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17

5 그(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오직 은혜에 의해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임한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받을 만한 공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서 볼 때 바울에게 합당한 것은 오직 영원한 수치와 형벌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인식하였습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 영생을 받아 누리게 되었으니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이방인들을 향해 주의 은혜를 전파할 수 있는 사도의 직분까지 받았으니 어찌 그 은혜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바울은 주의 ‘은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깊게 체험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전파란 다름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었지만 무조건적인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처럼 주를 섬길 수 있는 기회까지 얼마든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쉼 없이 주의 은혜를 찬송하며 노래해야 할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복음을 전함은 마치 보험을 드는 그러한 반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른 복음이 전파되면 사람들은 그 복음을 믿고 반드시 순종하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 가운데 믿어 순종하는 자들이 생겨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즉, 참 믿음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향한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자가 복음을 듣고 순종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복음을 믿지 않는,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이거나, 또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잘못된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5절은 바른 복음이 전파되면 그 복음을 믿는 자, 곧 구원 받은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니, 복음을 듣고 거듭난 자들은 그리스도께 영원히 속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택함 받은 자들로서 복음과 함께 성령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예수님의 것, 즉 예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뜻은 주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율법의 공의로운 형량을 치르시고 우리를 사셨다는 뜻입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지금 바울은 로마에 있는 거듭난 자들에게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6절의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이에 바울은 7절에서 그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축복합니다.  

무엇보다 8절을 보니,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삶이 불신자들로 가득한 로마에서 널리 알려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로마 시대에 로마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바쳤으며, 철저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충성하며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믿음을 갖게 되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소식이 온 세상에 퍼지는 현상이 당연히 있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 감사 드리면서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보려고 추진합니다. 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로마에 있는 주의 신자들의 유익을 위해 만나고자 한 것입니다.  

이에 11절을 보면, 그들을 만나 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어떤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이 견고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떤 신령한 은사”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말미암는 풍성한 은혜들을 말합니다. 가령, 바른 교훈, 깨달음, 권면 등입니다. 무엇보다 거룩함과 온전함에 이르는 복음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요, 거룩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로마서 12장에 언급된 교회의 덕을 위한 성령의 은사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바울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서로 나누게 되면 “피차 안위함을 얻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너희가 견고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바울은 그들을 방문하려는 이유를 “열매를 맺게 하려 함”(13절)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열매"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자 자신의 성결의 열매요, 둘째는 다른 사람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전도의 열매입니다(참조, 요 15:1-6; 눅 13:6-9; 막 11:11-14, 20-21).

그러므로 11-13절에 의하면, 바울이 나누는 영적인 은사 또는 은혜로 인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얻고 견고하여질 것이고, 그 후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열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사랑하는 여러분!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택한 자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들이 영적(靈的)으로 결실하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요 15:16). 

이러한 열매가 생겨나면 하나님은 크게 영광 받으십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또한 복음 전파와 함께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은 본문 13절에 보니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라는 사실입니다. 즉, 바울의 사역마저도 하나님께서 길을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하셨습니다. 이는 복음의 일에 관한 한, 내 뜻대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의 일은 나의 성취감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길이 열리면 달려가는 것이요, 막히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브라함처럼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이라는 비참한 열매를 맺게 되고, 롯처럼 암몬과 모압이라는 복음의 원수들을 열매로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역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생각과 내 열심이 아니라 권위 질서 속에서 주의 뜻에 따라 순종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14-15절을 보겠습니다. 그 구절을 보니,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 때문에 빚진 심정을 갖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특히 그는 로마에 대해 복음 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5). 

