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독수리의 양면성

다섯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전에 독수리가 큰 소리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외친다. 한글 성경은 독수리로 번역했지만, KJV에는 “앙겔로스”(ἄγγελος) 즉 “천사” 또는 “메신저”로 되어 있다.

따라서 천사와 독수리의 상관 관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막에 들어가면 성막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 안에는 성막의 뜰(땅)과 성막이 있다. 성막 뜰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성막 안에는 레위인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성소는 하늘을 상징한다. 동물 중에서 하늘과 땅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새이다. 그리고 새 중에서 독수리는 리더를 의미한다. 즉 하늘인 성소와 땅인 성막 뜰을 왕래할 수 있는 사람은 레위인 제사장들인데, 그들은 말씀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이들이므로 그들을 독수리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독수리 날개로 새끼는 품는 이야기도 나오며,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하며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친다고 한다. 즉 독수리의 역할을 하는 교회의 리더들은 주님의 자녀를 품어주고 주께로 인도하는 역할도 하지만, 반면에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자기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달려드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을 말한다.

성경에서 독수리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양면으로 쓰인다.

▶ 긍정적인 면: 보호, 인도, 양육

성경에 쓰인 ‘독수리’의 히브리어는 ‘네쉐르’(נֶשֶׁר)이다. 독수리의 날개 길이는 수컷이 84인치, 암컷은 92인치 정도이며, 날개를 펼치면 약 3.5미터까지 달한다고 한다.

중세 프랑스의 유대 랍비 학자 ‘라쉬’(Rashi)는 대부분의 새들이 그들의 다리 사이에 새끼 새를 품고 나는 이유는 새끼 새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며, 독수리가 새끼 새를 날개 위에 올려놓고 날으는 이유는 독수리를 공격할만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독수리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쏘는 화살 밖에 없는데, 아무리 길게 쏘는 화살도 독수리가 워낙 높이 날기 때문에 독수리에게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수리는 여유있게 새끼들을 날개 위에 얹고 비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무도 하나님을 대적할 적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마치 독수리가 새끼들을 날개 위에 업는 것처럼 업고 인도하며 보호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 32:11-12)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 4:7)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계 12:14)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5)

▶ 부정적인 면: 심판, 부정함, 병들거나 죽은 것(동물, 사람의 영혼)을 먹음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는 하나님께서 깨끗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나누어서 하나님의 백성은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룩한백성(성민)”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구별해주시면서, 부정하여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을 이방인들에게는 팔아도 괜찮다고 하셨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신 14:2-3)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찌니라.”(신 14:21)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찌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레 11:13)

하나님께서 새들 중에 먹지말라고 하신 것들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새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들을 ‘맹금류’라고 하는데, 이 새들의 특징은 성질이 사납고 빠르다. 또 시력이 상당히 좋아서 아무리 멀리에서도 먹이감을 발견하고 발견하는 즉시 재빨리 수직으로 날아와 순식간에 먹이감을 낚아챈다. 

날카로운 부리와 강한 발톱으로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채어 눈과 입을 물어뜯기 때문에 감히 당해낼 수가 없다. 대부분 죽은 동물을 먹지만, 살아있는 것일 경우는 다치거나 병든 먹잇감을 잘도 찾아내어 공격한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마 24:28)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신 28:49)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 30:17)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호 8:1)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당한 자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욥 39:27-30)

독수리를 비롯한 맹금류들이 머리에서부터 목까지 털이 없는 이유는, 죽은 동물을 먹을 때 머리를 사체 안에 넣고 빼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독수리의 독(秃)은 ‘대머리’를 뜻하므로 머리에 털이 있는 것은 ‘수리’라고 하며, 털이 없는 것을 ‘대머리 수리’ 즉 ‘독수리’라고 한다. 

