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4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종이라는 단어는 원어로 ‘둘로스’라고 하는데 그 정확한 뜻은 ‘빚진 자’라는 뜻입니다. 종종 노예로 번역하기도 하고 사환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둘로스는 생명을 빚진 자라는 뜻입니다. 채권자에게 빚을 갚기 위해 종으로 섬기게 된 사람을 둘로스라고 합니다.

즉,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무한한 빚을 졌기 때문에 영원히 갚을 수 없는 그 빚을 갚으려고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을 ‘둘로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신 그리스도를 향해 빚진 심령을 갖게 될 때, 그분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죽도록 충성하고자 스스로 ‘둘로스’가 되려 할 것입니다. 즉, ‘둘로스’는 한없는 감사함 때문에자발적으로 죽기까지 그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오직 예수님께 절대 복종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러한 다짐은 오직 은혜로 됩니다. 즉, 지옥에 합당한 자신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구원하신 것을 감사하는 만큼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절대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사도의 조건은 주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만났으니 사도의 자격이 됩니다. 특히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임명한 자로서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담당하고 전하는 자를 말합니다. 바울은 히브리서를 포함할 경우 14권, 히브리서를 생략하면 13권의 계시를 그리스도로부터 받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습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어둠 속에 빛을 가져오고, 죽음에 생명을 비치는 진리의 소식이 복음입니다. 주께서 죄와 마귀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구약 4천년 동안 메시아라는 분의 오심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가장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고, 죄 문제가 완전하게 다루어질 것이고, 어둠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즉, 복음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이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로 택함 받은 것입니다.  

2절에 보니, 이 복음은 선지자들을 통해 구약 성경에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물론 그 약속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죄 짐을 지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잠깐 내려놓으시고 연약한 몸과 인성을 취하심으로 사람이 되신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해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습니다.

구약을 보면, 나단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장래 어떤 때에 다윗의 왕 위를 이어 영원한 나라를 상속 받을 그 왕이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11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1-13)

다니엘 역시 어떤 인자가 오시면 그 분은 다윗의 왕권을 이 땅에 세워 영원한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물론 그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44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7: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2:44; 단 7:13-14)

그러므로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셔서 다윗의 뒤를 이은 영원한 나라의 왕, 곧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또한 4절을 보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사건으로서 예수 그분은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이심을 알려줍니다. 이에 베드로가 선포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합니다. 하지만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4절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원어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ou/ o`risqe,ntoj ui`ou/ qeou/ evn duna,mei kata. pneu/ma a`giwsu,nhj evx avnasta,sewj nekrw/n( VIhsou/ Cristou/ tou/ kuri,ou h`mw/n( )

(투 호리스쎈토스 휘우 쎄우 엔 두나메이 카타 프뉴마 하기오순네이스 엑스 아나스타세오스 네크론, 예수 크리스투 투 크리우 헤이몬)

자, 지금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인데, 그분은 인성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왕으로서 영원한 나라를 이 땅에서 영원히 다스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요 토대입니다.

사실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전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말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되기 보다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체험함으로 그러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온 천하에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과 만유의 주가 되셨는데, 이로 인해 그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아들이셨다는 사실이 온 천하에 입증되었다는 것이 4절의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을 만났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온 땅이 아는 공개적인 사건임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6-28)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은 온 세상이 알 수 밖에 없었던 공개적인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음을 말합니다. 물론 그의 인성으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 16:19).

그런데 사복음서를 통해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특이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부활에 대한 지독한 무지와 불신입니다. 마가복음만 보더라도 그 현상을 뚜렷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막 9:9-10, 30-32)

누가복음도 동일하게 강조합니다.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눅 18:33-34)

심지어 예수님이 참으로 부활하신 이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막 16:9-13)

누가도 뚜렷하게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더라.](눅 24:8-11)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친히 확인하지 않으면 부활은 제자들에게조차 믿기 힘든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4절을 더욱 깊게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결의 영으로는”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표현은 로마서 서두에서 3절의 ‘육신으로는’이라는 말과 대조됩니다. 즉, 예수님의 정체를 언급하는 복음의 입장에서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영으로는’ 어떠하신 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야 문맥에 자연스럽습니다.