그런데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바울은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15절의 ‘너희’는 6절과 8절을 참조로 할 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들은 구원 받은 자들인데 왜 그들에게 또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까?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복음의 대부분이 주의 백성을 위한 교훈으로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그들의 성품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복음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지, 어떻게 죄 문제를 해결하여 승리의 자리에 설 수 있는지,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경륜은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즉, 복음은 성도들이 인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알아야 할 내용들을 전합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지만, 오늘 이 시간에도 또 복음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왜요? 더욱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령한 주의 백성들이 되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무한히 누림으로 참된 풍성한 행복과 기쁨과 평강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 힘을 얻어 주의 계명에 순종하고 이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풍성한 의의 열매들을 맺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기 위함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복음 전하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간절함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14절에 보니, 빚진 심령입니다. 그렇다면 그 빚진 심령은 어떤 사건에 의해 어떻게 갖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남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과 자비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무한한 빚진 심령을 갖게 하였고, 그 빚진 심령을 갖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 온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인 것을 알고, 또한 성도들에게 더 깊은 복음을 전함으로 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여지고 또한 순종을 통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버지의 기쁨인 줄 알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불신자들에게는 구원의 기회로서 복음을 전했고, 신자들에게는 더욱 믿음을 견고하게 하여 열매를 맺는, 주의 기쁨 되는 주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무한한 자비 때문에 빚진 심령을 갖게 된 바울은 그를 구원한 그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을 항상 안고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무한한 빚진 심령! 이것이 구원 받은 성도들과 또한 참 교회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알릴 거룩한 빚이 있습니다. 이 빚진 심정을 호흡이 마치는 그날까지 지닌 자들이 성령님께 쓰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러한 빚진 심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의를 위해 열정을 갖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해 빚진 심정을 가진 자들은 자기 사욕과 야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위해 복음 사역에 힘쓰게 됩니다. 오직 복음에 빚진 심정을 가진 자들만이 평생 그 빚을 갚으려는 노력 가운데 부지런히 꾸준하게 인내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아름다운 빚진 심령을 어떻게 유지하며 또한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을 통해 묵상할 때 우리의 빚진 심령이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심령을 붙들어주시는 분은 주께서 보내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빚진 심정을 늘 갖고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언제나 주의 은혜에 빚진 겸손한 심정으로 살게 해 달라고 주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의탁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류를 향해, 그리고 모든 교회를 향해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을 향해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얻도록 하는 사명과 빚을 지고 있고, 교회를 향해서는 그들이 견고하여져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만드는 그러한 사명과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를 원했고, 그들을 통해 수많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미 설립된 교회를 주의 복음으로 견고하게 세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 소원이 얼마나 컸으면 바라고 소원했다는 말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은 복음에 대해 무한한 빚진 심령을 가지고 살고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빚진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오직 복음의 은혜를 갚기 위해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또한 내부의 성도들을 견고하게 하여 열매를 맺도록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저와 우리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복음에 대한 이러한 빚진 심정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늘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은혜에 젖어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복음에 빚진 심정을 늘 갖도록 서로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6절과 17절을 보니,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 

지금 바울의 이 말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신자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자세를 가질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다른 신자들보다 용기가 더 많다는 뜻입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신자들은 용기가 없어서 그러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용기가 많아서 그러한 것입니까? 혹시 길 가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주눅든 적이 있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용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알고 있다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 다시 15절을 보면, 신자들 중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암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입니다. 

로마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로마는 이 땅의 영광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구약에서의 바벨론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외국인들은 로마 시민권을 대단히 부러워했습니다. 심지어 바울조차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세상을 자랑하고자 하는 동기가 아니라 억울한 처우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사용하였습니다(행 22:24-29). 이는 로마 시민이 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즉, 그 당시 로마는 일반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영광과 힘과 지식과 유행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 웅장함과 인기와 부패와 쾌락과 문명과 지식과 권력은 어머 어마하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인간들과 세상을 의식하는 상태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종 선교를 말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세상적인 교육에 있어서 못 배우고,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자신들보다 훨씬 더 무능하고 힘이 없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데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교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나라에 가서 맘껏 돈을 쓰며 맘껏 복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자신들보다 세상적으로 학벌이 높고, 돈도 훨씬 많고, 잘 생기고, 인기도 많으면 그들에게 가서 복음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세상을 의식하는 가운데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든,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든 동일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에 대해 무지한 것인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에게는 복음 전하기를 두려워하고, 무지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복음 전하기를 쉽게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바울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울은 세상에 대해 죽은 사람이며,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는 사람이기에 그곳이 로마이든, 아니면 멀리 떨어진 구브로 섬이든, 세상 철학과 교육으로 무장한 변호사이든,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든, 혹은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섬 사람이든, 동네 아주머니이든 상관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왜요? 세상에 대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용기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영적 인식의 문제입니다. 즉, 복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지식,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부패하였으며 또한 영적으로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한 지식, 그리고 오직 성령의 역사 외에는 그 누구도 복음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 후에 갖게 되는 인식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를 정확하게 선포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바울은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복음의 능력이 돈을 잘 벌게 해 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세상에서 큰 부자 앞에 서게 되면 그가 불신자라도 한 마디의 복음도 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복음의 능력이 권력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절대 권력을 가진 왕 앞에서는 그가 불신자임에도 한 마디의 복음도 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자 앞이든, 왕 앞이든 상대가 누구든지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바울에게 복음의 능력은 그 모든 세상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러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납니까?
17절이 그 해답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즉, 복음의 능력은 “의의 능력”입니다. 그냥 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오직 ‘믿음으로’ 또는 ‘믿음에 의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합니다. 왜요? 그 이유는 복음은 죄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하며 또한 의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능력입니다. 믿으십니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의로 나타납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율법의 기준에 완전하게 맞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단 한 사람도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완전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의를, 믿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우리 마음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여진 마음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거듭나서 거룩하여진 신자들은 성령 안에서 주의 율법과 계명을 더욱더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의를 행할 수 있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능력은 거룩의 능력이며, 의를 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와 인기와 세상 교육과 철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룩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는 복음은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시고 또한 의로운 삶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의 목표는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때 그 사람에게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는 반드시 죄 가운데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그 죄에 무너지면 그 다음은 더더욱 그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는 그 죄를 이기려면 자신 속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 죄의 권능을 이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힘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한편, 마귀는 우리 안에 죄의 권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쉬지 않고 동일한 유혹을 던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유혹을 받고 쓰러집니다. 

