 그때 교회가 겪게 될 고통과 핍박은 로마 시대보다 더 심할 것이며,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심한 핍박이 될 것입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일제 식민 기간에 기독교는 심한 탄압을 받았고, 6.25 사변 등과 함께 공산당이 임시적으로 한반도를 차지할 때 그때 교회가 당한 핍박은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핍박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순교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마저도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사업을 할 때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분위기를 깨는 예수 쟁이라는 등, 함께 술마시며 타락하지 않고 또한 부정직하게 살지 않기에 미워하는 등, 예수님 만이 길이라고 외치는 것에 대한 미움, 지옥을 말할 때 혀를 차며 어리석게 여기는 조롱 등, 사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어려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난은 인류 역사 끝에 있게 될 ‘대환난’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불편과 고난은 대환난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장 하나님의 보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그림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 7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한계시록 7장은 신자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계시록 7장을 듣게 될 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주를 향한 믿음의 정절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키게 됩니다. 그 이유는 죽음 이후에 자신의 운명이 어떠할지 정확하게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7장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보좌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는 구별되는 영적인 세상으로서 천사가 있고 네 생물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당장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영적인 세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 세상이 바로 계시록 7장이 묘사하는 세상입니다. 그곳에는 어린 양이 있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

그러면 본문을 봅시다. 
먼저 9절에서 말하는 ‘이 일 후에’라는 표현은 계시록에 반복되는 표현으로서 이는 꿈의 장면이 넘어가는 것처럼 요한이 보는 환상이 장면을 바꾸며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그 환상은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계 1:2)

사도 요한이 이 환상을 보는 때는 밧모 섬에 있던 때로서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때입니다. 대략 주후 95년 또는 96년 경입니다. 그런데 이때는 이미 주후 70년에 로마 디도 장군이 유다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여 유대 민족이 로마의 식민국이 된지 대략 20년 이상이 지난 때입니다. 따라서 이 때는 예루살렘 핍박 때에 유대에서 도망친 그리스도인들이 아시아로 다 흩어져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세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황제들의 핍박은 계속 진행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도 요한이 본 것은 세상 모든 민족으로부터 허다한 영혼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환상을 보며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하… 엄청난 핍박이 성도들을 향하여 이 세상에서 진행되지만 도리어 모든 민족과 나라로부터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름떼처럼 많구나!”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하늘의 별들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많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도다”(창 15:5-6).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어떻게 이방 민족 가운데 성취되는지 설명합니다. 바울은 모든 이방 민족 가운데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7-8, 14, 29)

그러므로 계시록 7장 9절에서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와 환상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으로써 모든 나라와 족속, 그리고 온갖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하늘의 별들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많은 백성이 구원을 얻는 사실을 묘사한 것입니다.

또한 9절에서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14절에 보니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은 자들입니다.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씻겨주시고, 그 대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를 믿음 가운데 옷 입은 자들이 흰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완전한 의의 옷을 입고 죽음을 지나기 때문에 승리의 상태가 됩니다. 즉, 영광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 상태가 바로 손에 종려 가지를 든 상태입니다. 이 상태는 자신들에게 승리를 안겨준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감사와 영광과 환호를 외치기 위해 손에 종려가지를 든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려 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큰 무리가 따르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 12:13)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는 불신자들도 끼어서 덩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였고 또한 예수님이 세상 나라의 왕으로서 오신 것이 아닐까 하여 환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흰 옷을 입은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진정 거듭난 자들로서 영원토록 그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환영하며 외치는 자들입니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만일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흰 옷을 입고 이 세상에서 죽게 되면 곧바로 하나님의 장막이 있는 하늘로 들어가서 승리의 감사와 감동 가운데 그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큰 소리로 외치게 될 것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들은 무엇에 대한 승리를 외치고 있습니까?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죄에 대한 승리입니다. 율법의 저주에 대한 승리입니다. 사탄에 대한 승리입니다.

