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말씀교육으로 세상을 정복하라

 

 

지난번 시간에는 유대인이 바벨론 70년 기간에 탈무드라는 국민적 교육서를 만드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일까요? 이것과 우리와 연관성을 찾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스라엘은 70년 후에 포로에서 귀환되어 잠시 동안 정착을 이루었지만, 나라를 헬라와 로마에 빼앗기면서 또 다시 유랑인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런 자기 것이 없었지요. 자기 땅에 살면서도 이방인들이 들어 와 주인이 되면서 식민지 상황에서 노예의 삶을 살았지요. 바벨론에서 탈무드의 작업은 포로 이후에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가르친 학사 에스라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에서 말씀 교육이 구체적으로 현실화 되었어요. ‘성전종교’에서 ‘말씀종교’로 전환된 것이지요. 당시 솔로몬성전에 비해 스룹바벨성전은 작았어요.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었어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율법을 가르치고 배우고 연구하는 일을 계속했어요. 성전 중심에서 이제는 율법 중심으로 중심축이 바뀌어 가고 있었지요.

 

고난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새롭게 갱신하는 기회가 되었네요. 그러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아, 그런데요. 안타까운 것은 역사 속에서 교훈을 알지 못했어요. 이스라엘은 말씀의 소중함과 말씀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는 일을 게을리했어요. 느헤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자녀들이 히브리 방언을 하지 못하면서 말씀 교육의 위기를 맞이했어요.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면서 자녀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런 타락과 죄악은 이스라엘을 또 다시 패망하는 요인이 되었지요.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고 다시 반복적인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은 또 다른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400년의 암흑시대 동안에 헬라에 의해서 핍박과 수모를 당하면서 식민지 생활을 했어요. 그것은 후에 로마에 이어져 계속 고난과 아픔을 당했어요. 결국은 그렇게 의지했던 스룹바벨 성전이 또 다시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는 수모와 아픔을 당해야만 했지요. 이전에 바벨론에게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것 같이 로마에 의해 스룹바벨 성전이 파괴당하고 말았어요.

 

안타깝네요. 역사는 반복되는데 인간은 그 역사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시 고난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된 이후에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나요?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다시 유대인의 교육의 힘을 일깨우며 미래의 비전을 품었던 한 역사가 일어났어요. 예루살렘성을 둘러싼 로마 군대는 이제 이스라엘의 멸망만 기다리고 있었고, 포위당한 이스라엘은 아무리 노력해도 로마 군대를 이길 수 없었지요.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이 승리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분명히 군사적인 승리는 불가능했어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로마인을 이길 수 있는가? 로마인의 칼 보다 더 강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한 벤 자카이는 그들 보다 더 큰 무기는 교육임을 깨달았지요.

야브네에 모인 요카난 벤 자카이와 다른 랍비들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인들에게 파괴되는 일은 어쩔수 없지만 유대인은 로마인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만이 칼보다 강하다”라고 생각했어요. 로마인은 자녀들에게 칼을 전수해주지만 유대인들은 칼 보다 강한 교육을 자손에게 전수해 주면, 언젠가는 유대인들이 로마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벤자카이는 유대인들의 교육이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말씀의 힘이 갖는 것이 가장 큰 힘인 줄 알았던 것이죠.
마음이 확신이 생기자 당시 로마 사령관이었던 베스파니아누스를 성 밖에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어요. 로마 사령관은 그 의사를 받아들였지요. 왜냐하면 벤 자카이는 위대한 학자임을 알았기 때문이죠. 벤 자카이는 베스파니아우스를 만나자 마자 ‘황제여’ 하고 불렀어요. 아직 사령관에게 황제라고 부른 것은 충격적인 호칭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 일이 일어났어요. 얼마 지난 후에 기적이 일어났는데 로마에서 파견된 사자가 달려와 황제가 죽어 원로원에서 베스파니아누스를 황제로 선출했다고 전한 것이지요. 그러자 베스파니아누스는 벤 자카이의 예언의 능력에 감탄하며 그가 원하는 무엇이든지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때 벤 자카이는 마음으로 생각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네요. 그러면 벤 자카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저는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고 봐요. “성전이 좋을까? 아니면 성서와 교사 랍비일까? 건물인 성전은 유대인을 구할 수 없지만 성경과 랍비는 유대인을 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인 야브네를 파괴하지 말라고 부탁했어요. 인구가 작은 도시이지만 거기에는 대학이 있고 많은 학자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소원치고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생각한 황제는 그의 소원을 들어 주었어요. 결국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들어와 시내는 불바다가 되고 성전은 파괴되었지만, 야브네 만은 고스란히 남았어요. 이렇게 해서 야브네 도시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유대인의 교육의 중심을 삼았지요. 결국은 벤 자카이 생각대로 로마를 이길 수 있었어요. 예루살렘은 멸망했지만 야브네에서 유대교 학원을 지었고 거기서 뛰어난 랍비를 배출하였고 미쉬나가 성립이 되었어요. 후에 에시바 학원으로 발전하여 유대교의 교육의 중심이 되었고, 여기에서 배출한 랍비들에 의하여 성경을 온 국민들에게 가르쳤으며 그 교육은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한때 대단한 힘을 소유하며 세계의 중심을 이루었던 정착민이었던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샤, 헬라, 로마의 대제국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졌어요. 유목민었던 몽골 역시 과거의 광대함은 잃어버리고 현재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요. 반면에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은 나라 없이 방랑의 떠돌이의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아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될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성경교육이어요. 이스라엘도 여전히 민족이 사라질 뻔한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그 속에서 유대인의 힘을 발견했는데 성경교육이었어요. 자손대대로 말씀교육을 함으로 민족과 정신의 끈을 이어갔고 더 큰 부가 가치 능력을 창출했던 것이죠.

 

그러면 바벨론, 파사, 헬라, 로마, 몽골 등은 사라진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되나요?

 

 

맞아요. 그 모든 제국들은 결국 바람에 날려 버리듯이 역사속으로 한순간아 사라졌어요. 당대에 대단했던 몽골을 비롯하여 서양의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샤, 헬라, 로마 등의 가장 큰 약점은 교육에 힘을 쏟지 못했어요. 문맹율이 높았던 몽골은 자녀교육에 더 이상 진전을 가지지 못했지요.

<로마제국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은 로마의 멸망 중에 하나를 자녀교육으로 꼽았어요. 사치와 향락에 사로잡혀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몰랐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나라는 점차 힘을 잃었다고 기술되었어요. 한때는 보이는 힘과 싸움에 의존하면서 세계강국을 이루었지만 그것이 결국은 점차 쇠락의 길로 가는 원인이 되었어요. 칼을 교육보다 우선시하면서 나라의 생존은 위기를 맞이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유대인은 국가와 땅과 자본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민족의 힘을 유지하면서 흩어진 힘으로 세계의 영향력을 가지고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육의 힘이었어요.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미리 알았던 유대인들은 지금도 교육을 우선순위로 삼고 그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요.

에드워드 기번(1737∼1794) <로마제국쇠망사>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놀라운 지혜를 유대인이 가졌고 그것으로 지금 나라가 존속하고 있다는 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준다는 말씀의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오직 말씀을 잡으면 그 말씀이 그 사람을 지켜주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다음 시간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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