죽은 동물의 내장을 먹기 위해 사체에 머리를 넣었다 뺄 경우, 털이 있으면 이물질들이 털에 뭍어서 깨끗이 씻지 않으면 병균이 생겨서 탈이 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모든 만물을 신묘막측하게 만드셨다.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미 1:16)

땅에 거하는 자들

계시록 8장 13절에서는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한다. 성경에서 새는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데, 그 중 하나가 영적인 리더를 뜻하는 것으로 하늘(성전)과 땅(성전의 뜰)을 왕래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땅에 거하는 자들'의 의미는 제사드리기 위해 제물을 갖고 성전의 뜰에 들어온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성전 뜰만 밟을 뿐, 거룩히 구별된 성전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해서 성전이신 주님을 알 수 없다. 즉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종교생활을 하지만, 정작 계시록 1장에 나오는 감히 죽은 자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는 요한이 본 주님의 모습을 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이들을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불행히도 이들은 교회에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교사 등의 직분을 갖고 열심히 헌신하며 봉사하지만, 아직 거듭나지 않아서 성전의 뜰만 밟고 집에 돌아간다. 진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지 못하고, 성령 세례도 받지 못한 채 매주일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희생하고 헌신한다. 매일 새벽기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 등 교회의 모든 모임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고 교회의 수많은 일에 봉사 헌신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위가 땅만 밟을 뿐이며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2-13)

더 나아가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해서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신다. 즉 제사를 위해 동물을 죽일 때 자신의 죄를 동물에게 전가해서 진심으로 속죄해야 하는데, 형식적이며 습관적으로 하므로 그저 동물을 죽일 뿐이므로 그들이 하는 제사는 살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살생이 예루살렘성전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그곳에 화를 선포하는 것이다.

독수리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는 것처럼 화를 외치는 장면은 계시록 18장에도 나온다. 18장 10절과 16-17절을 보면, 천사가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에게 화가 있다고 외친다. 

계시록 11장 8절을 보면,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라고 한다. 즉 주께서 못 박히신 예루살렘이 바로 영적으로 소돔이며 애굽이라는 말이다.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큰 성 바벨론은 소돔이며 애굽이 되어버린 예루살렘성전이다. 따라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애굽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말하는 것이며, “성전”인 우리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땅”에 대해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하며, 예레미야 4장 23절에서도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4장 26절에서는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라고 말씀한다. 

성경에서 “땅”이나 “밭”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거듭나기 전의 우리의 마음은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임을 말씀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마귀나 악한 일을 하는 자를 나와 관계없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서 강퍅한 바로왕과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유다가 바로 “나”라고 성경은 말씀하는데, 우리는 모세나 사랑의 사도 요한을 “나”라고 생각한다. 

또 “주는 그리스도시요”라며 고백하던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주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면 안된다고 붙들므로 예수님으로부터 “사단아”라는 말을 들었던 베드로나,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던 베드로를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을 잡아죽이는데 열심이었던 사울이나 예수님께 책망받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할 수도 없고 영생의 복과 관계없이 성전 뜰만 밟고 종교생활만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성경에서 마귀나 악한 일을 행하는 자나 주님으로부터 책망받는 자를 보면, “아~ 이게 바로 나구나”라고 인정을 하고 읽어보라. 그리고 고백을 해보라. 저절로 은혜의 강이 흘러 넘치게 될 것이다.

화를 선포하는 독수리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예수께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여..."라고 하시며, 예루살렘의 리더들을 향해 화를 선포하신다. 이는 계시록 18장 10절과 16-17절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이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에 임할 화를 말씀한다.

계시록은 중동지역에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휴거와 대환난이 있을 것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계시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며, 인간이 지은 건물 성전이 어떻게 무너질 것인지를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그 성전이 무너지고 주님의 군사이며 신부이며 성전인 우리가 어떻게 진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천국을 이루게 되는지를 말씀한다. 따라서 독수리와 천사가 화를 외치는 것은 유대인들이 우상처럼 섬기는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성경을 모르는 자들은 제3성전을 세워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려고 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건물 성전을 무너뜨리고 몸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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