이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완벽한 증거는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하는 영원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였지만, 죽음을 지나고 보니 어린 양을 믿고 따르던 우리들은 하나님의 장막이 있는 그 보좌로 나아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이 완벽한 교제는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그곳에 보니 장로들이 있습니다. 24장로입니다. 구약의 12지파 대표이며, 신약의 12사도를 의미합니다. 또한 네 생물이 있습니다. 네 생물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보좌 바로 곁에 영원토록 서 있는 존재로서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다 알 수 없습니다. 보통 우리는 그들을 ‘그룹’이라고 부르며 가장 뛰어난 천사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네 생물이 어떤 존재들인지 우리는 지금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린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흰 옷을 입은 허다한 무리들이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큰 소리로 찬양하며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들과 모든 천사와 네 생물이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외쳤습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네 생물과 장로들과 천사들은 흰 옷 입은 큰 무리의 찬양에 화답하는 찬양을 돌렸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보좌와 나라는 구원 받은 백성들과 모든 천사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찬양으로 계속 울리면서 영원한 영광과 복이 차고 넘치는 상태로 이어집니다.

이때 장로 중에 한 분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요한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 장로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있는데 그들이 누구인가?”라고 물은 후에 친히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그들의 옷을 어린 양의 피에 씻어 희게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15절의 ‘그러므로.’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 하나님과 쉬지 않는 교통과 사랑을 나눈다. 하나님의 장막이 그들 위에 있다. 그들은 다시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상함도, 해함도 없다. 또한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왜요? 바로 14절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래서 ‘그러므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4절에서 언급되는 ‘큰 환난’은 역사 끝에 있게 될 특이한 환난으로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이 세상의 모든 교회를 철저하게 탄압하는 때를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이 이 환상을 본 그때부터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큰 환난이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온 세상에 진행될 것이며 또한 계속 이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대적을 당하면서 곳곳에서 환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완전한 위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 직후에 우리가 어떤 상태에 이르는지를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지나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는 내 영혼 전체가 완전한 만족과 평강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염려도 사라질 것이며 그 어떤 실패나 속상한 일들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영혼의 목자가 되어 우리 영혼은 끝없는 생명수를 마시며 감사와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에 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안식의 상태로 있다가 ‘인자의 날’에 부활체를 입고 하나님의 장막이 이 땅에 내려오는 새하늘과 새땅의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면 다시는 죽음도 애통도 아픔도 상함도 없을 것입니다. 온 땅의 모든 피조물들도 완전한 평화와 건강과 사랑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모든 동물을 포함한 만물 역시 ‘인자의 날’을 기다리며 새하늘과 새땅의 도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 8:18-23).

사랑하는 여러분!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더 늙어갑니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어느날 반드시 죽음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생각보다 세월이 너무 빠릅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더라도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는 죽음 앞으로 성큼 성큼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누구나 얼마 후에 죽음을 지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식으로 죽음을 지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병에 걸려 죽음을 지날 수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지날 수 있고, 자연스럽게 늙어서 죽음을 지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 죽음을 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 우리가 죽음을 지날 때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거듭난 자는 곧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만 오늘 이 시간에 점검합시다. 여러분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은 의의 옷을 입고 있습니까? 나는 흰 옷을 입은 그 큰 무리에 속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은 의의 옷을 입고 있습니까?

또한 한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흰옷을 입은 것을 의식하는 자들마다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수천만원짜리 고급 양복과 양장을 입은 과소비형 신사 숙녀는 그 깨끗하고 비싼 옷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운지 모릅니다. 
하물며 완전한 의인이신 어린양 예수께서 그 피로 값주고 사셔서 주신 흰 옷을 입은 우리들! 만일 그 흰옷을 의식한다면 과연 그 흰 옷이 더러워지도록 함부로 죄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그 흰 옷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결단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깨끗하여진 옷을 입은 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19. 22)

그리고 바울의 주의 백성을 향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 3:12-13)

또한 우리를 그 피로 희게 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

우리 중에 아직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성령께서 여러분의 문을 두드리시며 구원의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만일 오늘 그리스도의 피로 여러분의 죄를 사함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자기 죄 값을 스스로 치러야 하는데 치를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에 갇혀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그리고 나의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한편, 이미 거듭난 신자들은 다시 한 번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월이 빨리 흘러 죽음이 한 걸음 더 가까이 왔구나 하는 것을 의식하며 어린 양 예수님 앞에 설 날을 더욱 준비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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