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1-9

베드로전서 1:1-9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였으며 예수님으로부터 주의 계시와 복음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북쪽 위에 있는 여러 지방, 곧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광대하게 퍼져나가 나그네처럼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을 지키러 갔다가 성령 강림을 체험했던 자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우고 힘차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7-11)

그들은 성령 강림에 의한 초자연적인 방언 현상을 보게 된 후,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때 3천명의 신자가 더하여졌는데 그들이 바로 베드로가 그의 서신에서 언급하고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9-41)

그들은 자기들의 고향에서 이교도들 및 우상 숭배자들, 특히 유대인들에게 많은 박해와 공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로마 황제의 네로와 같은 악한 황제들에 의해 쉬지 않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여러 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경제적인 압박, 정치적인 압박, 주변 사람들의 압박, 로마 군사들에 의한 감금, 비참, 조롱, 수치 등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남편과 아내 또는 자녀들과 온 가족을 잃는 그러한 불 같은 강한 연단을 지나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서신을 씁니다.  

2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에 의하면, 성도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로 인해 거듭나게 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개역 개정이 “거룩하게 하심으로”라고 번역한 원어 (하기아스모스)는 하나님의 것으로 따로 떼어 구별하여 놓는다는 뜻입니다. 이때 그 과정에서 성령께서는 그 사람의 양심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즉, 거룩하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러면 거듭난 그 사람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새로워진 양심과 마음을 가지고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계명과 교훈을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튼 베드로는 한 영혼이 거듭나는데 있어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가장 첫째로 두고 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택한 자들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에 의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택한 자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어는 이러한 목표를 뚜렷하게 말하기 위해 ‘에이스’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은 구약 시대의 구 언약에 따른 속죄 제사를 의식하는 표현으로써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따른 새언약을 말합니다.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6-8)

[9: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9:18-23; 히 10:10-14; 히 10:19-22)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역사하시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는 맨 처음에는 택함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거듭남의 역사를 일으켜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고 또한 새언약에 들어가게 합니다. 이때 동시에 이와 함께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합니다. 따라서 거듭난 성도들은 그때로부터 믿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라”(유 1:3). 

여기서 “단번에 주신 믿음”이 바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에 따라 거듭나게 된 자들이 갖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듭난 이후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훈을 들을 때마다 믿음을 행사함으로 더욱 순종하게 되고 새언약 속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신 목적대로 우리 택함 받은 신자들은 실제로 믿음을 행사함으로 그 성품과 삶에 있어서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하여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성삼위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역에 대해 언급한 후 성도들을 향해 풍성한 은혜와 평강을 기원합니다. 만일 우리가 1-2절을 충분히 이해하고 거듭남과 함께 주어진 믿음을 행사한다면 실제로 우리의 심령과 삶은 은혜와 평강으로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에 3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지시하심으로 택한 자들을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절에는 훨씬 더 많은 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칭함으로써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예수님의 아버지로 칭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라는 헬라어 (퀴리우)는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에게 부여된 칭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강림의 사건 가운데 베드로가 선포하였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즉, 약속하신 성령이 오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왕좌에 앉으셨으며 만유의 주가 되셨음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 강림 사건 때 설교를 했던 동일한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1장 3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의 역사임을 분명하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3절 후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건을 강조하고 있고, 이로 인해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을 향해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나타내심으로 그들을 거듭나게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라는 원어가 (아나겐네이사스)로 되어 있는데 이는 동사 (아나겐나오)의 과거 능동태 분사로서 이는 과거에 발생한 단 번의 역사적인 사실을 나타냄과 함께 동시에 현재에도 거듭난 상태를 유지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는 창세 전에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새언약에 의해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을 계속 그 상태에 있도록 붙들어 준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영원토록 취소될 수 없습니다. 즉, 한번 거듭나면 영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5-7)

여기서 거듭남이란 영으로 태어난 것으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과 영혼에 심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기에 영원토록 취소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사건은 그 누구도 다시는 무를 수 없는 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지닌 영생의 생명 사건입니다.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0-34)

그리고 이 모든 선한 사역의 시작은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에 기인한 것입니다. 

둘째로, 3절은 거듭남에 대해 종국적인 목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산 소망’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산 소망은 거듭난 생명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한 것이기에 그 생명의 부활과 관련한 소망입니다. 따라서 그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와 연관됩니다. 그때에는 부활과 함께 우리의 온 몸과 영혼이 영광스럽게 변화하여 영원히 썩지 아니할 새하늘과 새땅의 기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에 4절은 성도의 부활 및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것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이는 지금은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49-50)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온 영혼과 몸이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며 또한 영원한 기업인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한편, 그때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함없는 보호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구원을 5절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라고 뚜렷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절은 거듭난 성도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변함없는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단 한가지를 말합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도다”(벧전 1:5). 

이때 이 믿음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거듭난 신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시험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은 만일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면 그 믿음은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 믿음이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믿음으로 이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보호하심을 보장받지 못할뿐더러, 그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입증될 수 없고, 행여 하늘에 들어가더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수치 가운데 얼굴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부터 7절 사이에서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 곧 새언약 가운데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거듭난 자들에게 요구되는 단 한가지는 “시험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서 베드로는 8절에서 시험을 이기는 믿음, 곧 참된 신자들의 특징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이에 먼저 9절에서 참 믿음을 가진 자는 영혼의 구원을 얻은 자들, 곧 거듭난 자들이라고 언급하며 8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8절은 구원을 받아 거듭난 자들이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보여주는 참된 믿음의 특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8절에 의해 나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또한 불과 같은 여러 가지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인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내가 과연 참된 믿음을 소유한 거듭난 자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8절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참된 믿음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첫째는, 그 무엇보다 “보지 못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보지 못한 예수님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특징이 바로 참된 믿음을 가진 거듭난 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지만 사랑합니까?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합니까?