원어로 보면 이 대조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육신으로는”은 “카타 사르카”라고 되어 있고, “성결의 영으로는”은 “카타 퓨뉴마 하기오순네이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영으로는”이 주된 내용이고 예수님의 영은거룩하기에 “거룩한 영으로는”이라고 표현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결의 영으로는’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과 다른 위격이신 ‘성령으로는’ 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성령으로는’이라고 말하려면 “카타 퓨뉴마 하기오순네이스”라고 해서는 안되고 “엔 퓨뉴마티 하기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4절을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번역하면 크게 오역한 것입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이고 그의 거룩한 영에 따라 부활하셨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즉, 그분의 영은 거룩한 영이기에 부활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거듭나면 새 사람을 입게 되면서 그의 영이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은 거듭난 사람이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죄성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성령을 따를 것인지에 따라 삶의 열매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 역시 사람으로써 사람의 몸을 가지고 계셨고, 또한 사람으로써 영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그분의 영은 완전하게 거룩한 영이셨고, 또한 성령과 무한하게 연합되어 있으셨습니다. 사실, 우리 주 예수님의 영은 완전하게 성결한 영이셨다는 점에서 우리 죄 많은 인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와 동일한 인성을 갖고 계셨습니다. 즉, 우리처럼 몸과 영혼을 갖고 계셨습니다. 단지 그분의 영은 우리 죄인들과는 달리 성결한 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는 사실은 객관적인 증거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너무나 많지만 그 증거는 영적인 세계에 속한 것들이라 믿음이 없이는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눈이 먼 자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과 초자연적인 행위를 보면서도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특히 십자가 사건 및 부활을 보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그들의 완고함과 강퍅함의 문제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믿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영적인 것들을 알 수도 없었고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볼 때에 오직 눈에 보이는 것들과 이성에 맞는 것들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볼 때는 예수님을 ‘그 선지자’, 곧 메시아로 인정하습니다. 그러나 죄로부터의 구원과 영생과 부활을 친히 말씀하실 때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내고 입증할 수 있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눅 7:34)라고 비난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거룩입니다. 이 사실을 아십니까? 즉, 죄와 완전하게 무관하시며 죄와 무한히 멀리 계시고, 심지어 아무리 작은 죄라도 하나님은 무한히 싫어하시고 혐오하시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렇지 않고 머리털 만한 죄라도 즐기신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의 가장 중요한 속성 역시 거룩입니다. 개역 개정은 뜬금없이 (하기오)를 성결로 번역했습니다. 아마도 거룩한 영이라고 하면 성령으로 오해할 것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역시 ‘거룩하신 영’으로서 완전하게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4절은 예수님의 영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거룩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단 한번도 거룩에서 벗어난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거룩한 상태에 있었다면 그들은 당장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거룩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한 자’라는 칭호가 특별하게 부여되었고, 그 칭호는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에게 구별되어 붙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하라”(겔 39:7).

다윗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에 대해 ‘거룩한 자’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0-1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약의 교회를 대표하는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9).

그리고 마침내 예수께서 친히 자신에 대해 선포하셨습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요 10:36).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역시 죄인들과는 달리 성결의 영을 지닐 수 밖에 없었고 비록 사람이 되셨어도 그의 영의 거룩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눈 먼 자들에게는 거룩이 보이지 않았고, 거룩에 관심이 없었으며 따라서 거룩한 자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도리어 성결의 영으로 이 땅에 와서 살아가시는 예수님을 보며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하며 그를 멸시하고 배척하였습니다. 심지어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마저도 그분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는 주 예수님께 흠모할 만한 것이 참으로 없기 때문이 아니라 죄인들의 마음과 눈의 관심이 더러운 것들, 곧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거룩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더러운 죄인들의 관심은 거룩이 아닙니다. 따라서 거룩한 자가 이곳에 오셔도 전혀 관심이 없을뿐더러 불편을 느끼며 배척할 것입니다. 죄인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입니다. 따라서 죄인들은 자기의 배를 채워주고 자기를 영화롭게 해주고 자기에게 능력을 주는 그러한 대상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거룩하신 영이신 성령께는 무관심을 보입니다. 무엇보다 성결한 분, 곧 거룩한 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혐오하고 싫어하며 배척합니다. 하지만 성삼위 하나님의 관심은 도리어 오직 거룩입니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지라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심지어 그분이 초자연적인 일들을 행하실지라도 만일 그분의 말씀과 삶이 그들의 정욕을 정죄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흔든다면 당장 서로 힘을 모아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려고 할 것입니다. 왜요?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 자신의 더러운 탐욕에 있을 뿐, 거룩 및 거룩하신 하나님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으로 다시 오실 재림의 때의 특징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신 거룩한 자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 배척이 도를 넘어섬으로 하나님은 주의 거룩한 자를 심판주로 보내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25-26).