이러한 죄악이 반복되면 그 사람의 성품은 마귀를 닮아갑니다. 그리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매우 악하여집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그러한 죄의 늪에 빠진 그 사람을 구하여 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지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물론 복음에는 반드시 배우고 알아야 하는 지식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들을 안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그 복음이 가리키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그래서 그리스도와 나의 인격적인 연합이 형성될 때 성령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수년 동안 복음을 들었음에도 거룩함과 의로움의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복음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복음을 지적으로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한한 확신 가운데 복음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게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이는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굳게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복음을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으로 율법을 굳게 지키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복음을 믿으면 반드시 거룩한 에너지가 신자에게 흘러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능력은 이론이나 윤리가 아니라, 거룩한 생명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누구도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만이, 믿는 신자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까? 그 능력이 여러분을 구원할 것을 믿습니까? 그 능력은 죄의 형량으로부터 법적으로 구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죄의 권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하여 줄 것을 믿습니까? 아멘 아멘! 바로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개혁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와 감정과 지식은 전적으로 부패한 상태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의지는 죽도록 하나님을 거절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게 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임하면 그 사람의 완고한 의지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 무너진 의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듭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이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그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의지로 계속적으로 죄를 멀리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능력이 어떻게 임합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및 그분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자가 계속 주의 능력으로 주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더더욱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복음 안에서 계속 깊어지면서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의’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의가 없이는 구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완전한 의가 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또한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썩은 시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내 힘이 아닌 복음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로움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왜요? 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의로운 삶을 살도록 그분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을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중에는 반복되는 죄로 인해 신음하는 자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구속으로 죄사함을 받은 것을 믿고 압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반복되는 죄성 때문에 평강과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질적인 죄 문제가 10년 20년 지속 되니까 결국 죄를 이기는 것에 대해 포기하고, 도리어 죄를 맘대로 지어도 우리 주님은 용서해 주시는 것이 복음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은 반율법주의라고 해서 철저하게 거짓 복음입니다. 이러한 거짓 복음은 믿은 신자들은 죽는 그 날까지 죄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또한 구원에 대해 스스로도 확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를 이루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단지 지적 유희일 것입니다. 그럴 경우 성경은 그러한 믿음은 죽은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19-20).  

더 나아가 반율법주의에 속한 자들은 그들의 양심이 화인 맞게 되면서 결국 죄에 대한 아픔을 갖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죄에 대해 회개하지도 않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 동일한 죄악을 가지고 계속 회개하는 것이 민망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는데 이러한 사람에 대해 성경은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반드시 받게 되기에, 만일 그가 죄를 이기고 싶어하는 진정성만 있다면 그는 반드시 죄를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는 자는 결국 복음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게 되고 그의 심령 깊은 곳에는 날마다 계속되는 패배로 인한 우울증과 비참이 늘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을 결코 하늘의 깊은 평강과 감사와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왜요? 평강은 의가 이루어질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그러므로 구원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칭의의 옷, 곧 의의 옷을 입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의를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능력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 안에 심겨진 썩지 아니할 씨, 곧 항상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으로 인하여 거듭난 생명, 곧 새사람을 입은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의해 우리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고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의는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시고 또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완전한 의를 제시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이 다 만족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믿음이 생겨나고,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믿음은 계속 성장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이겨내며 거룩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것입니다. 

우리 중에 실망한 자들이 있습니까? 죄로 인해 낙심한 자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붙들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기 바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이에 바울이 선포하였습니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자꾸 죄악된 세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까?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양심을 거스르고 있습니까?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습니까? 오늘 이 예배 시간에 그리스도를 믿고 붙듦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바랍니다. 그 능력은 여러분을 다시 강건한 주의 자녀로 서게 하여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는 복음 및 하나님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정욕과 어리석음에 속한 헛된 믿음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그러나 참된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을 나타내도록 합니다. 이는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복음에 따라 믿기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수 밖에 없으며, 참된 믿음의 목표는 언제나 죄를 이기는 ‘의’이기 때문에 참 믿음을 지닌 자는 하나님께 나아가 복음의 능력을 부어달라고 기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령으로 우리에게 죄를 이기고 의에 이르게 하십니다.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4)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 있는 길에 서기 바랍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만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게 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며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그 길 선 상에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영접하는 믿음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 5:4-5).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믿는 여러분에게 임하기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전능한 능력입니다. 그 능력으로 이기지 못할 마귀나 죄나 세상의 권세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이 자신의 죄를 이기기만 하면 이는 사탄을 이기는 것이며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내쫓는 등의 엉뚱한 짓을 하지 말고, 내 안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죄를 죽이는 가운데 주께서 보내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지기를 사모하기 바랍니다. 

그러한 영혼에 복음의 능력으로 인한 승리가 주어지게 될 것이며, 승리한 그 영혼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평강과 감격과 기쁨 가운데 수정처럼 맑은 천국의 풍성함을 차고 넘치도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풍성함을 아는 자들은 이제 계속 거룩함에 정진하기 위해 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함으로 항상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8:37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벧후 1:10-11; 롬 8:37)

오늘 이 예배와 함께 복음은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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