이 질문을 심각하게 내 자신에게 던져보기 바랍니다. 사실, 이 질문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도들에게 하신 가장 소중한 질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대표이며, 새언약 시대의 교회 대표인 베드로를 만나 오직 한 가지 질문을 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물론 원어로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 세 번의 질문은 진실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5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5-18)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해 갖는 최고의 관심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이 친히 물으십니다. 
“동준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응준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주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의 삶의 특징은 이제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그곳이 십자가든, 광야든, 궁궐이든, 영광이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주께서 인도하시는 그곳에서 오직 주만 사랑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려고 사람의 죽을 몸과 연약한 인성을 친히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남들을 섬기는 비천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가장 저주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참으로 주의 백성을 하나님과 화평하도록 하는 영원한 속죄 제물이라는 사실을 부활로 입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부활체의 몸으로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신 후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그 후 영원한 왕과 대제사장과 영원한 마지막 선지자로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산소망을 위해 우리의 부활체 및 새하늘과 새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수인 이유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시기 때문이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이유는 성령으로 무한하게 부음 받은 자로서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을 위해 구속을 이루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왕과 영원한 마지막 큰 선지자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에 영원한 중보자이십니다. 심지어 참 사람으로써 만왕의 왕과 만유의 주가 되어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부으셨으니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제자들과 사도들이 주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며 그들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손으로 예수님을 만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신 때로서 죄인들과 자신을 일치시켜야 하는 비천한 상태였습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그러나 부활하신 직후부터 예수님은 영광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상태에서 하늘로 오르시고 하늘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존귀와 영광의 상태에 있습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님은 영광과 존귀 가운데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서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이신 분이셨습니다. 그 찬란함과 능력과 영광이 너무나 커서 바울의 눈은 영광의 주를 본 후 즉시 멀게 되었습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더라.](행 9:3-5, 8).   

또한 교회 시대의 첫 번째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가 순교 직전에 영광의 주를 뵈었습니다.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5-56)

그러나 이 경우 외에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누구든지 죄인의 상태에서 영광의 주를 본다면 바울 이상으로 그 눈과 몸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교회 시대는 부활 승천하신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자기의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베드로조차 승천하신 이후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대신 주의 백성들은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에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으로는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롬 8:9-10)

하지만 우리 눈으로는 직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영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선포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도다.”
이 상태가 바로 참된 믿음을 지닌 거듭난 신자의 상태이며, 거듭난 신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한번도 눈으로 본 일이 없고 만나본 적이 없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는 상태에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번도 눈으로 본 일이 없고 만나본 적이 없는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 가운데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또한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가장 큰 즐거움이며 기쁨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부터 여러분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는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은혜를 부으셨다는 뜻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과 고마움과 긍휼을 체험하여 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는 여러분이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연합되었다는 뜻이며, 또한 실제로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안다는 뜻이며, 이에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예수님의 요청과 명령에 순종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사랑하는 수많은 주의 백성을 향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거룩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 내 자신을 거룩하게 유지하고자 온 마음과 뜻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주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기에 그 사랑으로 나의 형제들과 이웃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늘 그분을 그리워하며 그분이 하신 말씀과 기록된 말씀, 그리고 그분에 대한 모든 기록이 담긴 성경을 엄청나게 소중하게 여기며 늘 묵상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행여 내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주 예수님은 내가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시는지 알고자 주의 뜻과 마음을 알기 위해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경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의 마음과 뜻을 헤아릴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주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되면 그것이 죽음을 의미할지라도 당장 순종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은 오직 믿음의 눈에만 보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예수님을 사모하지 않으며 감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주의 자녀들은 비록 육체의 눈으로는 주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무한한 사랑의 황홀함에 빠지며 그 즐거움은 신자의 영혼을 무한한 영광과 만족으로 인도합니다. 이는 참으로 그들은 성령 안에서 살아계신 주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누구와의 대화보다도 그리스도 예수님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한없는 위로와 기쁨을 누립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엄위와 영광, 그리고 그분의 변함없는 무한한 사랑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끝없이 그리스도 예수께 반하게 되면서 주께 무한히 몰입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말하는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엄위와 거룩하심과 보호하심과 탁월하심을 믿음을 통해 맛보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참 신자들의 삶이며,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을 뿐더러, 여러 가지 이 세상의 시험을 당하더라도 잠깐 근심할 수 밖에 없으나 오히려 그 시험을 이김으로써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토록 사랑하는 주 예수님을 위해 손해와 박해를 당한다면 참된 믿음의 소유자는 그러한 고난을 반가워하면서 주를 향한 사랑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고 다짐하며 그분을 향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하는 믿음이며 모든 환난 가운데 정금 같이 나오는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입니다. 

오늘 베드로전서 1장 1절에서 9절의 내용은 놀랍게도 바울의 갈라디아서에서 요약되어 있습니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5-6)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지체들을 향한 사랑이 우리의 참 믿음이요,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불신자들을 향해서도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인하여 주께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럼에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을 베풀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풍성한 긍휼이 그들에게도 전하여질 수 있도록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대하여 오래 참으며 그리스도와 복음의 향기와 메시지가 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 이에 불신자들 및 거짓 신자들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1-22)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참된 믿음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주의 백성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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