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시간은 성장의 또 다른 기회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저서, 충성된일꾼되어가기 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듣는 익숙한 용어가 있다. 웰빙과 웰두잉, 웰에이징, 웰 다잉이란 용어이다.

 

웰빙(well-being)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며,

웰두잉(well-doing)은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환원을 통해 기여하는 것이며,

웰에이징(well-aging)은 사람이 사람답게 늙어가는 것이며,

웰다잉(well-dying)은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것이다.

 

웰두잉이 없다면 웰빙의 삶도 없다.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나도 행복하고 공동체도 행복한 비결이 무엇인가? 웰두잉의 삶이 있을 때 웰빙의 삶도 있는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서로 관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웰빙, 웰두잉, 웰에이징, 웰다잉이 서로 연결되어질때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의 노인 심리학자 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늙어가면서, 사람이 마지막을 품격있게 마무리하는 웰다잉은 축복이다.

중세 수도사들은 ‘죽음이란 삶에서 은퇴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은퇴할 것인가는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미리 건강한 죽음을 맞이할 것을 준비할 때 아름다운 은퇴를 할 수 있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죽음은 즐겁게 기대하고 만나야할 통과의례이다. 그러나 준비가 안된 죽음은 아주 불행하다. 삶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무리 시간이다.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마감하는 시간은 마지막 주어진 ‘성장의 기회’이다. 그러나 준비가 안 된 죽음은 마지막이 본인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고통의 시간이다. 마지막이 다가오면 보통 정신적, 육체적, 지적, 감정적, 영적 관리가 안된다. 무기력하게 무너져내려간다. 그러나 죽음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면, 마지막이 오히려 모든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의 시간' 이 된다.

 

웰다잉은 평소 죽음 교육을 통해서 죽음의 실체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의학적, 철학적, 학술적, 종교적, 문화적 죽음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또한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질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죽음’이란 주제에 친숙해져야 한다.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실제적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유언장, 장기지증서, 장례예식,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등에 대해 평소 죽음 교육을 통해 준비할 때 죽음이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가 되고 품격있는 마무리가 된다.

 

품격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제도로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가 있다. 사전의향서는 만약 임종을 앞두고 의식을 잃어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미리 써 놓는 것이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건강할 때 써둘 수 있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미리 국가 전산망에 기록해두는 문서다. 그러나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나 임종기에만 작성이 가능하다.

 

2월 4일은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전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임종을 앞에 두고 회복할 가망이 없을 때 환자의 뜻대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인생의 길에서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란 공포가 찾아와서 돌이킬 수 없을 때,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품위 있는 마무리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죽음 사전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무의미하게 연장하기보다 생을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전한다.

 

목회자들은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성도의 삶을 지켜보면서 영원히 사는 길을 목양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안된 분에게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환자는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는 데도 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렬해지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는데,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생명을 붙들고 싶어하는 분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도가 단순하게 위로만 빈다면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한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죽음에 대한 교육이 평상시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대화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평상시 죽음에 대한 교육이 준비가 안된 경우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때가 많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 교육은 삶의 마지막이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다가온다.

 

설 명절은 온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들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위한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면 좋지 않겠는가? 최소한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가 왜 필요한지를 함께 나누는 토론이 필요하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면,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죽음앞에서 본인과 온 가족이 허둥지둥하며 갑론을박으로 서로 시간과 감정에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할 때 죽음의 시간은 의미와 가치를 향한 성장의 기회가 된다.

 

◐ 웰다잉 십계명

(1)삶의 주체는 '나', 죽음도 예외는 아니다. 직접준비하자.

(2)장수에 얽매이지 말자. 살 때까지 살 것인가, 죽을 때 까지 살 것인가?

(3)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앞에서 세상을 들여다보자

(4)때때로 묘지를 산책한다

(5)가족과 식탁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단, 연장자가 꺼내는 게 좋다

(6)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권력, 선택을 남에게 넘기지 말자

(7)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자, 마지막 순간에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

(8)먼 친척 증후군을 경계하자. 임종직전에 찾아오는 먼 친척의 훈계나 조언은 분란의 싹이 되기 십상이다. 환자와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9)호스피스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10)죽음 교육이 필요하다. 꽃병 속의 꽃도 언젠가는 진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