즉, 사람들이 더더욱 거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그 세대에 주 예수께서 재림주로 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밖으로 나아가 거룩에 대해 언급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저한 무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제가 어떤 교회에 초청을 받아 설교하게 되었는데, 사랑에 대해 설교했더니 한번 더 초청하였고, 두 번째 설교에서 다니엘처럼 거룩하라고 설교했더니 아무도 반기지 않았습니다. 즉, 교회마저 거룩에 대한 설교를 회피하고 싫어합니다. 하물며 이 세대의 불신자들은 얼마나 거룩을 싫어하며 거룩한 자, 예수님을 싫어하겠습니까? 그들은 지금도 오병이어로 경제 기적을 행하고, 능력으로 병마를 제어하는 그리스도에게만 관심이 있지, 거룩함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께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처럼 이 시대의 일반 사람들의 그리스도 관은 대단히 그릇되어 있기에 결코 복음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결의 영을 싫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어떻게 입증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이 시대에 그리스도를 어떻게 전파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모든 사람들로부터 구별시키는 유일한 사건을 언급해야 합니다. 그 사건은 바로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로서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부활은 우리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가장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예수님에 대해 가장 중요한 진리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거룩한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값을 치를 수 있는 의인입니다. 또한 동시에 그분의 신성으로 인하여 주의 대속은 무한한 효력을 갖게 됩니다. 이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이며 거룩한 자이시고 나아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4절을 원어로 보면, (evx avnasta,sewj nekrw/n)(엑스 아타스타세오스 네크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원어 그대로 하면 “죽은 자들의 부활을 통해”, 또는 “죽은 자들의 부활로부터”라는 뜻이 됩니다.

이 표현은 매우 의도된 표현으로 보입니다. 즉, 죽은 자를 부활시키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뜻도 되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활하셨다는 뜻도 됩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5-27)

그러면 먼저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심”으로 보면, 예수께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셨다는 뜻으로서 그분은 생명의 주로 입증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된 사건으로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그리고 자기 백성을 돌보신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습니다.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눅 7:11-16)

무엇보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그 누구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더라](요 11:29-45)

예수님을 믿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들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라고 믿은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친히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자신은 거룩한 자, 곧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되셨습니다. 

이에 바울이 증언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언급하면서 엄청난 복음의 핵심을 전합니다.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5-39)

베드로 역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근거로 복음을 전합니다.

[30 (다윗)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0-36)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가 서 있는 객관적 증거는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에 서 있지 않은 복음은 거짓 복음이며 거짓 선지자요, 거짓 선생이며 거짓 사도입니다. 거짓 교회입니다. 이단들을 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의부활에 서 있지 않으며 그들의 교주 역시 죽은 후 부활한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오직 참 기독교만이 부활에 서 있고 부활하신 그 분은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대속하신 하나님의 아들 거룩한 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3-20)

이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명의 주이시며, 영원한 빛을 주시는 구원주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이러한 분명하고 풍성한 증거가 있는 복음을 믿지 않음에 대해 핑계할 것이 없을 것이며, 신자인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완벽한 증거와 함께 우리의 믿음을 담대히 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무한하게 분명한 객관적인 증거 위에 기독교의 교회가 서 있습니다. 즉, 기독교의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거룩한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하여 서 있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며 또한 생명과 부활의 주이시니, 교회가 믿음을 잃지 않는 한, 결코 교회와 신자들을 패배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그 누구도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사교나 세상 종교는 그 바탕이 허무한 것에 서 있기에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위에 서 있는 교회는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18)

이것이 바로 “선포되셨다”는 뜻입니다. 원어로 (호리조)입니다. 즉, 원래 예수님은 거룩한 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부패한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니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부활의 사건들을 통해 그분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되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확인되었다. 그래서 공적으로 선포되셨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만왕의 왕과 만유의 주로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생명과 부활의 주이시니 장래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주를 믿는 모든 자들을 영광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 예배와 함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가운데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그래서 오늘도 믿음으로 살며 승리하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